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적>


니체는 용서의 윤리학을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적과 제대로 싸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애초 존경할 만한 적만을 상대하라는 것.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 즉 내가 **고귀해지기 위해서다.


적에 대한 증오로 세월을 허비하느라 공허해지는 길도 있다. 이에 대한 니체의 설명은 심오한데, 잘 알려진 대로, 이 대목이 니체 사상의 핵심 중 하나다.

"반대로 원한 ressentiment의 인간이 적을 상정하는 방식을 상상해보자. 바로 여기서 원한의 인간이 행위하고 창조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그는 ‘악한 적‘, 그러니까 ‘나쁜 놈‘을 상정한다. 그런 인간을 기본 개념으로 삼고, 그로부터 어떤 잔상 after-image이자 상대 counterpart인 다른 존재를 도출해내는데, 그것이 바로 ‘착한 놈‘이다. 바로 자기 자신 말이다!"


적을 ‘악‘으로 규정해야만 자신을 ‘선‘이라 믿고 자족할 수 있는 이들의 근본 감정은 "원한"이고, 그것은 언제나 반작용과 불과한, 반종적인 행위만을 낳기 때문에 열등하고 위험하다는 것.

굳이 니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타인을 부정해야만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삶은 비극적이다.

어떤 이를 비판할 때 해서는 안되는 일 중 하나는 상대방을 ‘*비판하기 쉬운 존재로 만드는‘ 일이다. 그에 대한 나의 비판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그의 다른 이미 존재할 때, 그것을 못 본 척해서는 안된다.

**그런 비판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비판당하는 적은 *황당한 불쾌감을, 비판하는 나는 *얄팍한 우월감을 느끼게 될 뿐, 그 이후 둘은 ‘이전보다 더 자기 자신인‘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요컨대 진정한 비판은 적의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부분과 맞서는 일이다. 니체의 말대로 **적을 대하는 태도는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돼 있다. 적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적을 사랑하면서 고귀해질 것인가, 적을 조롱하면서 공허해질 것인가. 수많은 매체가 생겨나고, 수많은 비판들이 쏟아진다. 좋은 비판과 나쁜 비판이 있다. 전자는 어려워서 드물고 후자는 쉬워서 흔하다.


349-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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