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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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이인규 옮김, 문학동네)』는 1952년 출간된 작가 생전의 마지막 작품이면서 동시에 가장 뛰어난 성취라 일컬어진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기 이전까지 전쟁의 상실감, 허무함을 다룬 작품들로 스콧 피츠제럴드, 윌리엄 포크너와 더불어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 작가로 불렸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 말년의 걸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1953년 퓰리처상을,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헤밍웨이는 신문기자 시절 습득한 단문 위주의 문장 구사로 하드보일드 문체의 개척자로 여겨지며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에서도 “서사 기법에 정통하고 현대문학의 스타일에 간과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라고 명시한다.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이인규 역자 번역본(문학동네)은 지금껏 쓰여온 돌고래 대신 어부들의 용어 ‘만새기’로 옮기는 등 노인의 입말에, 시간이 축적된 일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그만 돛단배로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팔십사 일 동안 그는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p.9) 오늘도 빈 배로 돌아오는 노인을 맞을 때 소년 마놀린은 마음이 아프다. 소년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줬던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사랑하며 함께 바다에 나가고 싶지만 노인의 운이 다했다고 믿는 부모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노인과 소년은 함께 했던 추억과 상상으로 꾸며낸 대화와 야구와 팔십 오일째에 틀림없이 만날 행운을 이야기한다. 노인은 멀리까지 나가볼 생각으로 노를 젓는다. 낚싯줄을 드리우고 고된 사투 끝에 미끼를 문 청새치를 잡고 집이 있는 곳, 아바나의 불빛을 향한다. 하지만 한 시간 후 최초의 상어가 물고기에게 덤벼들고 새로운 분투가 다시 시작된다.

영웅적 의지와 인간적 면모를 동시에 지닌 산티아고 노인은 잊지 못할 하나의 전형을 완성한다. 그는 살아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또 한 번의 현재, 행운이 깃들 팔십 오일째 날로 삼는다. 노인은 오늘을 사는 자로써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대신 정확하고 성실하게, 진지하지만 낙관하고, 고통스울지라도 엄살부리지 않으며, 무엇보다 타자의식 없이 내적 자유를 분별하고 선택할 줄 안다. 그의 선의는 소년은 물론 잠시 날개를 쉬어간 작은 새와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넘어 ‘라 마르’라 부르던 바다, 사자가 나오는 꿈속까지 닿는다. 이 온기는 강력하게 독자 마음을 사로잡는다. 치장 없이 간결한 문체, 적확한 단어의 연결은 감동을 증폭시키는 주요인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부연에 부연을 포개며 화려하게 이어지는 문체와 대비된다. 또한 ‘작은 배에서 살아남기’투의 소소하지만 긴급한 목표들과 그로인한 상념을 시적인 독백, 연극적인 대화체로 서술함으로 망망대해에서 주인공 홀로 버티는 시간이 긴장감 넘치게 진행된다.

상어가 없었다면 노인의 성공은 보존되고 인정받으며 영광으로 보답받았을 것이다. 물리쳐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상어가, 점점 부실해져가는 도구로 맞서는 노인이 보편적 삶의 자화상으로 비친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싶으면 이를 비웃듯 또 다른 문제가 다가온다. 때론 서서히, 때론 죠스 뺨치게 빠르다. 이건 반칙이죠, 분노할 때도 있었다. 작게 보면 ‘당면한 문제’로 인해, 종국에는 ‘한정된 시간’이라는 생의 조건 때문에 예정된 위기에 봉착한다. 에이해브는 모비 딕에게 삭이지 못하는 분노를 품고 죽음도 불사하고 추격을 멈추지 않는다. 반면 산티아고에게 물고기, 청새치는 목표물이면서 동시에 탄생과 죽음이라는 조건 앞에 동일하게 내던져진 생명체라는 연대와 연민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상어들이 밤중에 달려들면 이제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한다? “싸우는 거지, 뭐.” 노인은 말했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거야.”(p.121)- 이 문장에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나왔다. “엄마네! 엄마잖아! 엄마를 어떻게 말려!” 명랑함과 결연함이 반반으로 섞인 엄마가 상한 손과 약한 몸으로 여전히 ‘계속해보겠습니다!’ 라고 외친다. 없는 기운에도 파이팅만은 우렁차다. 노인은 또다시 배를 띄울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누구나 한 번쯤 읽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 책” 즉 칭송은 하지만 읽지 않는 책을 고전이라 정의했다. 설마 내가 『노인과 바다』를 안 읽었다고? 그렇소! 무수하게 전해들었고 보았고 짐작했을 뿐 당신은 활자를 읽지 않았소,에 해당한다면 지금 만나보기를 권한다. 고난 가운데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산티아고 노인에게로, 그가 보여주는 관계맺기의 향연으로, 그 빛나는 문장으로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질 것이다.

책 속에서>

나는 줄을 정확하게 드리우지. 노인은 생각했다. 다만 더 이상 운이 없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p.34)

이런 일들은 난 잘 모르겠어, 노인은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가 태양이나 달이나 별을 죽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야. 바다에서 살아가며 우리의 진정한 형제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말이야.(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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