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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 그림과 함께 읽는
에드워드 기번 지음, 데로 손더스 엮음, 황건 옮김 / 까치 / 2010년 5월
평점 :
책과 역사를 사랑하는 이 중에서, <로마제국 쇠망사(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라는 책과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94)'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전이 읽히지 않는 책이라고 하지 않던가. 책을 좋아하는 이 중에서 이 책을 전부 읽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6권의 방대한 분량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역사학자가 아니라면 6권을 볼 만한 동기부여와 시간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ought)와 책을 읽는 것이 힘들다는 현실(reality)속에서 탄생한 것이 까치출판사의 <그림과 함께 읽는 로마제국 쇠망사>이다.
이 책은 기번의 6권짜리 책을 데로 A. 손더스가 전반부 3권을 중심으로 발췌 요약하였고, 출판사에서 그림을 삽입했다. 손더스는 로마의 최전성기였으나, 이미 그 쇠퇴의 기미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98-108)에서부터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의 400년간을 다루었다. 나머지 후반부 3권의 내용은 50여 쪽에 걸쳐서 매우 압축적으로 요약되어 있다. 사실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서로마 제국이지, 동로마 제국은 아니다. 감사하게도, 접근성과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과 사진을 삽입한 것은 독자 입장에서 좋은 일이다.
많은 이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설파하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기실 인문 고전 text의 외면이고, 이 텍스트들의 시대적 해석(지평융합, Horizontverschmelzung)과 적용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런 관점에서, (애석하게도) 돈이 안되는 인문 고전들을 마구(?) 출판하는 출판사들을 사랑한다. 한길사, 도서출판 길, 서광사, 문예출판사. 물론 <로마제국 쇠망사>를 출판한 까치 출판사도 포함된다. 참고로 장하준 교수와도 인연이 있는 찰드 P. 킨들버거 교수의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도 까치출판사에서 발행했다.(대학원 논문 쓸 때 참고문헌 중 하나였다. 로마제국 쇠망사와 함께 읽으면 좋을 듯... 훌륭한 책인데 그리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3820
알라딘에서 출판사 이벤트를 하기에, 주머니 사정으로 그 동안 못 사던 <호모 루덴스>, <로마제국 쇠망사>, <존재의 기술>, <황금가지>를 함께 구입했다. 인문학 공부한지 이제 1년. 사고 싶고 읽고 싶고, 읽어야만 하는 책들은 쌓여만 가는데....
각설하고, 영국의 처칠과 인도의 네루가 <로마제국 쇠망사>를 탐독했다는 것은 여러 책에서 읽은 듯하다. 고전에 대해서 들어 아는 것이나 한 두장으로 요약한 글들을 읽은 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런 접근방법은 인문고전의 묘미를 알지 못하고, text에 대한 진정한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다. 전체를 모르니 당연한 귀결이리라.
저자 에드워드 기번은 18세기 영국 인물이다. 어릴 시절부터 병약했지만 고전을 탐독하였고, 시대지성인 볼테르와도 친교를 맺었다. 특히 나에게 큰 감동과 도전으로 다가온 대목은, 그가 14개월 만에 거의 모든 라틴어 고전(역사, 시, 웅변, 철학)등을 독파한 점이다. 막대한 독서량과 자료수집이 이 책의 탄탄한 기초이자 뼈대이고 열매이다. 빠른 속도와 (깊이는 없는) 정보에 목을 매는 현대인들에게 기번의 행위는 반(反)현대적이다. 너무 빨리 가기 위해 기초(foundation)가 부실한. 기번의 책은 2000년 전의 역사 이야기 이지만, 적용은 현대적이다. 그래서 기번은 반현대적이지만, 그의 책은 현대적이다.
오늘날 책을 좀 읽는다는 독서가 중에서 다양한 고전들을 완독하고, 이해하고 곱씹어 자신과 사회의 풍성한 양식으로 삼는 이가 얼마나 될까? 기번은 고대 기록들간의 불일치하는 내용을 만나게 되면 며칠 밤이라도 뜬눈으로 새우는 열정적 연구가였다. 진정한 내공은 탄탄한 독서력, 지치지 않는 호기심 그리고 폭 넓은 텍스트 이해에 기초한 시대적(현대적, 삶의 자리) 해석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번은 이러한 삶의 귀한 모범이 된다.
아울러 그는 카톨릭 교도로서 신의 존재는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기독교가 전파됨에 따른 폐해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신앙을 저버리는 행위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학자의 양심과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동시에 지키는 행위이다. 성경의 저자들이 언제 아브라함의 믿음만, 다윗왕의 공로만, 바울의 위대함만 서술하던가? 진실에 기초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지 못하는 개인과 공동체(집단,사회)는 쇠망의 기름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로마제국의 역사, 지도자의 장단점, 정치 역학, 정치 행정, 문화, 학문, 시민권, 노예제, 군사, 건축, 종교 등 로마제국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다룬다. 로마제국은 하루 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작은 도시국가로 출발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대제국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드파워(군사, 경제, 정치)와 소프트파워(문화, 학문), 엄격함과 관용, 정신문명과 물질문명, 다양한 민족 등 다양한 가치와 문화들이 공존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하지 않았던가. (헤겔적 의미의) 모순적 가치와 자유/관용이 비빔밥처럼 섞이면서 로마제국이라는 창발(emergence)적 존재가 탄생한 것이다.
역사상 로마제국과 같은 거대한 제국은 여럿 존재했지만 그처럼 오랫동안 존속한 제국도 없다. 바빌론, 페르시아, 헬라 제국도 겨우 몇 세기 지탱했을 뿐이다. 소비에트 연방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은 현재 자신들의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은 21세기를 미국에게서 빼앗아 오기 위해 로마제국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의 국기(독수리)부터가 로마제국의 모방 아니던가. 중국은 후진타오의 외교정책은 <화평굴기 和平崛起 , peaceful rising)>. 이는 세계 패권국가가 되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다큐멘터리와 책으로도 발간된 <화평굴기>는 13억 중국인들의 가슴에 패권국가를 향한 열망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미국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 중국은 빼앗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여 로마제국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국가정치 지도자 뿐 아니라, 한 단체의 지도자라고 한다면 마땅히 읽어봄직하다. 인간이 구름 위의 이상과 윤리로 살기 원한다면 종교서적을 읽어야겠지만, 땅 위에 존재하고자 한다면마땅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어야 한다. 군주론과 로마제국 쇠망사는 불편하지만 역사의 진실들이 가득하다.
로마제국의 실제 폭력성과 모순은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단지 로마의 성공과 실패의 거울삼아 현재의 나라와 집단에 적용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사회통합, 합리적 행정, 정치적 결속/안정성, 노블레스 오블리주, 시민적 자유, 열린 공동체, 학문과 문화 존중, security의 보장, 의무의 엄중함, 권리의 보장, 좋은 것에 대한 개방성 등등.)
몇 가지 내게 감동을 주었던 부분을 발췌해 본다.
- 그리스인들은 로마에 패배한 이후, 그 원인을 ‘운명의 여신’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 운명은 로마인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로마의 교육제도, 국가에 대한 성실한 자세, 명예와 미덕 존중, 승리에 대한 열망, 민회의 자유, 합리적 통치력, 우세한 군사제도와 전략. 운명주의(fatalism)는 인생에 치명적fatal이다. 삶과 집단은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미래의 영광은 현재가 만드는 것이다. 아울러 과거와 현재의 영광의 미래의 영광을 담보하지 못한다.
(아놀드 토인비의 도전-응전-모방 모델에 따르면 문명의 기원이나 발생을 가져오는 사람도, 문명을 성장시키거나 붕괴를 막아내는 사람도 창조적 소수이다. 붕괴 단계에서 문명은 더 이상 제도적으로 창조적이지 않으며, 도전-응전-모방 사이클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문명은 살해당하기보다는 자살(창조성 상실)로 죽는다. 표류하는 기운과 더불어 총체적 분열 현상이 잃어나고, 죄는 증가하며, 난잡함과 혼합주의가 지배하게 된다)
- 오랫동안의 평화와 로마의 획일적 통치는 제국의 중추부문에 서서히 그리고 은밀하게 독을 퍼뜨렸다. 사람들의 정신은 점차 평준화되고 번뜩이는 천재성은 소멸되고 심지어 상무정신도 사라져갔다. (중략) 시민들은 군주의 의지에 따라서 범과 총독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의 보호를 용병에게 맡겼다. 용감했던 지도자의 후손들도 이제는 평범한 시민과 백성의 지위에 만족했다. 대망을 품은 자들도 황실과 황제의 군기에 의지하게 되었고, 속주들은 정치력과 단결력을 상실한 채 점차 개인생활의 무관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86-7쪽)
- 학계는 여전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제논과 에피쿠로스의 ‘권위’가 지배했고, 이들의 학문체계는 제자들간에 맹목적인 존경심으로 대를 이어 전해져 내려오면서 인간정심의 힘을 발휘하고 그 한계를 넓히려고 하는 온갖 폭넓은 노력을 막았다. (중략) 이 모델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은 분별력과 예절을 벗어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87쪽)
- 집정관 또는 독재관은 로마의 젊은이들에게 군복무를 명하고, 반항자와 비겁자는 범법자로 취급하여 시민권을 박탈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그 신병을 노예로 판매하는 등 극히 가혹하고 수치스러운 처벌을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91쪽)
- 극단적인 역경은 자유민의 미덕을 결집시키는 법이지만, 쇠망해가는 나라에서는 당파 싸움을 부추길 뿐이다.
- 콘스탄티노플의 창건은 서로마의 멸망에 기여했다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동로마의 유지에 기여했던 것이다. (541쪽)
- 로마가 쇠망한 것도 이 무절제한 팽창이 가져온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였다. ‘번영’은 쇠망의 원리를 성숙시켰고, 정복의 확대에 의해서 파괴의 원인이 증가했으며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는 우연히 인위적 기둥들이 허물어지게 되자 그 방대한 구조물은 자체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졌다. 그 붕괴의 이야기는 간단명료하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제국이 왜 멸망했는지를 묻기보다는 오히려 그처럼 ‘오랫동안 존속했다는 데’ 놀라게 되는 것이다.
- 로마제국의 쇠퇴가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에 의해서 촉진되었다고 한다면, 이 승리의 종교는 제국의 급격한 명망을 늦추었고 정복자들(북방의 야만족)의 흉포한 기질을 누그러뜨렸다고 할 수 있다. (542쪽)
<로마제국 쇠망사>는 계몽주의 역사학의 대표작이자, 계몽주의 한계도 부분적으로 보여준다. 문명과 야만, 문명인과 야만인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유럽중심주의, 제국주의적 시선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쩌면 미셀 푸코의 주장처럼, 모든 지식인은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