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가 창설된 이후에 마셜플랜의 지원금은 미국으로부터 식량, 연료, 공산품과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는 데 쓰였다.

무기는 미국의 중요한 수출 품목으로 부상했고, 미국 자본주의의 군산복합체적 성격은 미국과 세계 경제를 추동하는 가장 중요한 힘 중 하나가 되었다.

- P30


*한국과 같은 선택받은 *일부 개발도상국가가 자본주의의 **‘쇼윈도‘로 고도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도 *냉전을 고려하지 않고는 설명될 수없다.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의 원동력 중 중요한 일부가 바로 *냉전이라는 군사적인 동력에 기초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역사적 복지국가(welfare state)의 출현이 *전쟁국가(warfare state)와 관련이 있다는 캐럴 패이트먼(Carole Pateman)의 주장과 전쟁과 복지가 동반자였다는 토니 주트(Tony Judt)의 주장은 실증적인 인과관계를 논증할 수 없다고 해도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것 같다.

**브레튼우즈체제와 냉전이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국제적 측면에서 이해하려고 한 것이라면 
**‘소비시대와 기술 진보‘는 *내적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확장 동력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전후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건조기, 전화기 등과 같은내구제의 대량소비는 자본주의 경제에 강력한 추동력을 제공했다. 

*성별 분업에 기초한 *핵가족이 교외에 집을 사고 그 집을 내구 소비재로 가득 채운 레비타운(Levittown)으로 상징되는 *대량소비의 시대는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가능하게했던 중요한 동력이었다. 

더욱이 1940년대 후반 미국을 거쳐 1950년대 서유럽에 상륙한 **소비주의는 그 어떤 이념보다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대변하는 강력한 이념이 되었다. 

소비주의가 대중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들조차 소비주의를 거부하고 국가권력에 다가설 수가 없었다.

- P29

 **한나 아렌트(HannahArendt)는 모든 것이 소비를 위해 생산되는 자본주의 황금시대의 *소비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했다.

**"노동하는 동물의 *여가시간은 오로지 *소비에만 소모되며 그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의 **탐욕은 더 커지고 더욱 강해진다. 

이들 *욕구가 보다 정교해짐에 따라서 *소비가 더 이상 *필수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주로 **사치품에 집중된다는 점은 *이 사회의 *성격을 변화시키기보다 오히려 이 사회의 심각한 *위협을 **은폐한다. 

*그 위험은 종국에는 *세계의 모든 대상이 소비와 소비를 통한 무화로부터 안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

- P33

소비주의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대량소비는 자본주의 황금시대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필수 전제였다. 

그리고 이러한 *대량소비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의 상승과 **정부의 사회지출의 증가에 의존했다. 

만약 자본주의 황금시대동안 실질임금이 증가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 황금시대가 사반세기 가까이 지속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P33


정부지출, 수출, 투자의 증가가 실질임금 상승과 함께 소비 증대의 또 하나의 필수적 요소였다. 정부지출의 증가가 대량소비와 호황을 뒷받침했던 중요한 힘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축적에 의한 축적, 즉 *자본의 투자에 의해 *소비가 증대하고 이것이 다시 *축적을 확대하는 그 과정 자체가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지속시킨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의 상승 또한 축적 과정 그 자체의 산물이었다. **결국 임금 상승, 정부지출 증가, 기업투자 증가가 자본의 축적에 기여함으로써 자본주의 황금시대의 놀라운 성장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특징은 1950년대 이후에 펼쳐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 P34

경제의 핵심 부문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장려는 물론 필요할 경우 ‘지도‘하는 것도 용인되었다. 좌파만이 계획을 지지했던 것도 아니었다.

**이념과 관계없이 대부분의 정치세력은 잘 계획된 경제가 자유시장보다 더 풍요롭고 공정한 자본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신념을 공유했다.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의 존속을 전제로 기업을 국유화하고 정부가 경제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혼합경제 mixed economy에 대한 광범위한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황금시대라고 불렸던 1950년대 이후의 역사상 전례가 없었떤 경제적 성과는 바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우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이로써 자본주의는 전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자본주의가 되었던 것이다. - P35

2. 자본주의 황금시대의 종말

생산비용이 상승하자 기업들은 제품 가격을 올려 이윤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가격 상승과 함께 이윤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투자는 정체되었다. 전후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주도했던 ‘국가‘는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면서 나타나는 경제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다.

(...) 경제를 움직이는 힘이 국가에서 시장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1944년에 시작된 브레튼우즈체제가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브렌트우즈체제의 종식은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기본 축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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