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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소녀 주주 - 낯선 나라에서 마주한 차가운 시선과 따뜻한 우정 ㅣ 한울림 지구별 동화
치으뎀 세제르 지음, 오승민 그림, 이난아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1년 12월
평점 :
#난민소녀주주 는 삽화를 포함해도 겨우 100페이지 남짓되는 분량의 동화다. 일기 형식의 짧은 스무개 챕터를 읽는 내내 마음이 욱씬거렸다. 하아...하아아......
아마 누군가는 무겁고, 비참하고, 고민해도 해결 할 수 없는, 생각할수록 머리 아픈 이야기는 읽고싶지 않다고 외면할 수도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영미권도 아닌 터키 작가의 시리아 난민 어린이가 주인공인 동화라니...
세상이 너무 엉망이라, 없는 시간을 쪼개어 집중해서 읽는 책만큼은 즐겁고 행복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현실을 산다.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는데 책은 즐겁고 아름답기만 하다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 괴리감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당장 대선이 코앞인데 혜성처럼 나타날 누군가를 기대하는 현실에서 어둡고 아픈 작품만 가치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며, 혼자는 살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마땅한 일이다. 나는 과연 그 마땅한 일을 실행하는 사람일까 자문해본다.
#안네의일기 가 떠올랐다.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온가족이 숨어 지내던 날들의 기록이라면, #난민소녀주주 는 시리아 내전으로 피난 온 터키라는 이국에서 터전을 잡기까지의 기록이다. 열세살과 열두살의 두 소녀는 어른들의 비이성적이고 극악무도한 사건을 어린이의 솔직한 시선과 감정으로 담담히 기록을 남겼다. 안네는 발걸음 소리, 숨소리도 들키면 안되는 비밀 공간에서 펜으로, 주주는 방 하나와 부엌 하나가 있는 아파트 단지 지하실에서 녹음기로...
너무나 안정적이고 평화롭던 삶이 전쟁으로 한 순간에 사라졌다. 살기위해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더럽다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 상황에 당신이라면 얼마나 깨끗할 수 있느냐고 윽박을 지르고 싶었다. 옆집에 살던 단짝 친구, 그 집에 잠시 들렀던 내 할머니가 폭탄이 떨어져 죽었다. 잡혀갈까 두려운 동생은 말을 하지않고 나는 잠들기가 무섭다. 학교에 가고싶지도 웃고싶지도 어른이 되고싶지도 않다. 전쟁은 정말로 모든 것을 앗아갔다.
글에서 밀려오는 슬픔과 좌절, 격분과 아우성에 힘들어질 즈음, #오승민 작가의 탁월한 삽화가 수위를 조절해준다. 오승민 작가 특유의 파랑과 노랑이 슬픈 가운데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전쟁터를 바라보며 서 있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더럽다고 거부하는 아주머니의 손에서, 도망칠 수도 앞으로 갈 수도 없는 거대한 두려움 앞에서, 주주는 언제나 노란색 히잡을 쓰고 있다.
주주가 애타게 찾던 친구는 다행히 이스탄불에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하며 지내게 되었다. 주주도 이웃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가고 친구에게 편지를 전해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주주의 동생이 다시 말문을 연 것도, 아빠가 가족을 지키고 엄마에게 재봉틀을 선물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따뜻한 이웃들의 도움이었다. 돈을 위해 온전한 것을 파괴하는 어른들, 어렵지만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 돈보다 값진 것을 나누는 어른들, 나는 감사의 뜻으로 후자에게 노란색 히잡을 건네고 싶다.
터키에서 태어난 주주의 동생 이름은 다행히도, 당연하게도 '나라없는 아이' 라는 뜻의 '베와르' 가 아니라 '바르시'이다. 터키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주주가 터키에서 노란 쉐르반을 '남자보다 더 잘' 타며 신나게 자유를 만끽하기를 기도한다. 그녀의 엄마가 자주 파란 드레스를 입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를 기도한다. 주주가 맑고 커다란 눈빛으로 세상을 당당하게 마주하길 기도한다.
*** 위 도서는 한울림어린이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