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언제나 내게로 향해 있다 - 어제는 아프고 오늘은 슬픈 이들에게 전하는 마음 수행 산문집
인현 스님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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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한 챕터를 읽고 사진을 보며 엄마가 생각났다. 말로 뱉지 못하고 짧은 문자로 담아내지 못하는 그 말이 혹시 이런 것일까?

친정에 가면 아이들 나들이겸 종종 들르는 사찰이 있다. 어린시절에는 그 높은 곳에 버스를 타고 내려 한참을 걸어 오르곤 했다. 아빠와 결혼한 후 지금까지 백중, 구정, 칠석, 대보름 등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날들을 챙기신다. 언젠가 허리 수술뒤로 절하기도 힘든데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걸 왜하냐고 핀잔을 놓던 내게 넌즈시 말씀하셨다.

"우리가족 편안하라고 기도하는거지, 절에 간다고 바람이 다 이루어지는건 아니지만, 일단 내 마음이 편안하다. 너도 결혼해서 자식이 생기면 알게 될거야."

얼마 전, 8세 딸의 생일기념삼아 영주로 여행을 갔다가 부석사에 들렀다. 두 딸이 절 올리는 곳을 찾았다. 익숙한 듯 방석을 끌어내리고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고 함께 절을 했다. 아마 우리 넷의 기도는 같았을테다. 그리고 황홀한 풍광을 보며 많이 걸었다. 천천히 둘러보고 감탄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 길이 내게 평화로움과 평정심을 선사했다. '그래, 이거면 됐지' 싶었다.

올 봄, 함께 가던 그 절에 계시던 주지 스님이 돌아가셨다. 엄마와 동갑, 꽃과 화초 가꾸기, 동시를 짓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시는 여승이셨다. 서로 꽃씨를 나누고, 좋아할 법한 간식을 챙기던 사이, 몇마디 주고받지 않아도 얼굴을 뵙고 돌아오면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는 엄마의 마음 속 지기셨다. 주인 잃은 화초, 손길이 잊혀진 곳을 볼 엄두가 안난다시며 한참동안 발길을 끊으 셨다. 그러다 어느 날 문뜩 '나도 내 길을 가야지, 가서 화초도 둘러보고 기도도 하련다' 용기를 내셨다.

어디를 가도 결국은 돌아오는게 여행이고 삶이야.
하나를 가지려면 가지고 있던 것을 놓을 줄 알아야 해.
사람은 아무리 가까워도 모두 외로운 법이야,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알아야해, 믿을 수 있는건 나뿐이야.
엄마가 하는 이야기도 지금은 흘려듣겠지. 나중에 직접 겪을 때가 되야 비로소 아..그 말이 이런 뜻이구나 알게 될거야.

문제도 '나'이고, 답도 '나'이다. 문제와 답 사이에 바득바득 애를 태우고 휘청휘청 흔들리는 나를 조용히 바라볼 시간과 마음이 필요하다.

제주에서 수행하시는 인현스님이 일년 내내 차분하고 섬세한 손길로 보살핀 찻잎을 딴다. 깨끗하게 덕어내어 깔끔하고 따뜻하게 내어주시는 차 한잔을 마신다. 잡념을 지우고 오로지 차의 빛깔, 향기, 맛, 온도에 집중하는 시간, 이 작품은 내게 그런 조용한 시간을 선물했다.


***위 책은 마음의숲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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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까 올리 그림책 10
오은영 지음 / 올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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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딸의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나와 딸은 내 친구와 9세의 언니를 만났다. 한산하고 넓은 카페에서 들락날락 놀던 두 아이는 땀을 식힐겸 준비해온 노트에 주어진 모양으로 그림 그리기를 했다.
예를 들면, 백지 위에 동그라미 1개가 있다면 태양, 꽃, 피자, 곰, 지구, 자동차 등 연상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집으로 갈 준비를 마치고 그림을 그린 종이를 보여달라니 고이고이 접어 가방에 쏙 넣어버린다.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군.' 짐작했다. 알고보니 딸은 세모 모양으로 여우를 그렸고, 한 살이 많은 언니는 셔츠를 그려놓았다. 딸은 왜 자신의 그림을 숨겼을까? 언니의 상상력과 표현이 부러웠을까? 자신의 그림이 틀렸다고 생각했던걸까?

#오은영 작가의 #보니까 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과 네이버 그라폴리오에서 주최한 ‘2020 상상만발 책그림전’ 당선작이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적개념 을 기발한 그림과 쉬운 글로 풀어냈다.

나는 이렇지만 그 사람은 저렇지.
나는 이게 좋지만 그 애는 저게 좋대.
내 기준엔 절대로 안되지만 저 사람에겐 흔한 일이야.
살다보니 누가 전적으로 옳기만 그르기만 하지는 않다.
'그럴 수도 있지' 사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니까.

모두 달라요. 그러니 존중해야 해요.
라는 틀에 박힌 말보다, 같은 모양이라도 이렇게 저렇게 달라질 수 있고 그래서 요롷게 조롷게 재밌고 즐겁다. 그러니 모두 소중하고 멋지다. 아이들이 직접 놀이를 하듯 접한다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5세의 딸아이와 #숨은그림찾기 를 하듯 그림책을 바로 보다가 세로로 보다가 거꾸로 돌려보다가를 수차례 반복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순간, 탄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신이 났다. 그 후로 아이들과 구름을 더 자주 찾아본다. 이건 찌그러진 하트, 저건 숨어있는 하마, 노을에 비친 구름은 고백을 받아 부끄러운 것이란다. 뭐든 옳다. 너희의 상상력과 즐거움이 더해진 것이라면!


*** 위 책은 올리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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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호 Dear 그림책
권윤덕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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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위안부 사건을 담은 <꽃할머니>
제주도 4.3 사건을 이야기한 <나무도장>
광주 5.18 민주항쟁을 말하는 <씩스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철저한 자료조사와 검증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간의 기사와 인터뷰, 사진과 다큐멘터리, 가능한 사적인 기록에 이르기까지... 며칠만에 끝이 나는 작업이 아닐 것이다.
자료에 파뭍혀 지내다보면 마치 내가 그 사건안에 있는 것같은 혼란, 직접 경험에 유사한 충격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선생님의 팬으로서 힐링하는 시간을 좀 가지셨으면...)

10년이라는 작업기간을 거쳐 탄생한 <용맹호>  는 베트남 전쟁과 한국의 참전용사를 소재로 한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는 용맹호씨는 베트남 참전용사다. 어느 무더운 여름, 티비를 통해 최선을 다해 외면했던 기억이 하나둘 들이닥친다. 머릿속에 둥둥 떠오르는 베트남전 당시의 모습들, 무덥고 축축하고 날씨, 그곳에 멈추지 않고 흐르는 땀, 그리고 줄기차게 퍼지는 총소리와 멈추지 않는 붉은 피...

베트남전의 기억이 또렷해질수록 용맹호씨의 모습은 달라진다. 건강하고 친절하며 성실했던 자동차 정비공은 혼란과 두려움에 잠식된다. 귀, 가슴, 눈과 발이 하나씩 더 생기더니 온몸에 선홍색 살갗이 덕지덕지 붙어버린다.
왜일까? 누구의 것이었을까?

가능한 꽁꽁 동여매어 금고에 잠궈넣고 저 밑바닥 깊숙한 곳이 흙더미를 쌓아 뭍었다. 콘크리트까지 쏟아부어 덮어버린 기억이었을테다. 바늘구멍, 실금 한 줄에도  새어들어오는 빛처럼 중대장의 명령대로 '확실히 처리된' 그들의 모습은 어느 틈엔가 용맹호를 뒤덮었다.

'누구'를 위한 '어떤이'의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던 용맹호씨, '무엇'이 그의 생각과 판단을 마비시키고 기계처럼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평범한 '누군가'에게 쉼없이 총을 쏘고 돌아온 그는 '참전용사' 라는 칭호를 부여받는다. '용맹스러운 사람', '용감한 군사' , 과연 무엇에 용맹스럽고 용감했는지...

용맹호씨는 참전용사의 댓가로 평범한 삶과 행복을 잃었는지 모른다. 수시로 그를 집어삼키는 전쟁의 참상으로 그는 하루도 편안히 잠들 수 없었다. 그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생명존중, 인간존엄은 바뀔 수 없는 가치이다. 이를 훼손한 사람은 마땅히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테지만, 그는 어째서 그러했는지, 다수가 모르는 어떤 고통이 있을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전쟁,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결정일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볼수록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된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봐야한다고 생각한다.(정치하시는 분들도 그림책 좀 보세요!) 그래야 닮은 꼴의 역사를 피할 수 있을테니까.

#최혜진 작가는 #권윤덕 선생에게
원하는 마음을 균형있게 가꾸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질문했다.
#권윤덕 작가는 이렇게 질문해보라 대답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내가 원하는 이것이 내 삶을 위해서 바람직한가?
타인과 공동체에도 바람직한가?
자연에게도 바람직한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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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책은 사계절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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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방귀 마음속 그림책 19
정양 지음, 이갑규 그림 / 상상의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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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방귀,
은행나무 밑에서,
두 손으로 오르락 내리락 총 쏘는 시늉을 하면서 엉덩이를 뒤로 조금 내밀고 무릎은 엉거주춤 오므리고
염소똥 같은 자디잔 방귀총 소리,
백아홉, 백열, 백열하나, 백열둘

어릴때 반찬 투정을 하거나 밥을 남기면 친정 아빠는 어김없이 그러셨다.
"아빠 어렸을적엔 전쟁 끝나고 얼마 안되서 쌀이 귀해 보리밥 먹었다. '보리고개' 라는 말이 거짓말 같지? 칡 캐서 씹어가며 단물 빼먹고, 나무껍질이며 나물이며 먹을만한 걸 찾느라 시간 다 보냈어."
그러면 놓았던 숟가락을 다시 들고 우걱우걱 밥을 입에 밀어넣었다.(아빠의 '라떼'😓)

그렇게 살기 힘들었다고 웃음이 없었을까? 언제든 동심은 살아있다. 5학년 1반 상학이는 전교생이 다 아는 올림픽 금메달 깜의 방귀쟁이다. '방귀쟁이 며느리'처럼 큰 소리에 엄청난 위력을 가진 방귀가 아니다.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한다! 세상에...112번이나 방귀를 뀐단다. 그야말로 따발총??!!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이 상황을 어찌할꼬...

5세와 8세 딸에게 책을 읽어주며 방귀총을 쏘는 자세를 시범보였다. 까르르 까르르 난리가 난다. 다음날 재미삼아 보리를 섞어 밥을 지었다.
"난 백스무번 방귀 뀔꺼야!"
당차게 뱉는 5세 아이가 너무 귀엽다.

친정 부모님 오시거든 읽어드려야지! 보리고개 넘으시던 그 라떼에 이런 일도 있으셨는지..ㅎㅎㅎ


***위 책은 상상의힘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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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여우 꼬리 1 - 으스스 미션 캠프 위풍당당 여우 꼬리 1
손원평 지음, 만물상 그림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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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거 비밀인데 아빠한테는 말하지마. 있잖아 ......"

사소한 것 하나라도 보여주고 세심하게 인정받고 싶어하던 아이의 입에서 #비밀 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나만의 세상 만들기 즉, 독립된 개체로서의 성장을 시작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요즘 11살 초등학교 4학년이면 보통 사춘기라 인식한다. 나의 정체성을 찾아 부모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시도를 하기에 심신이 모두 혼란스러운 때이다. 자연스럽게 비밀도 많아질테다.

소설 #아몬드 에서 담담하면서 충격적이고 예리하게 픽션 속에 현실을 그려넣었던 손원평 작가가 성장 소설을 펴냈다. 그것도 시리즈! 첫번째 이야기에 환호하는 독자를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시리즈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기에, 시리즈 성장소설을 기획한 작가에게 내심 기대를 걸어본다.

주인공 단미는 11살에 생각지 못했던자신의 정체성을 마주하게 된다. #구미호 인 엄마가 자신과 다르기를 바라며 지어준 이름 '끊을 단(斷)'과 '꼬리 미(尾)'는 대개 그렇듯 부모의 바람에 그쳐버린 것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꼬리 하나! 부끄럽고 당황스럽고 인정하기 싫은 나의 모습! 미쳐 깨닫지 못했던 내면의 자아를 처음 인식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구미호에게 꼬리를 떼어낼 수 없듯 거부하던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주인공은 겨우 11살이 아닌가...)

그러나 다행히 곁에는 친구들이 있다. 비슷한 시기를 겪으며 고민하고 방황하는 동지들. 서로 다르기에 충돌하지만, 비슷한 처지이기에 위로와 격려를 나누며 서로에게 멈추지 않은 성장의 동력이 되어준다. 친구의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도 되니까...

미스터리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의 학교 축제, 한 팀이 되어 함께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고 인정받지 못하는 미션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단미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다채롭고 현실적이다. 따라서 비슷한 시기를 겪는 독자라면 인물 각각의 내면 갈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구미호, 어둑서니(옛이야기 속에서 불안, 부정, 겁 등을 먹고 자라나는 것), 미스터리, 비밀은 아이들이 반색하는 재료다. 이에 우정과 갈등, 자아 정체성을 더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가는 다음 이야기에 어떤 재료를 넣을까 궁금해진다.

***위 책은 창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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