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동 - 앨빈 토플러
앨빈 토플러 지음 / 한국경제신문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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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本假說

권력에 관한 책은 주제 자체가 수많은 개인적·정치적인 논쟁거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그 주요 가설들을 제시하고 또한 되도록이면 그 바탕을 이루는 기본적 권력모델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은 결코 완전할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의가설들을 일일이 정의하기란 - 또는 심지어 인지하기도 -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은 설사 부분적으로만 성공하더라도 저자와 독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권력이동」의 바팅을 이루는 몇 가지 가설들을 제시하면다음과 같다.


 1. 권력은 모든 사회제도와 모든 인간관계에 고유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사물(thing)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한 국면(aspect)이다. 그러므로 피할 수 없고 중립적이며 본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이다.

 2. <권력체제>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며 - 그 누구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한 사람의 권력상실이 항상 다른 사람 에게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657쪽

3. 모든 사회의 권력체제는 각각의 내부에 자리잡는 보다 작은 하위체제 (subsystem)로 분할된다. 피드백이 이 하위체제들을서로 간에, 그리고 그들이 속한 보다 큰 체제와 연결시켜 준다. 개인은 비록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여러 가지 권력 하위체제 속에 끼위져 있다.

4. 동일한 인간이 가정에서는 권력이 강하고 직장에서는 권력이 약하다는 등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5. 인간관계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권력관계도 끊임없는 과정 속에 있다.

6. 인간은 필요와 욕구를 갖기 때문에 이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가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을 갖는다. 사회적 권력은 이 욕구되거나 필요로 하는 품목과 경험을 공급 또는 보류하는 방법으로 행사된다.

7. 필요와 욕구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충족시켜 주거나거부하는 방법도 극히 다양하다. 그러므로 권력의 수단」 또는 「지렛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폭력·부·지식이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의 다른 권력수단은 이것들에서 파생된다.

8. 주로 징벌을 위해 사용되는 폭력이 가장 비가변적인 권력원천이다. 상·벌 모두를 위해 사용될 수 있고 또한 다른 여러가지 자원으로 전환될 수 있는 부(富)는 가장 융통성 있는 권력수단이다. 
그러나 지식은 가장 가변적이고 또한 기초적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폭력이나 부를 필요로 하는 도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해주고, 또한 다른 사람을 자기 이익이라고 인식되는 바람직한 방법으로 행동하도록 설득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식은 최고급의 권력을 낳는다.

658쪽

9. 계급 · 인종·성(性)·직업·국가 등 여러 사회적 집단들의 관계는 인구·생태·기술·문화 등 여러 요인들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어 간다. 이러한 변화들이 분쟁을 일으켜 권력자원의 재분배로 옮겨간다.

10. 분쟁은 불가피한 사회적 현실이다.

11. 권력투쟁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12. 여러 하위체제들에서의 권력의 동시적 이동으로 야기되는 여러 가지 동요가 합해져서 그 하위체제들이 속한 보다 큰 체제의 수준에서 급격한 권력의 이동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원리는 모든 단계에서 작용한다. 한 개인의 내적인 정신적 갈등이 온 가족을 분열시킬 수 있고, 부서 간의 권력다툼이 회사 를 분열시킬 수 있으며, 지역 간의 권력투쟁은 한 나라를 분열시킬 수 있다.

13. 어떤 특정한 순간에 보다 큰 권력체제를 구성하는 여러 하위체제들 중 일부는 상대적 평형상태에 놓이는 반면에 다른 일부는 평형과 거리가 먼 상태에 있게 된다. 평형상태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14. 권력체제들이 비평형상태에 있을 때 겉보기에 괴상해 보이는 갑작스러운 이동이 일어난다. 이것은 한 체제 또는 하위체 제가 고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을 때 비선형적(非線型的) 효과가 증폭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투팁량이 커도 작은 결과를 낳을 수가 있다. 조그만 사건이 한 정권의 붕괴를 촉발시킬 수도 있다. 토스트 한 쪽을 태웠다고 이혼하는 수도 있다.

659쪽

15. 우연이 중요하다. 체제가 불안정할수록 우연의 중요성이 커진다.

16. 권력의 평등과 같은 상황은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 설사 그같은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우연이 즉각 새로운 불평등을 조성하게 된다. 그러면 의지가 종전의 불평등을 시정하려고 시도한다.

17. 한 수준에서의 불평등은 다른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설사 여러 하위체제들 간에 불평등이 존재하는 경우에라도 둘 또는 그 이상의 실체 간에 권력의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

18. 모든 사회체제와 하위체제들 간에 동시적으로 완전한 균형이 이루어지거나 권력이 모든 집단 간에 평등하게 배분된다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억압적인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급진적인 행동이 필요한 경우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변화 그 자체의 작용이다.

19. 완전한 평등은 변화의 정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수백만 인구가 굶주리는 세상에서 변화를 정지시키겠다는 것은 공연한 생각일 뿐 아니라 부도덕한 생각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불평등의 존재는그것 자체가 부도덕한 것은 아니다. 
부도덕한 것은 권력획득 수단의 잘못된 배분을 동결시키는 체제이다. 그 불평등한 배분이 인종/성별 또는 그밖의 선천적인 특성들에 바탕을 둔 것일 때는 이중으로 부도덕하다.

660쪽.

20. 지식은 무력이나 부(富)보다도 더 한층 불평등하게 배분되이 있다. 따라서 지식(그리고 특히 지식에 관한 지식)의 재배분은 다른 주요 권력자원들의 재배분보다 더욱 중요하며, 또한 그러한 자원들을 재배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21. 권력수단의 과잉집중은 위험하다. (예 : 스탈린·히틀러 등 그밖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예가 있다.)

22, 권력수단의 과소집중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레바논에 강력한 정부가 없기 때문에 이 가난한 나라는 무정부적 폭력사태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법이나 정의 또는 그 어떤 집행력 있는 헌법상의 규제 등에 관해 아무런 합의된 개념이 없이 수십 개 집단들이 권력을 다투고 있다.

23. 권력의 과잉집중이나 과소집중이 모두 사회적 공포상태를 가져온다면, 어느 정도의 권력집중이 지나친 것일까? 이를판단할 어떤 도덕적 기준이 있을까?
권력이 과잉 또는 과소집중되었는지를 판단하는 도적적 기준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질서」와 「잉여질서」간의 차이점과직접 관련되어 있다.

24· 한 정권에 허용되는 권력은 실재하는(허구적이 이직 위협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안전을, 그리고 이에 덧붙여 어느 정도의 안전을, 그리고 이에 덧붙여 약간의 내부적인 질서와 정중함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이러한 정도의 질서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질서이며 따라서 도덕적인 정당성을 갖는다. 문명사회가 기능하는 데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부과되는 질서, 오직 한 정권을 영속시키기 위해 부과되는 질서는 부도덕한 질서이다.

25. 잉여질서를 부과하는 국가에 반대하거나 또는 이를 타도하도록 허용하는 도덕적 기준이 있다.

6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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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 개정판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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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어제를 위해 그리고 오늘을 위해 건배.
그제를 위해 그리고 내일을 위해 건배.

빵과 돌을 위해 건배.
불꽃과 비를 위해 건배.

변하고,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되었다가 다시 입맞춤이 되는 것들을 위해.
우리가 숨쉬고 있다는 것과
이 땅에 살고 있음에 대해 건배

우리의 삶이 사위어가면
그땐 우리에게 뿌리만 남고
바람은 증오처럼 차겠지.
그땐 우리 껍데기를,
손톱을, 피를, 눈길을 바꾸자꾸나.
네가 내게 입맞추면 난 밖으로 나가
거리에서 빛을 팔리라.

밤과 낮을 위해
그리고 영원의 사계절을 위해 건배.


/ 파블로 네루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40-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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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아홉 가지 단어 - 권력에서 문명까지 세계를 바꾼 인문학 키워드 세상을 밝히는 지식교양 2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동녘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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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실체인가 허구인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민족 분단의 역사적 경험을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다른 어떠한 이념보다 확고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 사회를 강하게 움직인 이념적 원리는 민족주의였다.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글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논점은 민족이 원초적 실체가 아니라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점이다.

민족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원초론과 도구론이 있다. 원초론은 민족의 영속성을 강조하는 객관주의적 민족 이론이다. 

언어, 종교, 지역, 혈연 등과 같은 객관적 요소를 민족의 기초로 강조한다. 즉 민족은 국가에 선행하며, 고대로부터 이미 존재해왔던 객관적 요소들을 기초로 한 원초적 실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도구론은 민족을 고대로부터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근대의 산물로 보는 주관주의적 민족 이론이다. 민족 공동체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귀속시키려는 의지, 즉 주관적 요소가 민족 형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88쪽

민족은 구성원들 사이의 동질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법 앞에ㅅ 모든 시민은 평등하다는 근대 시민권이 확립된 다음에야 비로소 성립 가능한 개념이다.

우리의 경우, 민족에 대한 이해는 도구론보다 원초론에 가깝다.

물론 근대적 의미의 민족이 혈연과 문화를 기반으로 한 전근대의 공동체와는 다른 새로운 특성을 지닌 공동체라는 주장은 타장하다. 근대적 민족이 되려면 신분제를 타파되고 모든 구성원을 평등한 구성원으로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89쪽.

해방 후 지배층이 오랫동안 국민을 동원하거나 억압하는 기제로 민족주의를 사용했던 반면, 시민과 민중 진영에서는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기제로 민족주의를 사용했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에는 분단 해소를 위한 통일 논의가 제기되고 민족주의가 이를 뒷받침했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세계화 추세에 대응하는 이념으로서 지속되고 있다.

요컨대 해방 이후 반체제 민족주의는 민주화와 사회적 연대의 이념을 담고 있으며, 앞으로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91쪽.

<백범 김구, 나의 소원>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 세운 천당 ·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그런고 하면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있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못 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는 없는 것이, 마치 형제도 한 집에서 살기 어려움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부 소위 좌익의 무리는 혈통의 조국을 부인하고 소위 사상의 조국을 운운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 소위 사상의 동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계급을 주장하여, 민족주의라면 마치 이미 진리권 외에 떨어진 생각인 것같이 말하고 있다. 심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어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내에서나 혹은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인하여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어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견고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흥망성쇠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사는 것이다.
세계 인류가 너나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인 희망이요, 이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멀고 먼 장래에 바랄 것이요, 현실의 일은 아니다.

사해동포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향상하고 전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마땅히 할 일이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일이니,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99-100쪽.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

by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나남, 2002


우리가 민족주의를 ‘자유주의‘나 ‘전체주의‘보다는 ‘친족‘이나 ‘종교‘와 연관되는 것으로 취급했다면 문제는 더 쉬워졌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인류학적 정신에서 다음과 같은 민족의 정의를 제안한다. 

즉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적 공동체이다.

민족은 구성원들 대부분이 다른 구성원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의 이미지가 살아 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르낭Renan이 "민족의 핵심은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전 소속윈들이 많은 것을 망각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라고 썼을때, 그는 유쾌한 화법으로 이 상상함을 언급한 것이다. 

겔너Gellner는 "민족주의는 민족들이 자의식에 눈뜬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는 민족이 없는 곳에 민족을 발명해낸다"고 서슴없이 단언하고 있는데, 이는 위와 유사한 논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민족을 발명한다는 공식의 결점은 발명을 상상이나 ‘창조‘보다는 ‘허위날조‘나 ‘거짓‘과 같은 것으로 본다는 점에 있다. 사실 모든 이의 얼굴을 잘 아는 원초적 마을보다 큰 공통체는 상상의 산물이다. 공동체들은 그들의 거짓됨이나 참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상상되는 방식에 의해서 구별되어야 한다.

자바Java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은 무한히 늘릴 수 있는 친족의 그물처럼 특별한 형태로 상상되었다.

아주 최근까지 자바에는 ‘사회‘라는 추상체를 뜻하는 단어가 없었다. 우리는 오늘날 구체제의 프랑스 귀족을 하나의 계급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은 아주 뒤늦게, 오늘날에 이르러 상상된 것이다.

(...) 궁금적으로 지난 2세기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제한된 상상체들을 위해 남을 죽이기보다 스스로 기꺼이 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이 형제애이다.

102-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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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이란 언제나 고통 뒤에 온 것임을

밤이 온들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머무네

손에 손을 잡고 서로를 마주 보자
비록 저기
우리의 팔로 이어진 다리 아래
영겁의 시선에 지친 물결이 흐를지라도

밤이 온들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머무네

사랑은 가네 흐르는 물처럼

40쪽

사랑은 가네
삶이란 느린 것이기에
또 희망이란 난폭한 것이기에

밤이 온들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머무네

하루하루가 지나고 한 주 한 주가 지나가고
지나간 시간도
그 사랑도 돌아오지 않아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밤이 온들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머무네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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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상승과 하강의 동선, 그리고 ‘대체‘의 모티브로 정교하게 직조된 영화다.

  처음엔 자연스레 비워진 자리를 기택 가족이 차지하지만 나중에느 그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자를 쫓아내고서 차지한다. 

이때 자신이 계획에 따라 자리를 두고 스스로 떠난 민혁은 그들과 다른 계급이지만, 모함에 따라 쫓겨나서 자리를 비워주게 된 윤 기사와 문광은 그들과 같은 계급이다. 

결국 기택 가족에게 일자리는 상층 계급의 제의 또는 다른 하층 계급과의 투쟁 결과로 생긴다. 기택 가족의 생존 투쟁은 언제나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하층 계급이 가질 수 있는 파이 크기는 정해져 있기에, 그걸 차지하기 위해서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서의 같은 계급 내 싸움이 불가피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층 계급이 그렇게 믿게 된 것은 상층 계급이 그렇게 대해 왔기때문이다. 동익은 문광의 음식 솜씨를 칭찬하면서도 "아줌마는 쌔고 쌌으니 또 구하면 된다"라고 말한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면서 동익은 신제품이 휴대폰과 호환이 되느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데, 그 회사 이름이 ‘어나더 브릭(Another Brick)‘인 데서 알수 있듯이, 결국 그는 피고용인을 대체하기 쉬운 벽돌처럼 여기는 사람이다.

27쪽.

동익에게 중요한 것은 일하게 될 사람의 ‘고유성‘이 아니라 ‘표준화된 노동력‘이 구사되는 자리 자체이며, 그 자신은 그 일자리를 만들어낸 주인이다. 그러므로 기택 가족에게 그들이 얻길 원하는 자리에 이미 앉아 있는 자는 고유성을 가진 인격체가 아니라 나를 위해 물러나야 할 선점자이면서 오로지 적일 뿐이다. 

거실에서의 술파티 도중에 기택이 불쑥 윤 기사를 걱정하는 말을 하자, 잔뜩 취한 상태로 기정은 "우리가 제일 문제잖아. 윤 기사 말고 우리 걱정만 하면 되잖아"라고 외친다. 그 순간 천등 번개가 치고 문광이 찾아와 인터폰을 누른 후 지옥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그 안에 붙박인 자를 찾아기기 위해 지옥의 문을 열려면, 벽과 찬장 사이의 좁은 공간에 몸을 욱여넣고 평행 방향으로 힘을 써야 한다. 혼자서는 하기 힘들기에 누군가 찬장을 평행 방향으로 동시에 당겨주면 좀 더 수월하다. 문광과 충숙은 그렇게 합세해서 문을 열어젖히는 데 성공하지만, 그 문 아래의 세상으로 하강한 뒤에는 곧바로 갈라진다. 문광은 그곳에서 살고 있는 근세를 처음 보고 놀란 충숙에게 "같은 일하는 사람끼리" 또는 "같은 불우이웃끼리"라면서 계급적 연대감을 요청하지만, 충숙은 "난 불우이웃이 아니야" 라는말로 스스로를 다른 위치에 자리매김하려고 한다. 

상류층과의 ‘믿음의 벨트‘로 일자리를 얻은 후 ‘계급적 환상‘을 가지게 된 충숙은 문광이 사용하는 언니라는 호칭까지 냉정히 불허함으로써 자매애의 사슬을 끊는다. 그리고 먼저 반감을 드러낸 것은 경찰에 신고하겠다면서 위협한 충숙의 가족이었다.

이 영화에는 악인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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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것은 봉준호의 영화들에서 하층과 최하층이 구분되어 보일 때가 많다는 점이다. 극 중 하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최하층으로 굴러떨어지지 않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하층에 맞서는 그들이 기대는 마지막 제도는 가족이다. 

(봉준호의 영화 속 주인공이 가족 단위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물림을 통해 그 체계를 공고하게 만드는 계급의 최소 단위인 가족은 하층에 속하는 인물들에게 생래적으로 좌절을 안겨주지만,
최하층과 맞설 때는 역으로 마지막 보루가 되는 것이다.

「마더」에서 도준(원빈)과 종팔(김홍집)은 바로 그 지점에서 명암이 갈린다. 종팔이 도준의 죄를 뒤집어쓰는 것은 결국 도준에게 있는 엄마(김혜자)가 그에겐 없기 때문이다. 

(감옥에 갇힌 종팔을 면회하면서 도준의 엄마는 연민과 죄책감으로 "넌 엄마도 없니?"라며 눈물을 흘린다.) 「옥자」에서 사지를 벗어나는 데 성공하는 옥자와 달리 그 외의 수많은 슈퍼돼지들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지는 것은 옥자에겐 있는 언니(안서현)가 그들에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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