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5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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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의 “백치(열린책들/김근식옮김)”는 그의 5대 장편소설 중 하나로 “죄와 벌” 다음에 발표한 작품이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창조한 인물 중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세 인물로 죄와 벌의 소냐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알료샤, 그리고 바로 백치의 미쉬낀 공작을 드는데(죄와 벌2/문학동네450p), 미쉬낀 공작이라고 확정하기 전 이름이 ‘그리스도 공작’이었다는 점에서도(946p)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치료를 위해 후원자의 도움으로 스위스에 머물던 미쉬낀 공작이 고국 러시아에 돌아와 우연과 필연이 겹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들이 관계를 맺고 각자의 목적을 향해 움직일 때의 파장과 현상을 사건의 중심인물로서, 때론 관찰자이자 중재자로서 그려보인다. 공작의 정체성이기도 한 육신의 병, 간질은 그의 약한 고리이지만 순수하고 선한 마음,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는 것은 물론 본능적 자기방어조차 하지 않고 스스로를 기꺼이 내어주는 조건 없는 헌신 앞에 사람들은 그에게서 평안과 거리감을 동시에 느낀다. 사랑하면서도 자신은 결코 그럴 수 없기에 미워지는 양가감정의 충돌을 경험한다.

 

뻬쩨르부르그 행 기차에서 세 사람은 우연히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레프 니꼴라예비치 미쉬낀 공작은 스위스에서 간질 치료를 하던 중 후원자의 죽음으로 예빤친 장군의 아내이자 유일한 공작의 먼 친척 리자베따 쁘로코피예브나를 찾아보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가는 중이고 빠르펜 로고진은 나스따시야 필리뽀브나에게 빠져 아버지의 돈을 탕진한 이유로 심기를 건드려 피신해 있다가 아버지 사망 소식에 유산 상속을 받기 위해, 그리고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자신의 이익을 쫓아 분주히 웃음 짓거나 등 돌리거나를 반복하는 레베제프까지 여행의 목적을 나누며 서로를 기억하게 된다.

 

유일한 친척인 리자베따 쁘로코피예브나를 만난다는 목적을 위해 예빤친 장군의 집을 찾아간 미쉬낀 공작은 장군 부인과 그의 세 딸을 만나게 되고, 그 중 집안의 우상이라고도 할 만한 막내 아글라야는 매사에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관철시킴으로 미진함을 남기지 않고자 하는 성격이 눈에 띈다. 이볼긴 퇴역장군의 아들이자 예빤친 장군의 비서인 가브릴라와도 첫 대면을 한다. 미쉬낀 공작은 지병의 잦은 발작으로 거의 완전히 백치가 되었으며(49p) 사람들 또한 그를 으레히 얕보지만 시간을 함께 보낼수록 공작을 다른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아끼게 된다.

 

공작의 주변에는 불안요소가 끊임없이 출현한다. 전투적 행동력에 있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드미트리를 연상시키는 로고진은 집요한 열정, 강한 소유욕으로 대변되며 일면 ‘그루셴카-드미트리’구도를 ‘나스따시야-로고진’에게서 찾아보지만 그러기에 드미트리의 순수함과 밝음을 로고진에게서 발견하기 힘들다. 여인들에게서도 물론 간극이 크다. 로고진은 질투와 적개심에 사로잡혀 숨어 헤치려는 자다. 그에 머물지 않고 급기야 몸을 드러내 헤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한다.

 

나스따시야 필리뽀브나의 절세미모는 자신에게 독이 된다. 처음 사진을 본 미쉬낀 공작의 ‘기가 막힌 미모군요! 이 여자의 운명이 평탄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81p)’라는 말이 복선처럼 깔린다. 장군 부인이 이런 얼굴을 좋아하느냐 공작에게 물었을 때 그는 좋아한다 답하며 ‘이 얼굴에는······많은 고뇌가 담겨 있어요······(129p)’ 라는 이유를 댄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는 드미트리가 앞으로 겪을 고난을 생각하며 땅에 머리를 대고 절을 했는데 그 장면이 떠올랐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권력 있는 양육자 또쯔끼에게 키워지고 상처받음으로 그를 비롯한 그녀의 아름다움을 원하는 자들에게 복수하는 것, 나아가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는 것, 구원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그녀의 동력인 것 같다.

 

뻬쩨르부르크 도착 첫 날 저녁, 나스따시야는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생일파티에서 가브릴라와의 결혼 여부를 발표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양심에 반하는 자기만의 비밀을 돌아가며 털어놓는 프티죄 게임을 하는데 각각의 일화가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려냄으로 악한 행위까지도 놀래키는 동시에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프티죄 게임의 마지막 당사자로 나스따시야는 자신의 결혼여부를 발표한다. 나스따시야의 최선을 다한 총정리의 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자신의 오랜 고통을 드러내고 주변인들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새로운 시작을 갈망한다. 10만 루블을 불구덩이에 던지며 가브릴라를 시험하는 장면도 놀랍다. 그녀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으로 안식을 얻지 못한다.

 

도스또예프스끼답게 등장하는 인물이 소모적으로 사라지는 일은 거의 없다. 남녀 주인공 이외에도 가브릴라, 바르바라, 니콜라이 삼남매, 니콜라이의 친구인 이뽈리트, 레베제프 등의 전형을 직접 분석한다. 특히 4부 1장의 “유형적인 면에서나 성격적인 면에서 한마디로 어떤 인물이라고 꼬집어 말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707p)’로 시작하는 부분 부터는 심리분석과 인간 전형을 설명하며 소설 속 캐릭터의 작법과 기능까지 강의한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인상 깊었던 양파 한 뿌리나 천 조 킬로미터 에피소드처럼 독자를 집중시키는 삽화들도 곳곳에 등장한다.

 

총살형 직전 사면령 번복에 ‘정말이지, 인간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42p)’라는 말로 작가의 경험을 작품 속에 각인하는데 이런 폭력이 그 순간 이후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이라는 형벌일 수 있음을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주는 듯하다. 마리 이야기부터 레베제프가 대기근 시기에 식인을 했던 수도사와 양심의 문제, 이뽈리트의 ‘해명’과 왜곡된 감정, 종교적 논점들, ‘고도의 예술적 모조’임을 아직 모르고 매혹을 느꼈던 공작의 사교계 데뷔 장면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자리에서 공작은 말한다. ”나는 나무 옆을 지나가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뭘 보고 다니는 거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아, 내가 모든 걸 표현해 낼 능력이 없음을 한탄할 따름입니다······(중략) 어린아이를 바라보세요, 신이 선물한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세요. 풀잎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바라보세요. 당신을 쳐다보며 사랑하고 있는 눈을 바라보세요······.(851p)“

 

 나스따시야만큼 아름답지만 상처는 없는 아글라야, 그녀는 미쉬낀 공작과 미래를 함께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전개가 시작된다. 아글라야와 나스따시야의 만남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공작의 행동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지만 한 마디를 남긴다. “내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나스따시야는 반드시 죽었을 겁니다.(896p)” 이정도면 여기서부터는 순조로운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멈추지 않는다. 내가 오랜 시간 두려워 했던 문학 속 장면은 "죄와 벌"의 노파 살해 장면이다. 라스꼴리니코프의 회상 속에서는 더 소름끼치게 재현되었다. 그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무더운 백야의 뻬쩨르부르크, 밀실처럼 작은 방에서의 만져질 것 같은 현실적인 공포가 심장을 옥죄었다. 하지만 단순히 ‘두려움’이라는 하나의 감정일 수는 없고 각 인물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돌아가며 허무함과 깊은 슬픔이 함께 차오른다.

 

“공작은 갑자기 깨달았다. 이 순간과 더불어 이미 오래전부터 그는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아 왔고,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았으며, 반갑게 받아 쥔 이 카드가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937p)” 더 늦기 전에 내가 해야 할 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해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리는 문장이다. 나스따시야에게 했듯이 로고진의 머리와 뺨을 쓰다듬어 주는 미쉬낀 공작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예상하지 못했던 비극적 결말 앞에서 ‘왜 인간은 고통받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맹목적 자학이라거나 원래 성격이 거칠었어 라거나 그만 좀 하지, 멈출 수 있었을텐데, 너만 힘든게 아니잖아 등의 대답을 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런 말은 고통을 보탤 뿐이다.

 

어린시절의 상처는 흔적을 남기고 어떻게든 결과를 감당하게 한다. 내던져진 존재로서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받은 상처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 모든 비극에는 원인이 있고 원인의 첫 단추, 그 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갔을 때 만나게 되는 아픔을 떨치고 새로운 시간을 선택하게 하는 힘이 절실하다. 하지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에 그리스도를, 그리스도 공작이라 명했던 미쉬낀 공작을 작가는 정성껏 그려낸 것 같다.

 

그렇다면 다시 그리스도를 닮은 세 인물 알료샤와 소냐, 미쉬낀 공작을 불러내 보고 싶다. 알료샤와 소냐에게 엿보이는 내적 충만, 미래에 대한 기대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한다. 이에 반해 미쉬낀 공작은 가장 약한 자, 비난받는 자의 고통을 끌어안고 자신을 희생시킨다. 부활을 내포했을지는 모르겠지만 희생 그 자체로 사랑을 실현한다. “인간이 서로에게 가하는 상처를 억제하는데 그리스도가 실패를 했듯이, 공작 역시도 실패작이다. 그러나 그는 그 상처를 자기에게 끌어들이려 하고 자신의 믿음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가장 훌륭한 이미지를 안겨 주고 있다.(968p)” 책을 읽는 동안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고통받는 자들 중에서도 가장 약한 사람에게, 약함이 악함의 겉모습을 취했을 때도 감추어진 본성에 초점을 맞췄던 미쉬낀 공작의 시선을 살필 수 있었고, 그가 관계 맺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법을 지켜볼 수 있었기에 그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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