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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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의 여명(문학동네/송기정 옮김)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읽을수록 초대받은 자리에서 경청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콜레트는 프랑스에서는 우리의 콜레트라 불릴 만큼 인기를 누린 작가였고(181p) 작품 속에서도 그려지듯이 대중 뿐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과도 깊이 소통했으며, 대외활동이나 수상 등 생전에 프랑스에서 공식적인 명예를 얻었던 최초의 여성작가(182p)”이기도 했다. 깨어있는 의식의 재능 넘치는 작가로서, 삶이 곧 예술에 근접했던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여명은 어머니 시도의 편지로 시작된다. 딸의 집에 초대받았으나 응하지 못하는 이유로 선인장 꽃의 개화를 보기 위함을 든다. 이제는 세상에 안계시는 어머니, 그러나 주인공은 자신에게 여전히 현재인 어머니를 기억하고 기리며 나아가 스스로 어머니의 모습을 자신에게 재현한다. 본격적인 소설의 첫 문장은 이곳이 나의 마지막 집일까?(13p)"하는 반복되는 질문이다. 책들로 가득 찬 찬장들, 소파들, 서랍장들은 십오 년 동안 나와 함께 두세 군데의 프랑스 시골 지역들을 돌아다녔다.(19p)" 그 후 정착한 프로방스의 해안가 마을에서 그녀는 친구들의 방문을 받고 마음을 나누고 태양과 달과 별의 움직임을 벗삼는데 안식을 향한 기대가 느껴진다. 어머니 시도의 회상, 동 식물을 비롯한 자연과의 깊은 교감이 인상적이고 주요 테마는 비알과의 예기치 못했던 사랑이다.

 

거리낌 없고 독립적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했던 어머니 시도는 그녀의 인도자이며 거울이고 다다르고 싶은 별이다. 편지로 추억으로 내면의 목소리로 어머니는 내내 출현한다. 어머니가 했음직한 말들을 생각해내려고 애쓰다보면, 항상 나로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가볍고도 느리게 나의 속내를 건드리고, 부드럽게 내려앉았다가도 천천히 다시 솟아오르는 단어들, 특히 주요 논거, 비난, 예상치 못했던 만큼 더욱 매력적인 관대함이 내게는 부족하다.(36p)" 예리한 동반자인 어머니를 향한 연가와도 같은 기록은 마음을 울린다.

 

그녀에게 들르는 친구들 중에서도 특별한 청년 비알을 중심으로 한다. 이미 많은 것을 겪고 누렸기에 웬만한 것들은 그저 넘기려던 시기에 비알은 일종의 때아닌 열매(81p)"였다. 그러나 분명한 열매, 후일에도 계속 생각날 열매다. 자신을 향하는 비알의 감정과 비알을 사랑하는 엘렌, 떠나보낸 비알과 자신의 감정을 조금 늦게 깨닫는 주인공, 그리고 기다림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각별한 세기의 사랑이라는 생각은 안든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삼각관계를 흔치 않게 만들고 품위있게 자리매김하는 것은 서술자의 통찰력, 예민한 지성에 빚진다. 심리상태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충분히 표현해 살뜰히 전달하는 능력 말이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진부한 것 중 하나인 사랑, 그 사랑이 내게서 멀어져간다. 모성애는 또하나의 진부함이다. 그 둘로부터 해방되고 나면 다른 모든 것들은 즐겁고 다양하고 다채롭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그것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25p)“

 

여명은 반복해서 읽으려 모은 잠언집과 같이 명문장으로 가득하다. 도대체 노쇠란 무엇인가?(43p)"처럼 노쇠, 나이, 여름(82p), , (99p) 등을 비롯해 단어 또한 새로움을 입는다. 모으다, 준다······.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주제를 안기기도 한다. 나는 종종 부모들에 의해 뼛속까지 피폐해진 자식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중략) 그런 자식들은 하도 많아서 골라잡기만 하면 될 정도이다.(53p)” 글쓰기에 대해서는 늘 종이와 씨름하는 사람들, 글을 읽을 자유는 없고 오로지 쓰는 자유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글을 읽고 가구를 디자인하는 사치를 누린다.(53p)"말하니 독서가 호사임을 깨닫고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자연의 묘사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그 부분만 들어내어 삽화와 함께 예쁜 소책자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감각적 서술은 복숭아 향기를 맡게도 종소리를 듣게도 춤추는 댄스홀을 보게도 한다. 동식물을 글로써 채집하는 그녀의 산책길에 서둘러 따라 나서게 된다. 진정어린 교감을 하며 키우는 동물들은 물론 산책길의 생명체들까지 살아 숨쉰다. 언젠가 그에게 줄과 목걸이를 매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결국, 내게도!“ 라 말하며 한숨짓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중략) 그에게는 완벽한 연인이 갖출 법한 정숙함이 있어, 내가 억지로 만지기라도 할라치면 질겁하곤 한다.(56p)" 그녀는 함께 했던 세 번째 고양이를 추억한다. 그녀가 교류했던 예술가들을 엿보는 것도 즐거운 여정이다. 어떤 화가는 여명의 표지 삽화를 그렸다.

 

작가는 누구든 가까이 다가서고 싶게 하는, 자의식이 빛나는, 일종의 숨만 쉬어도 멋있는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루 살로메를 비롯한 천재적 그녀들이 빠르게 스친다. 생각과 감정, 행동이 기계적으로 연속되는 생각의 틀을 작동시키지 않고 감정과 생각을 분리시키는 것이 일상화된 깨어있는 의식을 지녔기에 작품도 삶도 가능했을 것이다. 글쓰는 자, 기록하는 자이니 이부자리적 요소(오래전 도스토옙스키 번역본에서 읽었던 표현)에 빠져 침몰하는 일 따위는 없다.

 

시 공간적 배경 뿐 아니라 여성의 이야기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공통분모가 없어 적절한 비교가 아니지만 아무래도 직전에 읽은 작품의 짙은 잔상은 다음 독서에 영향을 끼친다.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의 작품에서(시간은 밤/문학동네) 몸부림치는 여성들과 콜레트의 여성들은 너무도 다른 곳에 있다. 포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가림막도 커튼도 잡아뗀 생경한 글로 우리의 오감을 단련시키며 , 같이 한 번 내려가 봅시다, 지옥으로라고 이끄는 페트루솁스카야의 세계와, 계절의 추이를 가늠하고 오수 이후 하루의 때 조차도 미려하기 그지 없이 포착해 보석으로 테를 두른 일기 같기도 한 콜레트의 나른한 세계는 너무도 멀다. "나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은 다 싫어한다.(109p)" 사례를 나열하며 확고하게 반복하는 콜레트와 달리 살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 만 있다면 무엇이든 참아보겠다는 페트루솁스카야의 여자들은 다른 차원의 공기를 마신다.

 

콜레트는 사랑받았던 만큼 빼어난 감수성으로 맘껏 기록하고 창조했던 작가이며,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고 많은 것을 증명했기에 독자에게 용기를 주고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진심 가득한 글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기에 시처럼, 노래처럼 아름답다. 점점 더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는 그녀의 어머니 시도는 콜레트에게서 다시 이어진다. 창에서 뛰어내린, 아직 정체불명의 이 새벽이라는 친구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변화하는 형태를 완성할 시간이 부족했는지, 그것은 땅에 닿은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내가 그 과정에 참여하자 모든 것이 변했다. 그것은 숲이 되었고, 물보라가 되었고, 별똥별이 되었고, 무한히 펼쳐지는 책이, 포도송이가, 배가, 오아시스가 되었다······(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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