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 평점은 9점.

 

왜 Essays 'in' Love 일까? on love도 about love도 아닌 essays in love. 아마도 소설 속 화자(혹은 숨은 저자)가 사랑에 빠진 상태(in love, 주관성)에서 최대한 객관성(essays)을 유지하면서 쓴 글이기 때문이리라. 영국에서는 Essays in Love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는 On Love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개인적으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한글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든다. 창의력이 떨어지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저자의 의도나 내용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사랑이라는 평이한 사건이 실상은 굉장히 복잡다단한 심리적, 사회적 결과물들의 복합체이기 때문이기에, 평이함 속에서 낯선 것을 본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이 한 권 또 있다. 처음에 출판된 남색 표지의 다소 평이한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장본에 새로운 표지로 출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다시 구입하였다. 처음 구입한 책은 거의 새책 수준이었고, 책을 아끼는 후배에게 선물했다.

 

우선, 알랭이 20대 초반에 이 책을 쓴 것에 놀랐다. 심리적 통찰력과 흥미로운 스토리, 가끔씩 '빵' 터지게 만드는 위트까지. 그의 천재성에 인문학적 환경에서 자란 것이 essays in love라는 꽃을 피우게 된 원인일 것이다.

 

책의 내용은 사실 단순하다. 남자 주인공이 클로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사귀다가 헤어지는 이야기.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허무 개그로 끝날 수 있는 이야기에 생명력을 더하는 것은 바로 알랭의 번뜩이는 통찰력과 위트이다. 대부분은 별 생각없이 지나치는 것을 알랭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집요하게 '왜 why?'를 파고 들어간다.

 

처음 이 글을 볼 때는 일반 소설 보듯이 읽었다. 2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때는 아마 4-5시간 걸린 듯 싶다. 그러나 얼마전 독서토론에서 이 책이 선정되었고,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 두번 놀랐다. 이 책 속에 이렇게 다양한 주제들이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쑥쓰럽지만... 나의 독서력이 2년 사이 많이 늘었구나 하는 것이다. 나는 공대 출신이고, 대학원에서는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인문학을 공부한지 1년도 되지 않는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확실히 나의 삶의 깊이와 넓이가 확장된 것은 사실인 듯 싶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 속에는 사랑과 삶, 세상과 인간에 대한 백과사전적 주제들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욕망, 타자 이상화(理想化), (라깡이 주장하는) 주체, 대상a, 주관적 인식, 간주관성, fantasy, 일치의 경험, 유한자와 무한자, 일상성과 탈일상성, 인간 실존, 문화, 자본주의, 불안, 사회적 소외, 우연과 운명, 판단중지(epoche), 이미지, 소유와 존재, 한정된 재화로서의 인정과 사랑, 진화, 희망과 절망, 믿음과 신뢰, 의식의 흐름,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자존감, 자기 소외, 자아 통합(integrity), 다양한 감정들 등등.

 

이 책은 가면(persona)를 벗기고, 주변환경(context)를 지운 후, 인간의 맨 얼굴과 맨 몸을 드러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정신(마음)을, 알랭은 문자라는 현미경을 사용하여 자세하게 관찰한 후,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우울하게 묘사한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자, 인간의 이야기이며, 우리 마음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때로는 신선하고, 때로는 찔리고, 때로는 웃음이, 때로는 슬프고 아프다. 모르지만 다 알고, 낯설면서도 낯익은 아이러니.

 

인간은 불완전한 유한자이기에 완전한 무한자를 찾는다. 그 무한자는 인간 역사와 실존 속에서  신, 이데올로기, 부모, 위인, 성공, 돈이라는 이름의 기표를 가진다. 그러나 기의는 동일하다. 인간의 원죄는 유한자로 탄생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끝없이 무엇인가를 갈망하지만 충족이 되지 않는(대상a).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실망하고, 상처받고, 헤어지는 수학 공식을 무한반복 하는지 모른다.

 

사랑은 내게 여전히 끝없는 의문문이지 마침표는 아니다. 가끔 나의 삶 속에 의문문과 의문문 사이에 느낌표가 끼어들기는 한다. 나의 의문문은 언제 마침표를 만나게 될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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