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니콜라이 고골 지음, 이항재 옮김,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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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문학동네, 2011, 1841)』는 만년9급 문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이야기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리고 그 이후를 들려준다. 이름짓기 곤란해 아버지의 이름을 따랐던 주인공이 이름 없이 생을 마치고 관리 유령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기까지의 굴곡사이기도 하다. 매번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만나오다 세 번째 읽게 된 “외투”를 이번에는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문학동네 세계명작” 시리즈로 펼치자 스페인 일러스트레이터 노에미 비야무사의 삽화가 주는 또 다른 감흥은 무척 새롭다. 고골의 데뷔작인 우크라이나 창작 설화집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화』를 발표 후 10년 정도가 고골 창작의 전성기이고 이때 쓴 작품들이 고골 문학을 대표하게 된다.(p.110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외투”는 “이후 대부분의 러시아 단편소설의 모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러시아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은 이를 잘 드러낸다.

만년 9급 문관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국에서 존재감이라고는 없지만 조금도 변함없이 서류정서 하는 일을 한다. 그가 젊은 관리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는 데는 그 한결같음도 일조한다. 농담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하거나 일을 방해할 때에야 “날 내버려둬요. 왜 날 모욕하는 거요?”라고 항변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당신의 형제요.”(p.14)라는 목소리를 발견하는 사람은 새로 들어온 젊은이 한 명뿐이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정서하는 일은 다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애착의 대상이다. 의외로 일에 대한 집중이 흐트러지는 사건은 페테르부르크의 강력한 적인 북쪽의 한파로 일어나게 된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외투는 ‘실내복’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작가는 이 실내복 같은 외투가 재봉사 페트로비치 로부터 수선 불가라는 선고를 받고 새 외투로 대치되기까지의 역경 극복 과정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목표달성의 기쁨도 잠시, 꿈꾸던 외투, 어쩌면 생의 비전을 누려볼 틈도 없이 외투뿐 아니라 생명까지 허무하게 빼앗기는 전개가 거칠고 차디찬 한파만큼이나 속도감 있게 강타한다.

러시아 문학에서 “작은 인간”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은 푸슈킨의 작품에서 출현하기 시작해 고골의 작품으로 이어져 “하나의 문학적 전형”이 되고 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까지 등장한다고 이현우는 설명한다.(위 인용책 p.120) 작은 인간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치열한 고군분투는 외투 가격 팔십 루블 중 사십 루블을 구하기 위한 일련의 행동에서, 경찰서장을 거쳐 ‘고관’을 찾아가 “적절한 질책”이라는 심한 대우를 감당한 후 “페테르부르크 기후의 친절한 도움”(p.58)이 더해지고 말 때까지 크레센도로 진행된다. 비루한 현실에서 약간은 과장되고 희화화된 인물들은 때론 역설적으로 독자를 실소케 한다. 고위층의 허위의식도 스스로를 속인 끝에 죄책감을 부르고 지독한 무덤 냄새를 내뿜는 관리 유령을 맞닥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소설은 자족하던 주인공이 맺는 관계를 부각시킨다. 국(局) 내,외부 에서 자의반 타의반 이어지는 소통은 인간 사회의 축소판 같다. 짧은 문장은 상당한 이미지와 상징을 내포하기에 단어 이면에 펼쳐지는 장면이 ‘광장’(p.46)만큼 끝간데없다. 고골이 그리는 인물들은 시공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현재적이며 생기가 넘친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물론 지위가 사람을 다르게 만들어버렸던 ‘고관’의 묘사는 심리학자처럼 내면을 정밀 조각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을 연상시킨다. 원래부터 없던 것 같은 인생이 가능하고, 어쩌면 비일비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의 부정할 수 없는 확인과 환상적 결말은 소설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다.

흥미로운 전개와 가독성 높은 문장은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는데 옮긴이의 말은 이와 별개로 호기심을 유발한다. “각기 나름의 목소리와 표정을 지닌 듯한 고골 특유의 단어와 문장이 묘하게 뒤섞여 아름다운 교향곡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고골의 텍스트는 눈으로 읽을 때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맛이 난다.”(p.77)는 말에 무심히 ‘굳이 낭독을?’ 해온 필자로서도 진심으로 한번쯤 도전하고 싶어진다. 대표적으로 참고 참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날 내버려둬요. 왜 날 모욕하는 거요?”(p.14)하던 목소리는 사실 책을 다 읽도록 환청처럼 귓가에 맴돈다. 이제 “외투”에 결코 뒤지지 않는 “코”를 비롯해 고골의 단편들을 다시 읽을 것이고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는 “검찰관”과 “죽은혼”은 올해는 넘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짧지만 강렬하고 여운은 긴, 아무리 다시 읽어도 매력이 줄지 않는 작품이기에 거듭 권하게 된다. 200여년이 다 되어가는 소설이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 외투는, 페테르부르크는? 하고 묻는다. 여러 겹으로 의미를 덧입힐 수 있고 상상의 여지를 열어두기에 “외투”읽기는 보물캐기와 같을 것이다.

그 대신에 그는 앞으로 생길 외투를 늘 마음속에 그리며 정신적인 양식을 섭취했다. 이때부터 그는 존재 자체가 어쩐지 더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이라도 한 것 같았고, 어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고, 혼자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어떤 인생의 반려가 그와 함께 인생길을 가기로 동의한 것 같았다. 이 인생의 반려는 다름 아닌, 두툼하게 솜을 두고 닳지 않는 튼튼한 안감을 댄 바로 그 외투였다.(p.33)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없는 페테르부르크는 마치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변함이 없었다. 어느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어느 누구이 애정도 받지 못하고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존재, 심지어 흔한 파리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핀에 꽂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자연관찰자의 주의조차 끌지 못한 존재가 사라지고 자취를 감춘 것이다. 동료 관리들의 조소를 묵묵히 견뎌낸 그 존재는 어떤 특별한 일도 없이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런 존재에게도, 비록 생이 끝나기 직전이었지만, 외투의 모습을 한 명랑한 손님이 갑자기 나타나 짧은 순간이나마 가련한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황제나 세계의 지배자에게도 닥치기 마련인 불행이 잔인하게 그를 덮쳤다.(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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