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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평점 :
뮤지컬로도 유명한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원전 소설에는 모델이 있었다.
영국의 해부학자 존 헌터였다. 그는 의학을 개혁하기 위해 해부학이 필수라고 생각하고 본인이 스스로 해부학을 좋아해서 해부학에 집착했다. 설사제 남용과 사혈같은 치료법이 횡행하던 의학계에서 헌터는 최초로 인공 수정을 시도하고 치아를 현대식으로 구분하고 후각 신경등의 해부학적 발견을 수십 가지나 이루었다. 뛰어나 존경받기만 해도 모자란 사람인데 존 헌터가 하이드가 된 이유는 시신 도굴꾼과의 거래때문이었다. 런던에 있었다는 그의 대저택에는 시신 도굴꾼을 위한 전용 문이 있었고 뒷방에서는 특유의 시체 냄새가 풍겼다. 이런 야누스적인 모습을 보면 스티븐슨이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를 썼다고 한다.
이 존헌터라는 사람은 [과학잔혹사]란 책에서 세 번째로 소개된 인물이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어 범죄와 비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살펴보며 무엇이 그 사람들에게 궁극적인 금기를 깨게 했는지 알아보는 책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재밌겠다란 생각이 들었는데 지은이와 번역가를 보니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되었다.
마치 데스노트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표지를 가진 이 책은 흔히 말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Mad Scientist들을 해부하고 분석하는 책이다.
이 책은 모든 내용이 대부분 흥미롭다.
프롤로그는 <전설에 따르면, 역사상 최초의 비윤리적 과학 실험을 설계한 사람은 다름 아닌 클레오파트라였다고 한다>로 시작한다. 이미 '사라진 스푼'들을 써낸 과학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샘 킨은 사람들이 한눈팔지 못할 문장과 표현력을 사용한다.
1장과 2장을 통해 18세기 과학이 얼마나 노예무역에 빚을 지고 있는지 해적질과 노예무역을 해서라도 신비한 자연을 탐사하고 연구하려던 과학자들의 모습은 기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것이 느껴졌다.
바나나, 아보카도, cashew(캐슈)와 같은 단어들을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오르게 만든 해적 생물학자 윌리엄 댐피어는 아내에겐 나쁜 남편이었지만 다윈에겐 큰 영향을 끼쳤고, 헨리 스미스먼은 개미들의 생태를 연구한 뛰어난 곤충학자였다.
발명왕으로 유명한 에디슨이 테슬라를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꽤 비열한 방법도 서슴지 않았다는 건 꽤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세기에는 에디슨의 GE가 잘 나가고 21세기에는 테슬라의 이름을 딴 회사가 잘 나가는 사실은 그래서 뭔가가 괜히 재밌다.) 직류전원을 미는 에디슨은 교류전원을 개발한 테슬라를 이기기 위해 무려 44마리의 개와 6마리의 송아지 그리고 두 마리의 말을 죽였다. 그리고 심지어 사람도 죽게 한다. 문제는 전기 처형의 목적인 고통없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는 에디슨에게 "양심이 있어야 할 곳에 진공이 있다"라고 평했다고 한다.
표지에서 도드라지는 건 붉은색 뱀이다.
뱀은 의학의 신이라는 아스클레오피오스의 상징이다. ( 죽어가는 뱀을 위해 다른 뱀이 약초를 물어와 살려내는 모습을 보고 아스클레오피스가 의술을 익혔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나라의 의사협회의 상징에는 뱀이 들어있다) 이 책에는 의학 연구의 역사가 얼마나 비 윤리적이었는지를 자주 언급한다.
ㅡ 대다수의 의학 연구는 생체를 대상으로 하며...19세기의 해부학자들조차 다음 세기에 일어날 일부 야만적인 실험에는 기겁했을 것이다. 고통을 받은 대상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의학 연구에서는 동물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취급하며, 동물의 고통과 괴로움은 부수적 피해로 일축한다. P140
책의 많은 내용들이 의학과 연결되어 있다. 이건 의학만의 문제가 아닌 사람에게 피해가 나타난 사건을들을 주로 다뤘기에 필연적인 내용구성일 것이다.
존 커를러 를 비롯한 미국의 공중보건의들은 매독균을 가난한 흑인들에게 일부러 전파시켰다. 그런데 이 성병실험을 수행한 존 커틀러는 동시에 인도와 아이티에서 여성의 의료환경을 개선시키고 1980년대의 AIDS에 대한 도덕적 공황과 동성애자를 악마화하는 것을 반대했다. 한 인물이 정반대의 일을 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쉽게 판단하면 안된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WHO가 새로운 백신이 나올 때 윤리적 속임수를 쓰는 문제(일반적인 백신에 대한 설명만 해주고 암시적 묵시를 얻는 경우 등)는 쉽게 결론이 나긴 힘들 것 같다. 주로 아프리카에서 임상실험이 벌어지는데 이런 상황은 주로 선진국의 백인들이 비난할 때가 많다.
ㅡ제 1세계의 도덕 기준을 복잡한 제3세계의 상황에 적용하는 '윤리적 제국주의'라는 죄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P249
나치가 행한 (일본도 저질렀을 ) 생체실험을 목도한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강령을 만든다. 뉘른베르크 강령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 윤리 지침 열가지인데 환자의 권리를 특히 강조했다. (p219)
설계가 잘 못 된 의학 연구는 비윤리적이라고 비판받을 때가 많다. 윤리는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우간다같은 곳에서 백신실험이 없다면 그 나라에서 백신접종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얼음송곳으로 뇌 수술을 하는 윌터 프리먼은 그나마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소명의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의사가 아닌 심리학자의 영향은 좀 더 광범위하다고 느꼈다. 천재 수학자인 카잔스키를 테러리스트인 유나바머로 만든 머리의 실험은 잔인했다. 그리고 의료사고로 생후 8개월에 성기를 잃고 억지로 여성으로 자라야 한 브루스_브렌다_데이비드의 삶은 안타까웠다. ( 브루스, 브렌다, 데이비드는 동일 인물이다) 브루스의 심리치료를 진행한 존 머니의 행동은 책을 읽으면서도 짜증이 났다. '젠더'라는 용어를 만든 존 머니가 브루스와 쌍둥이 형제인 브라이언에게 한 행동은 범죄였다고 생각하데 된다. 무리하게 여자로 키워지던 브렌다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고 다시 남성의 삶을 결정하고 이름을 데이브드로 바뀐 내용들은 먹먹하게 읽었다. 머니는 자신의 이론에만 집중하여 개인의 지닌 자율성과 환자의 주장을 외면한 최악의 심리학자였다.
실패한 성전환 수술에 대한 사연들은 뮤지컬 헤드윅이 떠오르기도 했고 2015년에야 UN이 신체 일부가 훼손된 아이와 모호한 생식기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전환 수술이 인권침해라고 선언했다는 것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과 함께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ㅡ 우리의 성 정체성이 해부학과 뇌구조, 호르몬, 가정환경, 문화적 영향 등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면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게다가 젠더는 태어날 때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니지만 완전히 유동적인 것도 아니어서, 의사들과 외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p400)
ㅡ 우리를 만드는 데 문화가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사람은 빈서판이 아니며, 1억 6000만 년 동안 계속돼온 포유류의 진화를 문화가 마술처럼 압도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p403
저자의 표현대로 똑똑할수록 더 현명하고 윤리적일 것이라고 쉽게 가정하고 현대의 과학자들은 대체로 스마트한 집단으로 포지셔닝 된다. 저자는 먼저 윤리적 행위를 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과학사 공부를 하며 이 책에서 언급된 사람들을 괴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ㅡ 윤리에서 중요한 요소는 윤리적으로 행동한 것이 편해야 하는 것이다...커틀러나 머니나 프리먼을 괴물로 묘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괴물이 자신과 상관없는 부류라고 일축하기 쉽기 때문이다. 카를 융이 말했듯이 악인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으며, 그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그 악인을 길들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 결론 내용요약 ]
부록에서 저자는미래의 각종 범죄를 이야기하며 우주시대는 오히려 중세 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나 역시 그 의견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범죄를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가장 섬뜩하게 읽은 지점은 9장의 간첩활동으로 스탈린 시절에 스탈린을 위해 활동한 해리골드와 클라우스 푹스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행동보다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무섭게 작동하는지를 다시 한번 느껴서였다. (p316)
똑똑하기 전에 윤리적일 것 그보다 그전에 합리적 가치판단 능력을 가질 것 - 과학자 뿐 아니라 수많은 정보와 선택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 사람들의 필수 덕목인 것 같다.
ㅡ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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