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보다 큰 수수께끼는 없어.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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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락원>



인간이 저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이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고, 한 분 위대한 인간이 우리를 회복시켜 저 지극히 복된 자리를 되찾아 주실 때까지, 우리는 에덴을 잃고 온작 재앙 속에서 살아가야 했으니, 하늘의 뮤즈여, 인간의 저 최초의 불순종에 대해 노래하라.


(...) 저 지옥의 뱀, 바로 그 자였다. 그가 *질투와 *복수심에 불타서 교활한 술수로 인류의 어머니를 속였다. 그 때에 그는 자신의 *교만 때문에 자신의 군대인 반역 천사들과 함께 천국으로부터 쫓겨나 있었다.

반역을 일으키기만 한다면, 그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동료들보다 더 큰 영광을 얻어서 지존자와 대등해질 것이라고 믿고서, 야망을 품고 하나님의 보좌와 왕권을 대항하여 천국에서 불경스러운 전쟁이자 오만방자한 싸움을 일으켰지만, 그것은 헛된 시도였다.

전능자에게 도전하여 반기를 든 그는 전능하신 분에 의해 불길에 휩싸여서 타들어가는 가운데 영기천으로부터 거꾸로 내던져져서 무저갱으로 끔찍하게 추락하여, 거기에서 금강 사슬에 묶인 채로 형벌의 불 속에 살게 되었다.

천사의 시력으로 아무리 멀리 바라보아도 황량하고 거칠고 음산한 광경뿐, 소름끼치는 지하 감옥, 온 사방으로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처럼 불길이 솟아오르지만, 그 불길로부터 나오는 빛은 없고, 오직 눈에 보이는 어둠만이 처절한 광경들을 드러내줄 뿐이다.

비탄의 지대, 암울한 음부, 거기에는 평안과 안식은 결코 거할 수 없고, 누구에게나 오는 소망도 결코 오지 않으며, 오직 영원히 타오르는 유황 불 못 속에서 타지도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만 있을 뿐이다.


(...) 하지만 그 무기 때문에, 저 능력 있는 승리자가 진노하여 다른 벌을 가할 것이 두려워서, 회개하거나 마음을 바꿀 내가 아니오.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광채는 변하였지만, 상처 받은 자존감으로부터 생겨난 저 결연한 마음과 지독한 모멸감이 나를 일으켜 세워 전능자와 다투게 하였고, 무수한 영들의 군대를 무장시켜 치열한 싸움으로 내몰게 만들었소.

모든 것에서 지지는 않았소. *불굴의 의지, *불타는 복수심, *불멸의 증오심,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용기, 이런 것들에서 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졌다고 할 수 있겠소.

10-19쪽

그러자 큰 원수(사탄)는 신속하게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떨어진 그룹 천사들이여, 
무엇을 하든지 겪든지 *약하다는 것은 비참한 것이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니, 
**선을 행하는 것은 절대로 우리의 일이 되어서는 안 되고, **악을 행하는 것이 언제나 우리의 *유일한 즐거움이 되어야만, 
우리가 대항하는 그의 높은 뜻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이오. 

우리의 *악으로부터 *선을 이끌어 내는 것이 그의 섭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선으로부터 **악을 이끌어 낼 수단을 찾아내려고 애써야만, 그 *목적을 망쳐놓을 수 있소. 실패하지 않는다면, 그 일에 *자주 성공해서 아마도 그를 *근심하게 만들 수 있고, 그의 아주 은밀한 계획들을 *훼방하여 그가 이루려고 정한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만들 수 있소.



**공포들이여. 반갑다, 지역세계여!
너 깊고 깊은 지옥이여,
너의 새 주인을 영접하라.


**천국에서 섬기며 살아가느니 **지옥에서 다스리며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


**깨어서 일어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21-30쪽

지금은 반란으로 인해서 그들의 이름이 천국의 기록들에서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생명책에서도 지워지긴 했지만, 전에 그들은 인간보다 우월한 신 같은 형상, 군왕의 위엄을 지니고서 보좌에 앉아 다르렸던 권력자들이었다.

또한 아직 하와의 자손들 가운데서도 새로운 이름들을 얻지 못했는데, 나중에 하나님의 *허락 아래 땅을 두루 다
 니며 **그릇된 지식과 *거짓말로 사람들을 *시험해서 인류의 거의 대부분을 *타락시켜서, 그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을 지으신 분의 보이지 않는 *영광을 **짐승의 우상으로 바꾸어서, *화려한 제의와 황금으로 가득한 그럴 듯한 *종교들로 치장하여, *귀신들을 신들로 *숭배하도록 만들었을 때에야, 그들은 이교 세계 전체에 *다양한 이름들과 *우상들로 알려지게 될 것이었다.


이제 그의 마음은 **교만으로 부풀어 오르고, 자신의 *힘에 대한 *자랑으로 *완고해진다.


그 무리를 지휘하는 자는 맘몬(‘부‘를 뜻하는 아람어로서 부를 의인화한 것)이었다. 하늘로부터 떨어진 모든 영들 중에서 가장 비속한 영이었던 그는 하늘에 있을 때도, 그의 시선과 생각은 언제나 아래로 향해 있어서,

저 ‘지복의 직관‘(천국의 가장 큰 기쁨인 하나님을 뵈옵는 것을 가리키는 스콜라주의적인 용어) 가운데서 **신성하거나 거룩한 것들을 보는 것보다는 천국의 화려한 **황금길을 보며 감탄하기를 더 좋아했던 자였다.





/ 전승에 의하면, 천사들의 위계는 아홉 단계로 되어 있다. 스랍 천사, 그룹 천사, 보좌 천사, 통치 천사, 능력 천사, 권세 천사, 정사 천사, 천사장, 천사. 스랍 천사는 최고위 천사들이다.



4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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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죄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지었기 때문에 응당한 사회적 처벌을 받는 게 아니라 어떤 행위를 사회적으로 처벌하기 때문에 그게 죄라고 간주하는 거죠. 어떤 사회적인 규범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의 시작입니다.

식민지 건설 초기는 물론 매우 엄격한 청교도적 도덕관과 윤리의식이 강요되던 시기였습니다.

"새 식민지를 건설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인간의 덕성과 행복에 찬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었는지 몰라도 으레 처녀지의 일부를 *묘지로, 또 다른 일부를 *감옥터로 떼어 두는 것이 실제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묘지란 죽음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뜻하는 인간의 유한성 역시 유토피아와는 양립하기 어렵죠.

감옥이란 문명의 상징이기도 한데, 거기에 갇힌 죄수들은 문명사회에서 단죄를 받은 상태죠. 하지만 자연은 대단히 관대해서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조차도 환한 아름다움으로 다독거려주고 있는 것이죠.

(...) 이것은 징벌이면서 동시에 축복입니다. 그래서 양가적이에요. 어떤 점에서는 *인간의 율법이 신의 *심판보다 더 엄격한 셈이되죠. 신조차도 관대하게 축복하는 어떤 존재에 대해서 인간은 단죄하고 있으니까요.

헤스터와 펄 모녀는 공동체로부터 배제된 생활을 합니다. 마치 ‘호모 사케르‘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은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도 공동체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 모녀는 그래서 중간적인, 이중적인 사회적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그러한 이성적 탐구를 두고서 ‘도구적 이성‘이라고 비판하게 됩니다. 가치에 대한 물음을 배제하고 이성을 오직 도둑적 수단으로만 이용한 것이지 때문입니다.


/ 마음의 감옥에 갇힌다는 것

주홍글자는 간통 소설인 동시에 감옥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속에 두 가지 감옥이 있습니다. 헤스터를 징벌하는 눈에 보이는 감옥이 있고, 딤스데일이 갇혀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옥이 있죠.

헤스터는 감옥에서 빠져나오고, 딤스데일은 점점 자신을 옥죄어가며, 결국 죽어서야 죄의식, 즉 고통에서 해방됩니다. 감옥에 두 가지 버전이 있는 셈이죠.


50-74쪽

<주홍글자>는 종종 안나 카레니나와 비교됩니다. 톨스토이의 과제는 *육체적 자아와 *정신적 자아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거였어요. 하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이 둘 사이의 조화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정신과 육체가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불행한 가정은 이게 조화를 이루지 않는 거예요.

안나와 브론스키도 불행해지는데, 둘의 관계가 사회적인 인정을 못 받을뿐더러 안나의 욕망이 통제를 벗어나기 때문이죠.

(...) 톨스토이는 육체적 자아를 완전히 부정하고 정신적 자아만을 선택한 것이죠. 미란 무엇일까요. 미는 원래 육체적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레빈으로 대변되는 *도덕적인 선을 지향점으로 삼게 된 이후에는 *예술 장르로서 *미를 추구하는 소설을 버립니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끝냄과 동시에 소설을 버리고, 참회록의 세계로 넘어갑니다.


호손은 그와 다른 세계를 보여줍니다. 호손도 두 사람을 등장시키는데, 레빈 격의 딤스테일과 안나 격의 헤스터를 등장시켜 각기 다른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딤스데일 식 결말은 곧 톨스토이적 결말이고, 헤스터 식 결말은 톨스토이가 가지 않은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지 않은 길을 더 극단까지 간 소설가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입니다. 로렌스는 <안나 카레니나>의 *도덕주의적인 결말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오히려 로렌스는 **육체에서 **해방의 가능성을 보게 돼요.

톨스토이 생각에는, 일단 욕망의 길로 빠져들게 되면 해피 엔딩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로렌스는 동의하지 않지요. 다른 방향으로 해피엔딩을 보여주고자 한 게 채털리 부인의 연인입니다. 로렌스 식 ‘성애의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작품이죠.

호손은 모호하게도 그 두 가지 결말을 다 보여줍니다. 따져보자면 호손은 톨스토이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 쪽에 가까워요. <죄와 벌>처럼 변증법적인 과정을 보여줍니다. 앙드레 지드나 톨스토이는 *도덕이라는게 **‘좁은 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도덕적인 선의 길이라는 건 점점 좁아질 뿐입니다. 선은 악이 아니고, 악은 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서는 *선과 악이 *동일합니다. 서로 *대립물처럼 보이지만 그것의 *동일성을 보여주는 게 *헤겔 식 변증법의 논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논리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한 죄인‘들을 그리죠. 헤스터 프린도 말하자면 ‘위대한 죄인‘이에요. 톨스토이의 작품에서는 이게 불가능합니다.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미에서 구원을 보려고 했어요. ‘미란 넓은 것‘이라고 말했죠. 좁은 길이 아니라 너무 넓어서 문제인 세계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입니다. 호손도 부분적으로는 그처럼 ‘넓은 길‘을 보여줍니다.


70-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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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섬세하지는 않았지만,
운명을 자신의 주인이 아닌
동등한 상대로 보는 데서 비롯된
여유와 자신감이 있었다.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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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론>


1. 전쟁이란 무엇인가?

1) 정의

전쟁이란 대규모의 결투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전쟁을 구성하는 수많은 결투들을 하나의 단위로 이해한다면 결투를 벌이는 두 사람을 상상함으로써 전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두사람은 각기 물리적인 힘으로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에 굴복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직접적인 목표는 상대를 쓰러뜨려 상대가 더이상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이란 우리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폭력 행위다.

폭력은 상대방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창안된 일련의 술(術)과 과학으로 스스로를 무장한다. 폭력에는 국제법상의 관례라는 이름으로 제한이 따르지만 그 제한은 폭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지 못한다. 

**폭력은 전쟁의 수단이며, 적에게 우리의 *의지를 *강요하는 것은 전쟁의 *목적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적을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이론상으로 전쟁 행위의 진정한 목표다. 

이 목표는 목적을 대신하고 전쟁 자체의 실제 부분이 아닌 것인 목적을 내버린다.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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