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 아트, 진중권
20세기에 사진과 영화라는 복제기술이 벤야민으로 하여금 새로운 미학을 구상하게 했듯이, 21세기에 컴퓨터와 디지털이라는 **합성기술 또는 기술생성 역시 우리에게 새로운 미학을 구성할 과제를 제기한다. - P279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상응하는 미디어아트의 구호는 **’기술합성 시대의 예술작품’이다.
소위 정보혁명의 생산 패러다임이 가능하게 만든 기술합성은 오늘날 *현실과 *가상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대신 **혼합현실이라는 새로운 차원이 가능하게 했다. - P280
텔레마티크 아트의 선구자인 로이 애스콧은 디지털 아트가 창출해낸 **가변현실이 우리의 자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여러 개의 **인격과 **정체성을 갖는 일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며, 이러한 *변형적 *인격의 *추가가 미디어아트의 목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 P280
그에 따르면, 우리는 **많은 자아, 많은 **현존, **많은 세계, **많은 의식의 수준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네트 위의 모든 파이버와 노드, 서버가 우리 자신의 일부고 잠재성이라면, 이 네트와의 **상호작용은 분명 우리 자신을 **재구성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통합된 자아 대신에 **다중자아를 갖게 될 것이며 그 결과로 **자아의 감옥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게 애스콧의 낙관주의다. - P280
"세계는 비디오게임이고 모든 인간은 그저 *아바타에 불과하다" - P281
인터렉티브 아트 작업을 하는 사이먼 페니는 *신체와 *공간을 *사물 사이의 *교섭, 곧 오브제와의 신체적 **인터랙션을 화두로 삼는다.
20세기가 영화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게임의 세기가 될 것이며, 게임의 멜리에스나 뤼미에르가 등장하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모바일 게임의 셰익스피어도 탄생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 P281
미디어아티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관심은 **예술과 **기술의 공조이고, **공진화다.
그렇다면, *근대 미학을 관장해온 **칸트적 미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듯하다.
**미적 자율성이나 **무목적의 목적성 같은 개념이 예술과 기술의 극단적인 결합 형태인 미디어아트에는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예술과 **기술을 모두 뜻하던 아트 art라는말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싶다.
예술의 최전선은 그렇게 예술의 기원과 만난다. - P282
/ 무미예찬, 프랑수아 줄리앙
우리말로 **‘무미’라고 옮겨진 단어는 저자가 불어로 fadeur(영어로는 blandness)라고 옮긴 중국어의 담이다.
**담백하다고 할 때의 담으로 **묽다, 싱겁다, 자극이 적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저자가 보기엔 이 **‘담=무미’가 **중국의 문화와 미학적 전통에서 **중심적인 가치이자 바탕을 이루는 가치다.
그것은 **유, 불, 선 모든 사상의 지원을 받으며, **시, 음악, 회화 등 다양한 예술에 공통된 이상을 환기한다.
**예술은 *실용품이라기보다는 *사치품이다. 어떤 실용적인 용도를 목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경험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비실용적이고 사치스러운 예술이 *진정한 예술로 정의되고 인정받는다. 왜냐하면 예술의 *그러한 **존재 방식 자체가 **귀족적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비실용성은 *실용성에 *크게 *개의치 않는 *부유한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매력이 된다. 자신의 *지위와 *우월성을 **과시할 수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 시장은 *문화적 우월성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의 장이 되며, 특정한 *톱 아티스트에 대한 주목과 *과잉경쟁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다. - P289
결과적으로 예술 시장은 극소수의 아티스트들이 천문학적 수입을 올리는 승자독식 시장이 되며, 마치 복권에서처럼 ‘당첨자를 제외한 대다수 예술가들은 빈곤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그렇다고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것은아니다. 물론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서 후원을 얻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강한 예술 창작의 **동인이 되는 것은 *금전적인 보상을 대신한 **‘심리적 소득, 혹은 **비금전적 내적 보상‘이다.
바로 **자신이 **재능이 있고 **뛰어난 인간이라는 **자만심과 **자기기만이 그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예술가들의 *가난과 *예술 세계의 *구조적인 빈곤이 *지속되는 이유다. 상위 예술과 하위 예술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게 되면예술경제의 특수성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도 *사회적 계층이 *존재하는 한 *예술경제의 *특수성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 P289
사회학적 관점에서 저자가 내리고 있는 예술의 정의는 이렇다.
*"예술이란 사람들이 예술이라 부르는 것이다." 즉 무엇이 *예술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정의에서 ‘사람들이 가리키는 건 대중이라기보다는 ‘예술계에 속하는 일부 사람들이다. 즉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자면 "**예술이란 **일부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정의가 의미하는 바는 예술이 *특정한 *사회적 계층이 갖고 있는 *예술적 취향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으며 *예술을 *정의하는 힘은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게 분포돼 있다는 점이다. - P288
사람들은 보통 사회적 계층에 따라 각기 다른 예술적 취향을 갖고 있다.
*우월한 예술과 *열등한 예술, *상위 예술과 *하위 예술의 구분은 그러한 *취향의 차이가 낳는다.
그럼에도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다면 그건 한 그룹의 예술적 취향은 무시되는 반면에 다른 그룹의 예술적 취향은 존중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저자는 **‘문화적 비대칭성‘이라고 부른다. - P288
/ 전체를 고민하는 힘
하지만 경제 불황과 취업 대란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대다수 **한국대학(원)생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열정의 상실에 대한 **염려보다는 **‘루저lose‘로 *전락하지 않을까라는 **불안일 것이다.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생활에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청춘‘이라도 **담보로 **내놓으려 하지 않을까. - P308
물론 문제는장래를 담보로 학자금을 대출받고 청춘을 불사르며 학업에 매진하여 기적적으로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탄다 한들 "거기에 남는 것은 *이상하게 **부풀린 **오만과 **영혼을 잃어버린 **사고 밖에 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
막스 베버는 일찍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이러한 **마지막 인간이 도달하게 될 *지점을 이렇게 기술했다.
"**영혼이 없는 전문가, **가슴이 없는 향락자. **이 공허한 인간들은 *인류가 *과거에 도달하지 못했던 *단계에 도달했다고 **자화자찬할 것이다." - P308
강상중 교수에 따르면, 베버의 **‘마지막 인간‘은 더 이상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둔 사람들을 가리킨다.
언어학적 의미를 넘어서 대저 ‘의미‘란 무엇인가? 아니 의미의 의미‘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우리‘를 거쳐서 관심과 고려의 범위를 그들에게까지 확장하는 걸 뜻하지 않을까.
"당신 없는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라는 노래 가사를 조금 비틀어 말하자면, **"그들까지도 행복하지 않다면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라고 말할 때의 그 의미‘ 말이다.
그건 다 살리는일‘을 뜻하는 우리말 ‘다스림과도 상통한다. 한나 아렌트의 표현으로는 **‘함께 살아감living togethe 이다.
이** ‘다 살리는 일‘과 **‘함께 살아감‘이 *정치의 **본래적 목적이고 **의의다. 그것을 달리 **전체에 대한 관심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 P308
**경제의 불안정성과 **사회적 불평등은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인산물이지만,
**신자유주의 혹은 **금융자본주의의 도래와 함께 그 불안전성/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격차만이 아니다. **’두 국민 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국가 안에서의 계층 간 **소득 격차와 그에 따른 **사회적 위화감이 위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 P310
그러한 근원을 직시하는 데 리처드 세넷의 『뉴캐피털리즘』 위즈덤하우스, 2009도 도움을 준다.
세넷은 19세기 후반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민간 부문에 **군대의 조직 원리를 도입한 일에서 소위 **‘사회자본주의 social capitalisn‘의 기원을 찾는다.
*사회자본주의적 **관료제는 사람들에게 *예측할 수 있는 **합리화된 **시간 관념을 심어주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력에 비추어 *앞으로의 **승진 경로와 늘어날 **재산 규모를 그려볼 수 있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면서 **노후를 설계해나갈 수 있었다. - P310
비록 베버는 이러한 **관료제 하의 삶을 **쇠창살에 갇혀 지내는 것에 비유했지만, 세넷이 보기에 베버의 비판은 일면적이다(작년 조사에서 한국의 대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1위가 공무원이었으며, 그들이 꼽은 이상적 배우자 직업도 공무원이었다).
오늘날 *다수의 *노동자들이 *관료제적 *쇠창살에서 해방되었지만 그들을 들씌우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더 잔혹한 올가미다. 사회자본주의는 과거의 이름이 되었다.
**피라미드적 **관료제 사회를 대신하여 들어선 것은 **무한경쟁을 독려하는 **‘승자독식 사회다. 1퍼센트의 승자가 모든걸 다 차지하고 나머지 99퍼센트가 퇴출되고 사회적 낙오자가 되는 사회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승자독식사회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의 시스템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해보도록 한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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