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
알바로 무티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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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 무티스의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문학동네을 키로가와 카프펜티에르 다음으로 읽게 되었다. 연이은 독서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시·공간적 배경지식의 단편성이었다. 전공자들을 부러워하게 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마치 무티스를 읽기 위해 앞의 두 작가를 읽어온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은 결코 잊지 못할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알바로 무티스는 마크롤에 관한 일곱 편의 소설을 펴냈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세 편을 묶었음을 해설에서 밝히고 있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마크롤 가비에로의 여정은 알바로 무티스의 삶은 물론 그의 또 다른 작품을 알고 싶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무티스는 콜롬비아 작가지만 국제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514p)" 작가의 세계관은 과거 어떤 시간’, ‘먼 어떤 공간에 한정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현실을 비추게 한다.

 

작가가 첫 번째로 발표한 작품이기도 한 제독의 눈은 가비에로의 일기를 담고 있다. 가비에로의 상처를 치료하며 함께 기거하게 되었던 플로르 에스테베스의 가게 제독의 눈에서부터 일정은 시작된다. 밀림 끝 제제소에서 목재를 구입해 큰 강가에 짓고 있는 군부대에 높은 가격에 판다는 사업이다. 이 배에 오르면서 나는 제재소에 관해 물었지만, 아무도 그것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못했다. 심지어 그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28p)" 처음부터 불안한 기운이 느껴진다. 나는 처음부터 잘못된 이런 결정을 비롯해서, 내 인생의 역사를 이루는 이런 막다른 길과 재앙이 왜 자꾸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지 몹시 궁금하다.(29p)" 가능성있는 수단을 통해 부를 소유하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은 가비에로의 오랜 경험에 의하면 지금껏 한 번도 원하는 결과를 내주지 않았다.

 

나아가 항상 배신당한 채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늘 완전히 패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끝났다. 그런 끊임없는 패배를 바라지 않았더라면, 내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9p)" 하기에 이른다. 의심했을 때 왜 멈추지 않았을까, 스스로 패배하고 싶다는 모순에 빠지는데다, 이것만 아니었어도 성공했으리라는 진단까지 하면서 왜 돌이키지 않았을까. 어리석어 보이는 한편으로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이어지는 다른 두 편의 연대기에서도 우연하면서도 정확히 겹쳐지는 패턴의 불행한 반복은 하나의 축을 이룬다. 제재소를 향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밀림을 통과하며 어지러운 꿈을 꾸고, 여러 형태의 죽음을 보고, 자신 또한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록을 남긴다.

 

가비에로가 제재소를 향해 가며 겪는 일들은 카프카의 에 등장하는 토지 측량사 K의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을 연상시킨다.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듯한 암시는 계속되고, 모호한 실체를 향하는 걸음은 꺼림칙함을 더한다. 제재소는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내가 이 제재소에 관한 진실을 이야기해달라고 졸랐을 때, 선장과 소령, 그리고 제재소에 관해 말했던 사람들이 왜 말을 아끼고 피하려고 했는지 이해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실은 말로 전달할 수 없다. (127P)" "에 대해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어 정의하는 문장들, 위험, 밀림, 꿈에 대한 문장들은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제재소는 반드시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모든 꿈, 욕망, 신기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재소는 다음 이야기들에서도 위험하고 불가사의한 계획으로 애쓸수록 탈출구 없이 깊이 가라앉게 만드는 늪처럼 그려진다.

 

자연은 물이나 강, 열대성 기후나 숨쉬기 어려운 고지대와 추락할 듯한 산비탈 벼랑 등 여러 모양을 한 장애물로 앞을 막아선다. ‘몰랐어요가 통하지 않는 인생의 함정들 앞에서 가비에로와 플로르 에스테베스, 일로나, 암파로 마리아를 비롯한 인물들이 당면하고 선택하는 삶을 보여준다. 읽다가 멈추어 생각하게 되는 정밀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은 마치 명언집 같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깨달을 뿐 취하지 못하는 인간 한계를 가식없이 보여준다. 같은 실수의 반복이 인생이라면 성장은 불가능한 것일까 자꾸 생각나게 될 것이다. 인생 명작 한 권을 더한다.

    

 

 

“······이곳은 당신 같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그는 아마도 이 세상에 자기가 있을 곳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방황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중략)“나는 나라를 상상한다. 희미하고 안개 자욱한 나라다. 내가 살 수 있는 마술적이고 매혹적인 나라다. 그게 어떤 나라일까? 그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4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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