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게>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의 영위했던 열정적이고도 의미심장한 삶, 그리고 단테의 중세 기독교 세계를 구성했던 의미의 거대한 위계질서는 모두 우리의 세속 시대와는 뚜렷한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거 세계는 다양한 형태로 **성스럽고도 빛나는 사물들의 세계를 이루곤 했습니다. 그러나 빛나는 것들은 이제 멀리 사라진 듯합니다.
고전적인 철학서와 문학작품들의 빛 속에서 삶을 경험함으로써 자기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기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빛나는 것들을 다시 불러들이고자 하는 사람, 우리가 한때 경험했던 경이를 다시 밝혀내고자 하는 사람, 또한 그런 정조를 일으키는 세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 망설임과 기다림, 무표정과 상실, 슬픔과 불안의 시간을 끝내고자 하는 사람, 다음에 올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 절망 대신 희망을 가지려는 사람, 또는 절망을 떨쳐내고 싶지만 아직 그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
이런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제 시작될 이야기에서 뭔가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1-2쪽
<1. 선택의 짐 (1)>
확실성의 느낌은 오늘날 상당히 드문 것이 되어 버렸다. 사실, 현대인의 삶은 그와는 정반대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삶의 거의 모든 순간마다 **선택의 무자비한 파도에 직면하며, 그때마다 *심하게 흔들리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우리가 접하는 선택 중에는 사소한 것이 아니라 심각하고 걱정스러운 것들도 많다. 그런 선택은 우리 존재의 **심장부까지 베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예컨대 이 관계를 끝낼 때가 되었나? 직장을 그만둘까? 이 후보자, 이 동료, 이 집단과 손을 잡아야 할까?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이런 종류의 선택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또 우리는 어떤 근거를 가지고 선택을 내려야 할지 궁금해 한다. 그러면서 이미 내린 선택을 후회하거나 다행으로 여긴다.
많은 사람들은 **선택의 자유가 현대의 삶이 이룩한 **위대한 진보의 표식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할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이런 견해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다.
비참한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을지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직업 선택의 자유란 것도 극심한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가 없을 때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현대 세계의 특징은 우리들 대다수에게 그 이전보다 선택-어떤 사람이 될지, 어떻게 행동할지, 누구 줄에 설지-의 *폭이 더 넓어졌다는 바로 그 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이런 종류의 **실존적 선택에 직면했을 때, 저것 아닌 ‘이것‘을 선택하게끔 해주는 ***참다운 동기가 없다는 점에 있다. 웨슬리 오트리가 위험에 처한 사람과 마주쳤을 때 느꼈던 확실성을 우리 자신의 삶과 행동에서 발견하기란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19-20쪽
어쨌든 이 시대에 선택의 짐을 회피하는, 그것도 나쁜 방식으로 회피하는 사람들로는 두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자기 확신 self-confidence에 넘치는 사람이다(보통은 남자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모든 행동에 확실하게 뛰어든다. 그는 그 세계를 **명약관화한 것으로 여긴다. "지금 이처럼 올바른 결정을 하는 데 대해 어느 누가 의심하랴?"라고 묻는 것만 같다. 이런 확신으로 인해 그는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자기와 함께하도록 끌어들인다.
이런 자기 확신형 인간은 종종 **강요적 인간형이기도 하다. 그는 *충동적이면서 *자기중심적인 나머지 세상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자기이상에 맞춰 세상을 정렬하는 데 골몰한다.
진정 그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이상이 훌륭한 것이고, 세상을 자기 의지대로 주조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세계가 될 것이며, 때때로 더 좋은 세계를 위해 자신이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태도에는 위험도 따른다. 그런 헛된 자신감으로 가득 찬 사람은 대개 자신감의 **어두운 기원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갓 *야심과 결탁한 *거만함이거나 더 나쁘게는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계획들이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경우에도 자신감 넘치는 사람은 종종 실패한 것을 깨닫지도 못한다. 그는 사안들이 자기 이상대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완고하게 빠진 나머지 현실에 대응조차 하지 못한다. 자신감 넘치는 사람은 확신이 자신의 장점이라 믿는다. 이런 종류의 자신감이 극한에 이르면 *광신주의로 귀결된다.
21-23쪽
<1. 선택의 짐 (3)>
/ 선택을 회피하는 두 번재 방식
현대에는 선택의 짐을 회피하는 두 번째 길도 있는데, 이 길도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제조된 확신의 길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우리가 거론하려는 사람들은 *강박이나 심취 또는 *중독의 노예가 된 탓에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말이지 자신을 넘어선 무언가에 이끌린 나머지, 자신이 하려는 일을 아예 잊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과 영웅적인 옽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어떤 중독 현상은 현대적 외피를 입고 더 부각되고 있는데, 테크놀로지 시대 이전에는 없었던 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크 따위가 그것이다.
선택의 짐은 **특히나 현대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더 이상 **신 혹은 신들을 믿지 않는 세상,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그 어떤 **신성 불가침한 존재도 없는 세상에서 증식한다. 그러나 선택의 문제를 해소하는 방식들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고집스러운 자기 확신이나 중독으로 인한 통제력 상실은 둘 다 선택의 짐을 회파하는 방식-전자는 대안의 인정을 거부하기 때문이고, 후자는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이지만, 이것들 중 어느 것도 아무런 계산 없이 영웅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의 경험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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