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의 말
어느새 ‘디지털’이라는 낱말은 낡은 것 obsolete이 되었다.
보드리야르의 표현을 패러프레이즈하자면, ‘오늘날 디지털은 사라졌다. 너무 적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사라졌다.’ - P7
*사라짐은 *두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컴퓨터 안에서 *매체들의 차이가 사라지는 *내파 implosion의 방향이다.
컴퓨터는 모든 것을 *0과 1의 ‘정보’로 *환원하는 양자적 특성에 힘입어 *아날로그 매체들의 **질적 고유성을 지워버린다.
다른 하나는 아날로그 매체들을 디지털화하는 *외파 explosion의 방향이다. 전화, 영화, tv등 컴퓨터 밖의 아날로그 매체들도 이미 오래전에 디지털화를 완료했다. 이른바 포스트디지털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 P7
과거에는 책이 사람을 형성했다면, 오늘날 인간의 의식은 영상을 **빚어진다.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은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을 요청한다.
/ 테크노에틱 인문학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디지털이다》 Being Digital(1995)에서 예언한모든 것이 오늘날 더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현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전자책의 책장을 마치 실제 책인 양 손가락으로 짚어 넘긴다. 이렇게 디지털 가상이 아날로그 현실의 자연스러움을 가지고다가올 때, 그 **익숙함 속에서 *디지털 매체의 진정한 *본성은 슬쩍 **은폐되기 쉽다.
이는 *디지털의 대중을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 망각의 상태로 이끌어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망각 속에서도 *디지털의 논리는 화려한 *가상 아래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그 *기제는 *늘 의식되고 *반성되어야 한다. - P8
*인문학에서는 *미디어적 전회‘ medial turn가 일어나고 있다.
사실 ‘전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17세기에 철학은 *인식론적 전회epistemological turn 를 수행했다.
"*세계는 *의식에 주어진다." 따라서 세계를 *인식하려면 먼저 *’의식‘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 P8
*20세기의 철학은 *언어학적 전회 linguistic turn 를 수행했다. **"의식은 언어로 구조화한다."
따라서 **의식을 파악하려면 **언어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는 미디어로 구축된다."
그렇다면 **세계를 인식하기 전에 먼저 *미디어의 본성을 이해해야 할것이다.
**‘인문학 위기‘란 결국 *텍스트에 기초한 *고전적 인문학의 위기다. *정보의 저장 및 *전달의 매체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책이 사람을형성했다면 오늘날 인간의 의식은 영상으로 빚어진다.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은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되어야한다. 이는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을 요청한다.
*책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등장한 *제2차 영상문화, 제2차구술문화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인문학의 시도라 할 수 있다.
그것을 *로이 애스콧의 용어를 빌려 **테크노에틱‘technoetic 인문학이라 부르고자 한다.
‘테크노에틱‘은 기술을 의미하는 테크노‘ techno와 인식을 의미하는 노에시스‘noesis의 합성어로, 인간의 *정신을 *기술적 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탐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P9
*월터 옹에 따르면, *미디어는 의식을 재구조화한다." 이 캐나다의 영문학자는 구술문화와의 대비 속에서 우리의 의식이 실은 ‘문자‘ 라는 매체의 산물임을 보여준 바 있다.
그렇다면 문자문화의 종언을 가져온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바꾸어놓을 것인가? 테크노에틱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 ‘미디어 아프리오리‘ media apriori를 드러내는 데있다.
*현실과 *은유가 *중첩된 *파타피직스의 세계미디어는 *세계와 인간을 매개하면서, 동시에 그 둘을 *변화시킨다.
그리하여 *세계와 인간은 *미디어와 더불어 *공진화共進化 한다. 물론 그렇게 *변화한 세계는 과거와는 다른 *‘존재론‘antology을 요구하며, 그렇게 변화한 인간은 과거와는 다른 ‘인간학‘ anthropology 을 요구한다. - P9
널리 알려진 것처럼 *‘철학‘은 *가상과 실재를 구별하는 데서 출발했다. *플라톤 같은 *관념론자ems *데모크리토스 같은 유물론자든, 모든 철학자는 *가상의 베일 뒤에 숨은 *참된 실재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상상과 이성, 허구와 사실, 환상과 실재- 사이의 *단절을 *봉합선 없이 이어준다. 이로써 *가상과 현실 사이에 묘한 *존재론적 중첩의 *상태가 발생한다.
그것을 우리는 파타피직스‘patophysics 라 부를 것이다.
*‘파타피직스‘는 *가상과 현실이 *중첩된 디지털 생활세계의 존재론적 특성이자, 동시에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디지털 대중의 인지적 특성이기도 하다.
그것은 가상현실 VR이나 증강현실AR이 보여주듯 오늘날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원리일 뿐 아니라 그 혼합현실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지칭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철학자들이 굳이 가상과 실재를 구별하고 가상의 허구성을 폭로하려 해왔다면, *디지털 대중은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판단중지를 수행한다. - P10
가상이 한갓 허구임을 알 때조차도 그들은 그것을 또 다른 현실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실 *가상과 현실의 중첩은 *역사이전prohistory의 현상이었다.
*선사인의 의식에서는 *가상과 현실이 *인과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가상의 원인이 *현실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바로 *주술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역사시대 history가 열리면서 사라졌던 이 선사의 상징형식이 *디지털 기술형상의 형태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선사인의 상상이 주술적 현상이었다면 우리의 상상은 어디까지나 기술적 현상이다. - P10
사진이 등장한 이후의 회화가 더는 과거의 회화일 수 없듯이 *디지털 이미지가 등장한 이후의 *회화나 사진도 더는 과거의 회화나 사진일 수 없다.
뉴미디어가 **자의식을 획득하면 올드미디어는 조만간 뉴미디어의 전략을 수용하게 된다. 그 결과 아날로그 이미지들 역시 디지털 사진의 특징인 언캐니의 분위기를 갖게 된다.
‘디지털 이미지‘ 가 그저 회화, 사진, CG 같은 재현영상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플루서가 말하는 기술형상Techno-bila의 외연은 지금보다 훨씬 넓다.
그는 복제 개 스너피도 합성 이미지의 범주에 집어넣는다. - P12
그의 정의를 따라, 여기서는 **픽셀은 물론이고 **뉴런, 나노, *DNA 같은 작은 미립자 수준의 분석과 합성을 통해 만들어진사물이나 생물까지도 ‘디지털 이미지‘로 간주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미지는 *가상이 현실이 되는 "기술적 마술을 글자 그대로 실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이미지야말로 본격적 의미에서 언캐니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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