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4
윌리엄 포크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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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문학동네/민은영 옮김)』은 노벨문학상 및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1942년 작으로 단편집 “모세여 내려가라”의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207p)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카뮈와 마르케스의 찬사에서 ‘위대함’은 거듭 등장한다. 1929년 『소리와 분노』, 1936년 『압살롬, 압살롬!』등 대표작들을 이미 선보인 후의 작품이라는 점은 기대를 높힌다. 늙은 곰의 이야기이자 노인의 이야기이며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한 “곰”은 ‘한정된 시간’이라는 조건에 묶인 인간과 그에 반하는 ‘영원’에 대한 그림이기도 하다.

 

 

“남자 하나가 있었다. 이번에는 개도 함께였다. 곰 올드벤까지 친다면 동물 두 마리, 분 호갠벡까지 친다면 남자 두 명이었다.(중략) 이들 중 때 묻지 않고 강의한 존재는 오직 샘과 올드벤과 잡종견 라이언뿐이었다.(9p)”로 시작되는 첫 번째 막의 주 무대는 숲 속이다. 열 여섯 살 소년이 지난 6년간 들어온, 보고 체험한 황야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중독성 있는 포크너식 열거법으로 펼쳐낸다. 이름도 얻은 늙은 곰, ‘죽을 운명마저 벗어던진 고독하고 막강한 늙은 곰’을 잡기 위한 추적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반복될수록 소년도 자라난다. 장성한 성인으로, 무엇보다 사냥꾼으로.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함을 소년은 이미 알고 있었고 끈기도 터득하고 있었다.(16p)”

 

 

열 살 때부터 소년은 멘토인 샘 파더스의 곁에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그 자체로 신성한 숲과 신화같은 곰을 향하는 인간들의 추적은 같은 듯 다른 동기로 움직이고 차이나는 종결을 짓는다. “소년은 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시간이 생겨나 시간이 되는 곳,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는 망각의 그늘 아래 죽음을 면제받은 늙은 곰과 죽음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된 자신이 서 있는 모습을.(25p)” 가장 강한 적을 쫓는 레이스의 외적 단순함 사이사이로 존재와 어긋남, 무서움과 두려움의 차이, 지키고 존중해야 할 것과 그럼에도 훼손하고 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더 비울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시계와 나침반이었다. 아직도 그는 오염된 존재였던 것이다.(30p)" 처음으로 소년이 곰과 맞닥뜨리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반복되는 문장은 소년의 경외심 가득한 진지함을 보여준다. ”샘이 가르쳐주고 연습시킨 대로(30p)“, ”샘이 가르쳐주고 연습시킨 다음 방법에 따라(30p)“, ”다시 한 번 샘이 가르쳐주고 연습시킨 마지막 방법을 쓰고(31p)“ 나서야 비로소 잊지 못할 순간을 맞는다. ”샘 파더스가 소년의 선생님이고 뒷마당에서 토끼와 다람쥐를 쫓던 시절이 소년의 유치원이었다면, 늙은 곰이 뛰어다니는 황야는 그의 대학이었고 긴 세월 짝도 새끼도 없이 살며 성별이 없는 스스로의 조상이 된 늙은 수곰은 그의 모교였다.(36p)“

 

 

분 호겐백은 푸르스름한 개 라이언을 마음의 단짝으로 삼고 샘은 곰 올드벤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 정신은 물론 내적 동기 일체는 곰에게 온전히 연결돼 있었고 “괜찭아요.”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어요. 그냥 놔버린 거요.” “그래요, 노인들은 그럴 때가 가끔 있어요. 그러다가 한숨 잘 자고 일어난다거나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나서 마음을 바꾸기도 하지요.(88p)”에서처럼 죽음도 결코 육신의 문제가 아님을, 존재이유가 사라질 때 ‘스스로 그냥 놔버린 현상’일 수 있음을 본다. 이는 현대의 일상에서도 마음을 공유하는 대상과의 하나됨과 분리 곧 상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4장에서 새로운 시공간으로 배경이 전환되고 분위기는 환기된다. 소년은 스물 한 살 청년이 되었고 황야가 아닌 그가 상속받기로 되어 있는 땅(99p)에서 친척 형 매캐슬린을 만나고 있다. 상속자이지만 그 자격도 칭호도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펴는 아이작과 설득하고 반론하는 매캐슬린의 대화가 이어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성경 속 천지창조부터 신대륙 발견과 노예제도, 부끄러운 가계의 역사와 그 속에 엄연히 행해졌던 비인간적인 일들을 드러낸다. 특히 노예 장부의 간략하고 무심한 어조가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도 당시의 실상을 그려보게끔 하고 참담함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그 장부는 200년 동안 기록했지만 완성하지 못했을뿐더러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청산하지 못할 기록의 연장이었다. 어느 땅 전체의 역사가 축소판으로 그 연대기에 담겨 있어, 이를 곱하고 조합하면 전쟁에서 항복한 이후 23년, 노예해방 이후 24년에 걸친 남부 전체의 역사가 될 것이다.(153p)”

 

 

5장에서 아이작은 다시 한번 그가 소년이었을 때 학교인 동시에 모든 곳이었던 황야를 찾는다. 제재회사가 벌목을 하고 열차가 달리는 곳으로 바뀌었지만 이 작품의 가장 뭉클한 재회를 선사한다. “어느 날, 겸손이 무엇이고 긍지가 무엇인지 설명할 줄도 모르는 한 노인의 손에 이끌려 간 곳에서 소년은 늙은 곰과 조그만 잡종개를 보고, 겸손이든 긍지든, 둘 중 하나만 얻으면 둘 다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156p)” 개발과 파괴를 섞어내는 인간의 손과 죽지도 변치도 않는 자연을 대비시키고, 영원한 멘토 샘을 불러낸다. “라이언에게도 샘에게도 죽음이란 없었으므로(202p)”로 시작되는 영속성의 이유는 설득적이고 옛 언어로 스승을 불러보는 장면에서는 마음 깊이 충만함이 차오른다. 아이작이 걸어갈 앞으로의 길을 예상할 수 있게 만든다.

 

 

인용이 많아졌지만 새겨둘 문장이 그만큼 빼곡하다. 되새기며 음미하게 되는 문장은 다음 장면으로 스토리를 쫓는 리듬을 헐겁게 늘린다. 단어보다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어 멈춘 채 장면에서 눈을 돌리고 어딘가를 두리번 거리게 했다. “압살롬, 압살롬!” 다음으로 읽는 포크너이기에 나름의 각오를 했지만 분량 면에서도, 문체에서도 늪처럼 길게 끌어당기는 마성적인 문장은 훨씬 덜했다. 해설에서 역자는 원문의 외형적인 구조만을 따르는 번역보다는 의미 전달을 중시한 번역을 택함으로 소통에 중점을 두었음을 밝히는데(213p) 그렇다면 원문은 몇 문장이 결합된 형식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곰”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각자가 취하고 감당할 자세와 태도를 묻는 질문지다. 동시에 삶에서 소중한 가치를 향한 영원불멸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혼자는 아니었으나 고독했다. 고독이 여름의 짙은 초록으로 그를 에워쌌다. 숲은 변하지 않았다. 여름의 초록, 가을의 단풍과 비처럼, 그리고 강철 같은 겨울 추위와 눈처럼, 영원한 숲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1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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