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책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문학동네/오진영 옮김)은 그가 리스본의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책을 출판하기 원하는 페르나르두 소아르스라는 사람의 일기이자 고백록인 사실 없는 자서전을 말한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난 페르난두 페소아는 시와 산문을 포함해 다양한 영역의 저술을 남겼으나 생전 출간작은 영어와 포르투갈어 시집 총 네 권 뿐이며 사망한 지 8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저술 대부분이 아직 발굴되지 않은채 여전히 분류 작업중이라니(592p) 실로 놀랍다.

 

페소아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이명’, 즉 가상 인물이다.(594p)” 상상 친구를 소재로 하는 인상깊은 동화작품들을 떠올릴 때 페소아는 특정 시기의 상상 친구로써 무심히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개별적으로 정밀하게 형상화한다. 함부로 현실이라 부르는 대상과 생생한 비현실 속 인물(594p)을 놓고 볼 때 현실과 비현실을 마술을 시연하듯 뒤섞는다. 이렇게 생명을 불어넣고 작가의 이명으로 활약하도록 만든 가상인물은 70개가 넘고, 그 중에서도 페소아에게 가장 근접한 아바타 격 인물이 불안의 책의 서술자 페르나르두 소아르스다. 여성 페르소나 마리아 주제까지 알고 나면 페소아가 구축한 세계, 그의 천재성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불안의 책은 번호가 붙은 481개의 단상으로 한 두줄의 짧은 글부터 페이지가 넘어가는 경우까지 분량은 유동적이다. 드물게 소제목을 갖춘 글도 있고 알아보기 어렵거나, 추측했거나, 빈 칸인 경우까지 발견된 작가의 글을 최대한 근접하게 복원하고 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거듭 변주하는 글, 개념을 정리하고 자신의 말로 정의 내리는 글, 평범한 현상을 비범한 시선과 조건으로 비틀어 보는 글, 자신 안으로 침잠하며 숲을 이야기하다 나뭇잎의 세포까지 돌연 해체시키는 글, 강조와 변화, 비유등 수사법의 온갖 치장을 은근히 장식하는 글, 유쾌한 비약으로 웃음짓게 하는 글, 극한의 상상력을 자랑하는 글, 찬성이요 또는 난 반대요 거수하게 하는 글, 염세주의자로군 싶게 한없이 소진시키는 글, 바로 어느 틈에 나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다.(509p)” 몇 번이고 선언하는 글, 단단하고 가슴벅찬 긍정의 표를 슬쩍 건네는 글······ 페소아의 문장은 독자를 데리고 떠난다. 한 걸음씩 더 깊은 미지의 곳으로.

 

글의 후반에 페소아는 내가 인생에서 맡고 싶은 역할은 사람들이 감정을 느낄 때 사회 법칙의 영향은 점점 더 적게 받고 대신 자신의 판단을 더 따를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다······영혼의 상처를 소독하고 처치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저속함에 오염되지 않게 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내가 되고 싶은 자기 관리 교육자가 껴안을 수 있는 가장 찬란한 운명이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과 의견에 완전히 무감각해지는 법을 배운다면-주제의 성격이 그렇듯 당연히 천천히-이는 내 삶의 학문적 정채를 보상하고도 남는 꽃다발일 것이다.(479p)”라고 밝힌다. 그는 결벽의 정신이며 페트리 접시에 담긴 증류수를 연상케 한다. “불안의 책을 읽으며 가장 떠오르는 작품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였다. 오래 전에 읽었던 말테의 부럽고 아름다운 공간이 재현되는 느낌에 행복했다.

 

줄 친 부분은 물론 박스로 묶거나 온갖 기호로 표를 하며 읽었던 부분, 특히 글쓰기, 문학, 독서, 부조리를 다루는, 그리고 다시 읽어야 할 그 많은 부분을 다 옮길 수 없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책,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책, 동시에 끝나버림이 아쉽기 그지없는 책이다. 이제 페소아를 조금이나마 더 기억하기 위해 타부키의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을 읽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수많은 이명 속에서 익명이었던 페소아 자체 같이 슬프고도 사실적이다. 내일이면 나 역시, 그렇다, 느끼고 생각하는 영혼이며 내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우주인 나 역시 이 거리를 더 이상 지나지 않을 테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 어떻게 됐지?’라고 어렴풋이 떠올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했던 모든 일, 내가 느끼고 살아왔던 모든 것은 어느 도시에나 있는 일상의 거리에서 사라진 한 명의 행인일 뿐, 아무것도 아니리라.(587p)”

 

책 속에서>

그러면서 거의 아무 생각 없이 나는 모두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인류가 이렇게 산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의식 수준이 높든 낮든, 정체해 있든 활발히 움직이든,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똑같이 무심하고, 각자의 목적을 똑같이 포기하고, 인생을 똑같이 느끼면서 살아간다. 햇볕을 쬐고 있는 고양이를 볼 때마다 나는 인류를 떠올린다.(4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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