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상승과 하강의 동선, 그리고 ‘대체‘의 모티브로 정교하게 직조된 영화다.

  처음엔 자연스레 비워진 자리를 기택 가족이 차지하지만 나중에느 그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자를 쫓아내고서 차지한다. 

이때 자신이 계획에 따라 자리를 두고 스스로 떠난 민혁은 그들과 다른 계급이지만, 모함에 따라 쫓겨나서 자리를 비워주게 된 윤 기사와 문광은 그들과 같은 계급이다. 

결국 기택 가족에게 일자리는 상층 계급의 제의 또는 다른 하층 계급과의 투쟁 결과로 생긴다. 기택 가족의 생존 투쟁은 언제나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하층 계급이 가질 수 있는 파이 크기는 정해져 있기에, 그걸 차지하기 위해서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서의 같은 계급 내 싸움이 불가피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층 계급이 그렇게 믿게 된 것은 상층 계급이 그렇게 대해 왔기때문이다. 동익은 문광의 음식 솜씨를 칭찬하면서도 "아줌마는 쌔고 쌌으니 또 구하면 된다"라고 말한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면서 동익은 신제품이 휴대폰과 호환이 되느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데, 그 회사 이름이 ‘어나더 브릭(Another Brick)‘인 데서 알수 있듯이, 결국 그는 피고용인을 대체하기 쉬운 벽돌처럼 여기는 사람이다.

27쪽.

동익에게 중요한 것은 일하게 될 사람의 ‘고유성‘이 아니라 ‘표준화된 노동력‘이 구사되는 자리 자체이며, 그 자신은 그 일자리를 만들어낸 주인이다. 그러므로 기택 가족에게 그들이 얻길 원하는 자리에 이미 앉아 있는 자는 고유성을 가진 인격체가 아니라 나를 위해 물러나야 할 선점자이면서 오로지 적일 뿐이다. 

거실에서의 술파티 도중에 기택이 불쑥 윤 기사를 걱정하는 말을 하자, 잔뜩 취한 상태로 기정은 "우리가 제일 문제잖아. 윤 기사 말고 우리 걱정만 하면 되잖아"라고 외친다. 그 순간 천등 번개가 치고 문광이 찾아와 인터폰을 누른 후 지옥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그 안에 붙박인 자를 찾아기기 위해 지옥의 문을 열려면, 벽과 찬장 사이의 좁은 공간에 몸을 욱여넣고 평행 방향으로 힘을 써야 한다. 혼자서는 하기 힘들기에 누군가 찬장을 평행 방향으로 동시에 당겨주면 좀 더 수월하다. 문광과 충숙은 그렇게 합세해서 문을 열어젖히는 데 성공하지만, 그 문 아래의 세상으로 하강한 뒤에는 곧바로 갈라진다. 문광은 그곳에서 살고 있는 근세를 처음 보고 놀란 충숙에게 "같은 일하는 사람끼리" 또는 "같은 불우이웃끼리"라면서 계급적 연대감을 요청하지만, 충숙은 "난 불우이웃이 아니야" 라는말로 스스로를 다른 위치에 자리매김하려고 한다. 

상류층과의 ‘믿음의 벨트‘로 일자리를 얻은 후 ‘계급적 환상‘을 가지게 된 충숙은 문광이 사용하는 언니라는 호칭까지 냉정히 불허함으로써 자매애의 사슬을 끊는다. 그리고 먼저 반감을 드러낸 것은 경찰에 신고하겠다면서 위협한 충숙의 가족이었다.

이 영화에는 악인이 따로 없다. 

28쪽

미묘한 것은 봉준호의 영화들에서 하층과 최하층이 구분되어 보일 때가 많다는 점이다. 극 중 하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최하층으로 굴러떨어지지 않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하층에 맞서는 그들이 기대는 마지막 제도는 가족이다. 

(봉준호의 영화 속 주인공이 가족 단위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물림을 통해 그 체계를 공고하게 만드는 계급의 최소 단위인 가족은 하층에 속하는 인물들에게 생래적으로 좌절을 안겨주지만,
최하층과 맞설 때는 역으로 마지막 보루가 되는 것이다.

「마더」에서 도준(원빈)과 종팔(김홍집)은 바로 그 지점에서 명암이 갈린다. 종팔이 도준의 죄를 뒤집어쓰는 것은 결국 도준에게 있는 엄마(김혜자)가 그에겐 없기 때문이다. 

(감옥에 갇힌 종팔을 면회하면서 도준의 엄마는 연민과 죄책감으로 "넌 엄마도 없니?"라며 눈물을 흘린다.) 「옥자」에서 사지를 벗어나는 데 성공하는 옥자와 달리 그 외의 수많은 슈퍼돼지들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지는 것은 옥자에겐 있는 언니(안서현)가 그들에겐 없기 때문이다.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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