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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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명한 작품을 늦게 읽었다. 4년 전 처음 읽었을 때의 인상은 무척이나 생생하고 사실적이라 오히려 불편하다였다. 아프고 불편한 느낌. 객관적 대상으로 힘써 거리두기하며 읽은 듯하다. 재독하면서 비로소 그때보다는 훨씬 요조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 작가의 문장이 레고 쌓기 같아서 작은 브릭을 정교하게 누적할 때 인물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그렇게 요조의 고민과 간절함, 두려움과 열망은 위치를 잡아간다. 떨면서 맞춰갔으나 잘못되었다고 알아차리는 순간에 돌이키고 싶다고 주춤하지만 주인공은 그 방법을 알 수 없다. 블록을 해체해 어느 열부터 재조립하면 환영받을 수 있을지, 차라리 강건하고 무감각한 보편 타당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모두 가능성의 영역 밖이다. 캐릭터가 형체를 드러낼수록 무균실에 있을 영혼이 어떻게 세상을 감당하겠는가 하는 슬픔은 독자의 몫이 된다.

『인간 실격(김춘미 옮김, 민음사, 2004, 1948, 191쪽 분량)』은 다자이 오사무(본명 쓰시마 슈지)의 후기 작품이며 완결된 작품으로는 마지막 소설이다. 자전적 경험과 허구가 공존하는 『인간 실격』은 "작가가 처음으로 '타를 위해서'라는 자세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예술적 자서전을 시도한"(p.184) 작품이다. 가네기 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자가 된 신흥 졸부라는 사실에 평생 부끄러움을 느꼈다. 또한 혜택 받은 자로서 못 가진 자에 대한 “죄의식 내지는 부채의식”(p.167)을 떨치지 못했다. 이런 죄의식은 천성적으로 섬세한 감수성과 만나 작가가 남다른 여정을 걷게 만든다. <다자이 오사무론>을 쓴 오쿠노 다케오는 『인간 실격』 서문을 읽고 "이 작가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깊은 고뇌에 찬 인생을 경험한, 통상적인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심각한 정신 생활을 영위한 인간임"(p.185)을 느꼈으며 그 확신으로 평론을 썼다고 밝힌다. 소설은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요조의 삶을 있는 그대로 해부한다.

소설은 ‘나’라는 화자가 전하는 서문과 후기, 주인공인 요조가 쓴 세 편의 수기로 구성된다. “나는 그 사나이의 사진을 석 장 본 적이 있다.”(p.9)는 첫 문장을 시작으로 유년의 요조, 고등학생에서 대학시절의 모습과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어느 시점의 사진에 대한 감상을 전한다. 미남이라는 말도 하지만 세 번 반복되는 “섬뜩하다”는 표현이 눈에 띤다. 섬뜩하고 기묘한 얼굴, 그러나 어쨌든 대단한 미남이라 볼 만한 얼굴이라니 <악령>의 주인공 스타브로긴의 아름답고 가면같은 얼굴이 겹쳐 보인다. 그러나 스타브로긴은 타인을 억압할 만큼 강하게 의지를 관철해갔지만 요조는 매사에 억압당할 만큼 여렸고 타인의 의중을 가늠하느라 진이 빠져갔다. 요조를 찍은 세 장의 사진은 어쩔 줄 모르며 타인을 살피던 영혼을 거쳐 영혼 탈락의 막다름을 담는다. 소설은 그 과정의 기록이다.

요조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의 믿음은 얼마 가지 않아서 깨어진다. 기차와 지하철, 배고픔의 정체가 그의 생각과 달랐을 때, 자신이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다른 사람들의 개념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자각은 불안을 가져온다. 참을 수 없는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없을까, 그는 “익살”에서 구원을 찾으며 인간에 대한 최후의 구애라고 명명한다. 그의 익살은 필사적이 된다. 그는 비합법, 음지의 사람, 범인 의식(p.51)이 오히려 편하고 어느 날 무언가가 “되어 있”(p.55)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다. 그는 물에 떠내려가듯이, 거침없이 편하게 전진하는 사람들의 파도에 떠내려간다. 넙치가 쓰는 술책에, “이 세상 사람들의 불가사의한 허영과 체면 차리기”(p.78)에 절망한다. 그냥 이렇게 말해줬다면 됐던 건데 라고 혼자 고통받는다. 호리키의 냉랭하고 교활한 이기주의에 아연실색한다. 그는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p.119)라고 묻는데 이어 “무저항은 죄입니까?”(p.131)라고 신에게 묻는다. 그가 인간의 세계에서 느끼는 단 한가지 진리는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뿐이다. 그가 인간세계와 연결되는 가느다란 실에 의지해 다다른 종점이다.

소설은 140페이지 남짓의 길지 않은 분량으로 한 인간의 마음의 행적을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서술과 독백, 대화의 구성이나 줄 바꿈과 여백까지 요조의 감정으로 이끌어간다. 무대를 감상하는 기분도 든다. 한 인물의 무언극에서 그를 탈출시켜주고 싶을 수도 있다.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연결할 때의 밀도는 주인공의 심리를 고스란히 새긴다. 독자는 한 순간 그가 된다. 요조는 과민하다. 그럴 수 있다. 요조는 박동과 박동 사이에도 그칠 줄 모르고 맥이 뛰는 민감한 심장을 가졌다. 누구의 잘못일지 정확히 지목할 수 없지만, 수기를 건네주던 마담처럼 아버지를 가리킬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몸 둘 바 모르던 마음이었다. 마음이 몸 둘 바를 모르니 맥박 위에 맥박, 호흡 위에 호흡이 포개지거나 불시에 템포를 놓친다. 포즈.

태연할 수가 없어서 침착을 연기하게 되었다. 그러기 쉽다.(안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요조는 가엾다. 그런데 우리를 닮았다. 요조는 우습다. 역시 우리를 닮았다. 요조의 가면, 우리도 몇 개 가지고 있다. 요조, 피해! 그는 듣지 못하고, 요조, 저쪽으로! 그는 반대편으로 달린다. 합격은 경계선이 요동한다. 실격은 범람한다. 정밀한 합격의 바늘귀로 들어갈 만한 빼어나고 슬기로운 이력을 성공적으로 쌓고 있는 사람이라도 요조를 모른 척 할 수 없을 것이다. 호리키는 모른척했지만. 그들은 모두 모른 척 했지만, 지금 다시 책을 펴는 독자는 몇 번이라도 모른 척 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 합격 고군분투기, 그러나 실패했다. 동시에 소망한다. 세상에 있는 또 다른 요조들이 모쪼록 평안하기를.

책 속에서>

어차피 들킬 게 뻔한데도 솔직하게 말하기가 무서워서 반드시 거기에 뭔가 꼬리를 다는 것이 저의 서글픈 버릇의 하나인데,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며 멸시하는 성격과 비슷하지만 저는 무슨 득이라도 보려고 그런 꼬리를 단 적은 없습니다. 그저 흥이 깨지면서 분위기가 일변하는 것이 질식할 만큼 끔찍해서, 나중에 저한테 불이익이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의 ‘필사적인 서비스’, 그것이 비록 잘못되고 시원찮고 우스꽝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 서비스 정신에서 저도 모르게 한마디 덧붙이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습성 또한 세상의 소위 ‘정직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p.82)

“아니, 이젠 필요 없어.”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누가 무언가를 주었을 때 그것을 거절한 것은 제 생애에서 그때 단 한번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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