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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신디케이트 (양장) - 비밀경찰 수중에 놓인 러시아
마르가레타 몸젠 지음, 이윤주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9년 5월
평점 :
그는 불량배인가, 독재자인가 아니면 고도로 숙련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경탄할 만한 국가 지도자인가? 러시아의 반정부 정치학자인 게오르기 사타로프는 서방세계의 의견이 갖가지인 이유에 대해서 실제로는 콤플렉스로 가득 찬 작은 부랑아라는 세계적 통치자의 유형이 서구에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따. 서방은 지배적 위치에 있는 독재자와 건달은 경험해봤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불량 청소년 유형은 겪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39)
이 사건은 당시 총리였던 푸틴을 헌법의 힘을 통해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리로 곧바로 올려 보냈다. 이런 직무의 이점은 대선에서 푸틴을 유리하게 만들었고 그의 입법권력을 강화했다. 푸틴은 즉시 보리스 옐친에게 면책 특권을 보장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한눈에 봐도 이 행정명령은 갓 선출된 대통령이 할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이 행위에는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 행정명령은 옐친이 푸틴을 지명함으로써 비밀경찰들이 권력의 길로 진입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개방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과 존경의 표현이었다. 동시에 여기에는 러시아가 보안기관의 인질이 되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수년 후 보안기관의 한 고위 인사가 묘사했듯이 국가와 사회는 이제 첩보기관의 갈퀴에 걸리게 되었다. (43)
푸틴이 모스크바로 데려온 많은 비밀경찰을 고려하면, 열려 있는 민주주의적 절차의 신뢰보다 오히려 중상모략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했다는 가정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52)
1990년대의 약탈 자본주의는 실제로 국가권력이 직접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일종의 국가자본주의로 차츰 바뀌었따. 그에 따른 혜택을 입은 사람은 누구보다도 새로운 기업 관료들이었다. 재계 인사인 이들은 비밀경찰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시 행정부 출신이라는 이유에서 그렇게 불렸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관료주의적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 (65)
푸틴의 사람들을 대체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대표자나 비밀경찰의 일원으로 배치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비밀경찰의 일원이 된 자들은 국가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에 실로비키siloviki(러싱오의 ‘sila’는 권력, 힘을 의미)라고 불렸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권력 엘리트들이 그들이 가진 인맥에 따라 가즈프롬이나 로스네프트 등 거대 국영기업으로 가게 되었따. 연이어 정부의 고위관직에 오른 비밀경찰 장교들은 새로운 자본주의에 완전히 열려 있었다. 파블롭스키는 실로비키가 그들의 지속적인 사업 활동과 심지어는 조직범죄와의 관계를 새로운 관직에서도 이어나갔다고 말한다. (69)
크렘린은 오렌지 혁명의 러시아 유입 예방책으로, 우크라이나를 따라 일어날 수도 있는 만약의 국민 시위에 대항하는 방벽 역할을 할 특수 청년 단체를 발족했다. 크렘린의 천재 설계자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에게 이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는 호전적이고 크렘린에 충성하는 청년 단체 나시(‘우리’라는 의미)를 뚝ᄄᆞᆨ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의 정치체제를 위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바로 주권 민주주의다. 이 개념은 심오한 의미가 있으며 비밀스럽게 들린다. 실제로 이 개념은 러시아가 추측한 것처럼 외부에서 선동된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와 다르게 스스로 자신의 민주주의의 내용을 결정하고 외국의 모든 비판적인 개입을 거부한다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게다가 러시아의 주권 민주주의는 전 세계 경제주체로서의 위상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76-77)
그러나 푸틴이 집권하는 러시아에서는 아주 다른 방식의 혼성이 생겨났다. 바로 독재주의와 과두적 구조의 공생 관계였다. 이는 국민이 선택한 독재정치, 독재적인 수직적 권력구조, 비밀경찰과 재계 거물로 구성된 비밀스러운 올리가르히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혼합체였다. 정치적 다수 정당주의가 수직적 권력구조 내에서 의미를 잃은 반면에 비공식 크렘린 그룹들 사이의 다원주의는 날로 활발해져갔다. (85)
석유 재벌인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와 플라톤 레베데프 소송 사건과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사건, 쿠시촙스카야에서 일어난 대학살은 부패한 불법국가에 대한 논란이 많은 소재를 품고 있다. 이 사건들 모두가 실제로 정권의 무법성뿐만 아니라 시스템에 내재된 부조리를 드러내지만 각각 다른 특성들을 비추고 있다. 석유 재벌에 대한 기소 건에서는 권력과 부를 무조건적으로 요구하는 정치 지도부의 온순한 지지자로서의 사법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반면, 마그니츠키 사건은 국가의 부패에 맞선 싸움이 그 범죄를 찾아낸 사람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자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쿠시촙스카야 대학살 사건은 부패에 기반을 둔 법원, 행정 당국, 범죄자 집단이 공모한 범행의 결과로서 몇몇 국민의 치명적인 무권리를 조명한다. (171)
러시아의 부정국가로서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인 조직범죄는 초기 시장경제와 국가와 경제가 유착된 과두적 자본주의가 형성된 이래로 뿌리내릴 좋은 자리를 찾았다. 세르게이 첼루킨 같은 전문가들은 러시아 국가 자체가 1990년대 중반부터 마피아법에 따라 작동했다고 주장했다. 중앙과 지방의 부패한 정부 및 주정부가 조직된 범죄자 그룹과 협엽해 하나의 새로운 불법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188)
다른 사람들은 오늘날 효율적인 견제와 균형의 부재와 그에 따른 사실상 제도화된 무법성과 부당성을 편재하는 부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사실상 이런 악습은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수년 동안 범죄 집단이 저지른 악행들이 지역 행정기관과 검찰, 경찰, 법원에서 체계적으로 은폐될 수 있었던 것은 범죄 집단이 그들의 침묵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것이 공무원들의 적은 봉급을 어느 정도 올려주었다며 이해되는 듯이 인정해주었다. (190)
2004년 10월, 딱 적절한 때에 러시아 사업가이자 구 연방보안국 요원인 안드레이 루고보이가 리트비넨코에게 런던에서 함께 자문 사업을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의 사업적 파트너십은 번성했고 심지어 우정으로 발전되는 것처럼, 적어도 리트비넨코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사실은 루고보이는 드미트리 콥툰과 공모해 리트비넨코를 살해하려는, 심지어 방사성 독극물인 폴로늄을 이용해 아무도 모르게 살해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99)
리트비넨코 사건은 특히나 극적인 방법으로 오늘날 비밀경찰 국가로서 러시아의 특징을 전체적으로 반영한다. 이 스캔들의 과정은 불충하고 반항적인 요원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것까지 이 시스템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폭로했다. 그 특징들은 불투명한 국가권력 및 결정 기준, 은폐된 범죄 및 마피아와 비밀정보기관의 구조적 유착 관계, 거짓 정치 문화, 모든 악행의 악의적인 은폐와 범행 실행자에게 상까지 수여하는 지경까지 가는 책임자의 무죄 증명 등이었다. (206)
넴초프 살해 사건과 관련한 과정과 배경들은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드러나게 했다. 국가의 독점 권력을 명백히 무너졌다. 블라디미르 리시코프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물론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KGB의 도움으로 통치되지만, 그 옆에는 많은 무장한 준테러리스트 집단들이 있다.” 그래서 넴초프 살해와 같은 사건들은 최상위 권력층에서의 세세한 명령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리시코프의 발언은 의심할 여지없이 무장단체들과 체첸 대통령 카디로프의 개인 사병들을 암시한 것이었다.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