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맑고 사색적인 날이다. 네바 강이 햇빛에 빛난다. 나는 그 당당한 표면과 깊고 조용한 물결의 품을 사랑한다. 바다에는 슬픈 노을이 꺼져가고, 선홍색 하늘이 타오른다. 애처롭게 파도가 친다. 전나무는 고개를 숙였다. 나뭇진 냄새가 난다. 별이 빛나기 시작하고 가을밤이 오면, 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의 권총은 나와 함께 있다.-198쪽
우리가 그렇게 지난하게 감상적으로 애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너무 고독하다는 것과 우리의 사회적 결속이 2인용 감방을 결코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 감옥에 우리는 각각 어머니, 아버지, 연인, 아이와 함께 단둘이 갇혀 있다. 사랑하는 한 사람을 잃는 순간 세상은 무너지고,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사회성이 결여된 삶을 살아왔는가 하는 것이 드러난다. 그곳에는 자기 보존 및 그 모든 구성원의 보존을 위협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망각과 활동력을 전적으로 필요로 하는 어떤 살아 있는 공동체도 존재하지 않는다.-37~38쪽
하지만 공포의 본령은 바뀌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은 ‘나’뿐이다. 공포는 혼자 있으면서 자신보다 강한 것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에게만 닥친다. 그 강한 것이라는 게 상관이든, 아버지든, 병이든 또는 사랑이든, 아니면 군중이나 이별 또는 사고나 사건이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다.-171쪽
우리가 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선악을 알게 해주는 열매를 맛본들 무슨 소용이냐 하는 걸세.-219쪽
나의 여행은 항상 이런 식으로 전개되기 일쑤다. 그 이유는 내가 언제나 패배자의 면모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내가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너무 애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행은 더 이상 여행이 아니라 서로 헤어져야만 하는 이별의 장이다. 사람들과 이별하고, 그들을 다시 기억하고, 그리고 작은 비석들처럼 내 수첩 속에 주소들을 수집하며 나는 나의 수많은 시간을 보내 왔다.-119쪽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구든지 우리 생애 가운데 가장 행복하다고 손꼽을 만한 어느 한 시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거야. 지나간 시점이나, 그걸 언급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이나 우리가 불행하긴 다 마찬가지거든. 그럼에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가급적이면 미래보다는 과거에 놓으려고 하지. 그렇게 하면 만사가 한결 단순해 보이거든.-144쪽
오늘 하루에만도 수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베스트 셀러가 아닌 것들은 잊혀져 가는 게 현실. 우리, 홀로 꿈꾸는 책을 찾아 쓸쓸한 얼굴을 마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