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오는 정의니 뭐니 하는 도덕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것입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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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나 사람이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 (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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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 여행자


"희한한 얘기지만, *조율을 전문으로 공부한 뒤부터 *오히려 피아노 치는 게 **즐거워졌어.

어렸을 때부터 죽을 둥 살 둥 피아노를
쳤잖아. 연습을 거듭해서 실력이 느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어. 하지만 피아노 치는 게 *즐겁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것 같아. 

나는 오로지 문제점을 극복할 목적으로 피아노를 치고있었어. 건반을 잘못 짚지 않도록, 손가락이 꼬이지 않도록, *사람들을 감동시키도록.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을 *포기한 다음부터는 **음악을 연주하는 기쁨이라는 게 겨우 이해가 되더라고, **음악이라는 게 이렇게 멋진 것이구나, 그제야 실감했어. 

**마치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했지. **짊어지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걸 짊어졌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지만."


"그런 이야기, 넌 나한테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내가 얘기 안 했던가?"
누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얘기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런 식으로는,
- P36

"설명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어." 그는 가로막듯이 말했다.

**"일일히 설명하지 않아도 좀 이해해줬으면 했던 것 같아. 특히 누나는." - P37

/ 하나레이 베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사치는 자신의 아들을 한 인간으로는 그다지 좋아할 수 없었다. 물론 사랑하기는 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소중하게 여기고는 있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어떻게도 호의를 가질 수 없었다. 

*만일 그 아이가 피를 나눈 내 자식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 옆에도 가지 않았을 거라고 사치는 생각했다. 제멋대로 굴고, 집중력이 없어서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낸 적이 없었다. 

- P70

여자와 잘 지내는 방법은 세가지밖에 없어.

첫째, 상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줄 것.

둘째, 옷차림을 칭찬해 줄 것.

셋째, 가능한 한 맛있는 걸 많이 사줄 것.

어때, 간단하지?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된다면 얼른 포기하는 게 좋아.

- P80

깜박하는 건 문제될 거 없어요.
아예 잊어버리는 게 문제죠.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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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마녀사냥


역사상 특이한 현상들이 많지만 ‘마녀사냥‘만큼 이해하기 힘든 현상도 드물 것이다.

15세기 말부터 수백 년 동안 유럽에서 마녀로 판정을 받고 처형당한 사람이 약 **10만 명에 이른다.

마녀 집회 현상에 대해서는 전문 역사가들 사이에서 아직까지 완전히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어떤 연구자들에 따르면 나중에 지독한 오해를 사고 억울하게 희생당하긴 했지만 마녀라고 오해받을 만한 어떤 역사적ㅇ니 내용이 실재했다는 견해이다.

이와 달리 어떤 연구자들은 그런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순전히 조작된 내용일 뿐이라는 주장을 한다.

신학자, 종교재판관, 정부 당국자 들이 그들이 읽은 종교 서적을 내용을 가지고 차츰 하나의 정형화된 개념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옭아맸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마녀 집회 같은 것은 순전히 상상력의 물이다.

그리고 이 두 견해의 중간적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우선 먼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교 전통이 있었고(첫 번째 견해), 이것을 *권력 당국이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생각대로 *개념을 조작해서 일반 민중들을 공격했다(두 번째 견해)는 것이다.

- P203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인간은 본디 무지몽매한 존재라 한번 미망에 빠지면 집단적으로 가혹한 고문과 살인을 저지르는 한심한 종자라서 그럴까?

유럽 문화, 특히 기독교는 극단적인 잔혹성을 내면에 품고 있는 문화이기 때문일까?
- P204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마녀사냥이 언제 일어났는가 하는 점이다. 흔히 마녀사냥을 중세적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근대 초의 현상이다.

마녀사냥이 가장 극성을 부렸던 시점은 **1590년대이며, 그 후 1630년대와 1660년대에 다시 정점에 올랐다. 유명한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의 마녀재판은 그보다도 뒤인 1692년에 있었던 일이다.

- P204

/ 마녀사냥과 여성


마녀사냥의 중요한 대상이 여성이었다는 점은 마녀사냥의 의미가 여성에게 가부장제 질서를 강요하는 것이었다는 해석을 낳게 한다.

- P205

그렇다면 누가 희생되었는가?

희생자들의 특징을 추려 보면 ‘여성, 빈민, 노인‘으로서, 이런 사람들이 악마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고 여겨졌다.

가장 전형적인 인물형은 "가난한 차지농(남의 당을 빌려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농민)의 부인, 특히 과부로서 50~70세의 연령대이며, 성질이 사나워 보이는 할머니"이다.

페미니즘 이론에서는 마녀사냥이라는 것이 근대 초에 **가부장제 질서가 더욱 굳건해지면서 전반적으로 남성 세계가 여성을 공격한 현상이라는 주장을 편다.

- P206

/ 고문


마녀사냥은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악마적인 힘을 제거하기 위한 **‘성스러운 작업‘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고문을 하는데 대해서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후기로 가면서 그나마 약간 개선의 여지를 보인 점은 고문을 단 한 차례만 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으니, 혐의자를 한번 고문하기 시작하면 쉬지 않고 계속 고문을 가하는 것이다.

- P207

/ 종교재판소


고야의 그림은 재판장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권력의 힘을 잘 보여준다.

*국가와 *교회는 *각자의 권력과 권위를 위해 결탁하여 *민중들을 **질서 체계 속으로 끌어들였다.

마녀사냥을 주도했던 인물들은 위험한 존재로부터 사회를 지키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따고 자부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시대 그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마녀사냥은 미친 짓이 아니라 **합리적인 행위였을 수 있다.

- P208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는 단죄는 아니더라도 어떻든 설명과 해석, 평가를 해야 한다. 물론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 먼저 몇 가지 기존 설명들을 보자.

흉년, 전쟁, 전염병 등과 같은 재난이 심해졌을 때 그에 대한 반응으로 마녀재판이 많이 벌어졌으리라는 설명이 있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서로 상대방을 마녀로 몰아서 공격했으리라는 설명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설은 기각되었다.

마녀재판이 물론 나쁜 일이지만 공동체 내에서 그 어떤 기능을 맡아서 했다는 설명도 있다.

마을에는 같이 지내기가 좀 곤란한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아주 가난한 사람이 있어서 도와 달라는 요청을 자주 하는데, 사람들이 때마다 도와 줄 수도는 없고 그냥 있자니 마음에 걸린다고 하자.

마녀사냥은 사람들의 죄책감이 기형적으로 발동하여 이런 사람들을 아예 제거하는 방향으로 작동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 밖에도 희생자들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서 한 짓이라는 식의 다른 여러 설명들이 있으나 대부분 부정되었다.
- P209

마녀사냥은 중세적 배경을 가졌지만 본질적으로 근대적 현상이라는 점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로 들어오면서 *일반 민중들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큰 에너지를 띠게 된다. 이들을 그 상태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고 **질서 체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질서를 부과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억압한다는 것을 뜻한다.

**근대의 권력 당국, 곧 국가와 교회는 그들의 권위에서 벗어나려는 자들을 제거하고 모든 국민들의 **복종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국가는 교회로부터 이데올로기를 빌리고 교회는 국가로부터 힘을 얻는다.

한 국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사고마저도 함께해야 한다. 모두 같은 기독교를 믿어야 하며, 교회의 축성을 받은 국왕을 잘 따라야 한다.

국민들 가운데 어떤 자는 기독교도이고 어떤 자는 이슬람교도이고 또 어떤 자는 무당을 믿는 상태로는 **통치하기가 어렵다.

**근대 국가는 **‘균질한 영혼‘들이 국가 기구에 복종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이것이 마녀사냥이 결과적으로 행한 역할이다. - P210

마녀사냥과 같은 현상을 보노라면 우리 마음속에 집단 광기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마녀사냥은 그 모습 그대로는 근대 초 유럽의 특이한 현상이지만 유사한 현상은 언제나 있었다.

**사회 전체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불순한 세력!
그것은 히틀러에게 유대인이고,
파시스트들에게는 공산주의자들이며,
남한 정권에서는 북한이 사주하는 불순 세력이고
북한 정권에게는 ‘남한과 미제의 스파이들‘이다.

**때로 권력은 일부러 그런 위험 세력을 조작해 내서 사람들을 선동하려 한다.

그런 조작이 너무나도 쉽게 먹혀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내면에 **‘마녀사냥‘식의 충동이 잠재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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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O가 창설된 이후에 마셜플랜의 지원금은 미국으로부터 식량, 연료, 공산품과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는 데 쓰였다.

무기는 미국의 중요한 수출 품목으로 부상했고, 미국 자본주의의 군산복합체적 성격은 미국과 세계 경제를 추동하는 가장 중요한 힘 중 하나가 되었다.

- P30


*한국과 같은 선택받은 *일부 개발도상국가가 자본주의의 **‘쇼윈도‘로 고도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도 *냉전을 고려하지 않고는 설명될 수없다.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의 원동력 중 중요한 일부가 바로 *냉전이라는 군사적인 동력에 기초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역사적 복지국가(welfare state)의 출현이 *전쟁국가(warfare state)와 관련이 있다는 캐럴 패이트먼(Carole Pateman)의 주장과 전쟁과 복지가 동반자였다는 토니 주트(Tony Judt)의 주장은 실증적인 인과관계를 논증할 수 없다고 해도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것 같다.

**브레튼우즈체제와 냉전이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국제적 측면에서 이해하려고 한 것이라면 
**‘소비시대와 기술 진보‘는 *내적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확장 동력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전후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건조기, 전화기 등과 같은내구제의 대량소비는 자본주의 경제에 강력한 추동력을 제공했다. 

*성별 분업에 기초한 *핵가족이 교외에 집을 사고 그 집을 내구 소비재로 가득 채운 레비타운(Levittown)으로 상징되는 *대량소비의 시대는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가능하게했던 중요한 동력이었다. 

더욱이 1940년대 후반 미국을 거쳐 1950년대 서유럽에 상륙한 **소비주의는 그 어떤 이념보다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대변하는 강력한 이념이 되었다. 

소비주의가 대중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들조차 소비주의를 거부하고 국가권력에 다가설 수가 없었다.

- P29

 **한나 아렌트(HannahArendt)는 모든 것이 소비를 위해 생산되는 자본주의 황금시대의 *소비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했다.

**"노동하는 동물의 *여가시간은 오로지 *소비에만 소모되며 그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의 **탐욕은 더 커지고 더욱 강해진다. 

이들 *욕구가 보다 정교해짐에 따라서 *소비가 더 이상 *필수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주로 **사치품에 집중된다는 점은 *이 사회의 *성격을 변화시키기보다 오히려 이 사회의 심각한 *위협을 **은폐한다. 

*그 위험은 종국에는 *세계의 모든 대상이 소비와 소비를 통한 무화로부터 안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

- P33

소비주의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대량소비는 자본주의 황금시대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필수 전제였다. 

그리고 이러한 *대량소비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의 상승과 **정부의 사회지출의 증가에 의존했다. 

만약 자본주의 황금시대동안 실질임금이 증가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 황금시대가 사반세기 가까이 지속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P33


정부지출, 수출, 투자의 증가가 실질임금 상승과 함께 소비 증대의 또 하나의 필수적 요소였다. 정부지출의 증가가 대량소비와 호황을 뒷받침했던 중요한 힘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축적에 의한 축적, 즉 *자본의 투자에 의해 *소비가 증대하고 이것이 다시 *축적을 확대하는 그 과정 자체가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지속시킨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의 상승 또한 축적 과정 그 자체의 산물이었다. **결국 임금 상승, 정부지출 증가, 기업투자 증가가 자본의 축적에 기여함으로써 자본주의 황금시대의 놀라운 성장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특징은 1950년대 이후에 펼쳐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 P34

경제의 핵심 부문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장려는 물론 필요할 경우 ‘지도‘하는 것도 용인되었다. 좌파만이 계획을 지지했던 것도 아니었다.

**이념과 관계없이 대부분의 정치세력은 잘 계획된 경제가 자유시장보다 더 풍요롭고 공정한 자본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신념을 공유했다.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의 존속을 전제로 기업을 국유화하고 정부가 경제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혼합경제 mixed economy에 대한 광범위한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황금시대라고 불렸던 1950년대 이후의 역사상 전례가 없었떤 경제적 성과는 바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우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이로써 자본주의는 전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자본주의가 되었던 것이다. - P35

2. 자본주의 황금시대의 종말

생산비용이 상승하자 기업들은 제품 가격을 올려 이윤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가격 상승과 함께 이윤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투자는 정체되었다. 전후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주도했던 ‘국가‘는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면서 나타나는 경제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다.

(...) 경제를 움직이는 힘이 국가에서 시장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1944년에 시작된 브레튼우즈체제가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브렌트우즈체제의 종식은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기본 축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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