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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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1816/문학동네/원영선 전신화 옮김)은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소설로 1817년 세상을 떠나기 전 해에 출간되었으며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이러한 명성은 대문호의 마지막 작품들, 괴테의 파우스트나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등 대작가들의 유작과 의미를 생각할 때 제인 오스틴 사상의 정수가 담겼으리라는 기대를 높힌다. “오스틴은 자신의 표현 그대로 ‘2인치의 상아섬세한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정교한 필치로 그녀가 가장 잘 아는 세상사를 그려낸다.(339p)”는 해설처럼 그녀가 가장 잘 아는 세상사21세기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현재일 수 있는 감정과 삶의 면면, 불변의 진실을 말한다는 신뢰를 주기에 충분하다.

 

앤의 애착과 회한은 젊은 시절 누려야 할 모든 즐거움에 기나긴 먹구름을 드리웠고, 그로 인해 일찍 시들어버린 생기와 젊음은 오래도록 회복될 줄 몰랐다. 이 가슴 아픈 작은 사건이 끝난 지도 칠 년이 넘었다.(40p)” 엘리엇 가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열아홉 살 때 주변의 설득으로 사랑했던 사람과의 결혼을 이루지 못했고 스물 일곱이 된 지금 과거의 사랑과 재회하게 된다. 영향력 있고 지혜롭다 여겨지는, 거절하기도 어려운 주요 주변인들의 조언과 설득을 받아들였던 그때의 자신그로 인한 결과’, 금의환향하여 다시 모습을 드러낸 웬트워스 대령과 새롭게 설정되는 관계들이 집중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안타까워한들 어찌하랴! 냉정을 찾으려는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난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마음에 팔 년이란 세월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음을 알아버렸다.(82p)” 소설의 도입부에서부터 엘리자베스의 본심은 기준점이 되어 상황 전개에 맞춰 그녀의 행동과 마음을 가늠하고 예측케 한다. 제목이기도 한 설득은 상황별로 다채로운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과거를 도가 지나친 설득의 결과였고, 나약함과 소심함의 결과였다(84p)’고 진단한다.

 

엘리자베스와 웬트워스 대령의 애정 행로와 함께 엘리자베스의 성장 서사도 주요 모티프다. 요 몇 년간 앤은 훌륭한 친구인 레이디 러셀이 자신과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95p)” 기본적으로 지혜롭고 사려깊은 엘리자베스는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 간의 관계나 숨은 의도를 경험하며 분별과 통찰력을 키워간다. 이해하는 만큼 수용의 폭은 넓어지고 사고의 조율은 민감해진다. 또한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단지 부드러움과 기백이 양립할 수 없다는 흔해빠진 생각에 반대하고 싶었을 뿐, 벤윅 대령의 행동거지가 최고라고 대변하려던 것은 아니었다.(228p)”, “교활함이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뭔가 불쾌한 것이 있어요. (275p)”

 

시간이 흐른 후 엘리자베스는 더 이상 과거 그때처럼 레이디 러셀에게 설득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는 확실히 쌀쌀하게 대해, 이제까지 조금씩 쌓인 불필요한 친밀감을 가능한 한 말썽 없이 줄이고자 했다.(284p)” 의도를 가지고 포장된 인격은 가면이 벗겨질 때 많은 것을 망가뜨린다. 엘리자베스의 판단과 행동은 내내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녀는 또한 용기있는 실천가다. 무슨 일이든 가능했다. 무슨 일이든 알고 맞서는 것이 마음 졸이는 것보다는 나았다.(314p)”

 

재빨리 사물을 인지하고 인물됨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경험으로도 얻을 수 없는 타고난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331p)” 편견과 의심과 속단이라는 일련의 과정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일은 레이디 러셀 뿐 아니라 너무도 쉽게 맞닦뜨리게 되는 모두의 속성이다. 이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는 일, 보이는 것 넘어 있는 진실에 닿기 위해 애쓰는 것은 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부부가 사는 여러 방식, 혈연 관계임에도 너무도 개성적인 개인일 수 밖에 없는 자매들, 그러도록 또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얘기좀 해주셨으면 합니다.(61p)”로 통일되는 반복적 의뢰(‘당신이 설득하면, 한마디만 하면 들을거에요. 내 말은 안듣거든요.’의 여러 버전)의 부담-이건 정말 너무하는 것이다-은 생생하게 마음에 와 닿았고, 사랑과 우정의 역동 관계, 선택의 문제와 추구해야 할 가치 등 세련된 문장으로 읽는 제인 오스틴은 늦게나마 오스틴 월드에 입성케 한다. 아직 읽어야 할 작품이 남아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책을 덮는다.

 

 

 

 

책 속에서>

-이 모든 소음 속에서 자기 존재를 알리려 작정한 듯 맹렬히 타오르는 크리스마스 장작불이 전체 그림을 마무리 지었다. 177p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소음에도 사람마다 나름의 취향이 있게 마련이다. 소리는 크기보다도 종류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도 들리고 아주 거슬리게도 들리니 말이다. 178p

- 벽난로 위의 우아한 작은 시계가 은빛 소리로 11를 알렸고, 멀리서 야경꾼이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190p

- 앤은 나이를 먹으면 현명하고 이성적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 슬프게도 아직 현명하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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