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당신과 잘 지내고 싶어요 - 더 나은 관계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특급 심리 코칭
윤서진 지음 / 문예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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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이 책을 보내준다며 제목을 이야기하는데 제목에 끌리더라고요. <그럼에도, 당신과 잘 지내고 싶어요>라니... 쉽지 않은 관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잘 지내고 싶다는 그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나요? 부제는 '더 나은 관계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특급 심리 코칭'입니다. 일보다 힘든 인간관계, 어떤 솔루션을 어떤 식으로 제공할지 궁금하지 않나요?


 우선 책을 쓰신 윤서진 님은 서울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국제코칭연맹의 전문 코치와 미국 갤럽 인증 강점 코치 자격을 취득해 직장인의 심리, 인간관계 및 자기 관리, 대학생과 청소년의 강점 및 커리어 계발 등을 주제로 2,500시간 이상 코칭 및 강의를 진행하셨다고 해요.


 목차를 보면 인간관계의 다양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구성이 소설책을 읽듯 읽을 수 있는 '사례'와 나의 상태를 확인하는 '셀프 체크', 그리고 구체적인 '관계 코칭 원 포인트 레슨'으로 되어있어서 수월하게 읽히고 나의 상태에 따른 실질적인 팁들을 얻을 수 있답니다. 


읽으면서 마음에 들어왔던 글 나눠요.


(직장에서도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요? 중에서)

직장 내에서 자신이 누구와 특별히 친하다고 티를 내는 사람은 하수입니다. P.27


 

(어른은 친구를 어떻게 사귀나요?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에게 갖는 호감도를 과소평가했다고 합니다. (중략) 그러니 겁먹지 말고 상대도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장착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봅시다. P.108



(꼴 보기 싫은 동료랑 계속 일하려면 어떡하죠? 중에서)


내가 트러블 메이커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은 던져버리고, 그들에게 반응하는 내 마음만 통제하세요. (중략) 호기롭게 시작한 '트러블 메이커 갱생 프로젝트'는 시간이 흘러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되네'라는 새드 엔딩으로 끝나며 당신의 마음속에 좌절과 깊은 '빡침'만 남길 거예요. P.122-123



(나와 비슷한 사람 VS. 다른 사람, 누가 더 잘 어울리나요? 중에서)


결국 서로 얼마나 같고 다른지 찾기보다 중간 합의점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오래 행복한 것 같아. P.141



(이별은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걸까요? 중에서)


이별 매너를 갖추는 것은 상대를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정리하는 용기를 냈을 때, 내가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지요. P.207


연애는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내 안의 진짜 나를 마주하고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별은 우리에게 잠시 홀로 나 자신을 점검하는 계기를 선사하기도 하지요. P.213



(젊은 꼰대가 될까 봐 아무 말도 못하겠어요! 중에서)


조언이나 충고의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뒤이어 '내 말대로 해'라는 기대와 강요가 더해지는 것이지요. 그런 말을 하는 순간, 당신은 젊은 꼰대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P.236


젊은 꼰대들은 상대가 요청한 적도 없는데 "그건 네가 몰라서 그래" 하는 식으로 '판단'을 남발합니다. 또 아낌없는 '비난'을 선물하며, 멋진 '충고'로 마무리하지요. P.237



(사랑하면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중에서)


상대와의 관계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가 높으면 이러한 기대는 우리의 장기적인 행복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적개심과 경멸을 조장합니다. P.273



(이런 말이 '가스라이팅'이라고요? 중에서)


관계는 상호작용으로 한 사람만 늘 잘못하는 경우는 없어요. 따라서 스스로의 행동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자기 검열이 아니라 상호 점검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P.315



<읽고 느낀점>  


여러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상황에 맞게 언급되어 있고, 읽으면서 상황에 따라 지인들이 줄줄이 떠올랐던 점도 이 책이 얼마나 생활밀착형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공감이 어렵다는 제 딸이 생각나 그 부분을 전하기도 하고, 전화받는 것이 무섭다는 회사 동생도 떠오르고, 을의 연애,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후배의 친구도 떠올랐어요. 물론 제게 해당되는 부분도 있었고요. 특히 연애를 하고 있는 사회 초년생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좋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에필로그에서 이야기하듯 '나'와 잘 지내는 법이 책의 곳곳에 스며있답니다.


'나'와 '너', '우리'가 함께 잘 지내는 법이 궁금하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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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을 갖고 새로운 뇌가 생겼습니다 - 주체적인 삶을 위한 엄마의 돈 공부
구혜은 지음 / 타커스(끌레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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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 없이 살아보기.. 아 그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미소작가님의 토글스가 있고 그전으로 올라가면 유라작가님의 가계부다이어트가 있고 그전으로 올라가면 타이거님의 머니리씽크가 있나? 아 또 그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푸름이닷컴이 있다고 할 수 있겠구나.. 이런 인연의 고리 중 한 고리에서 만나 한 번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버린 혜은 님의 첫 책이다.(드디어 내일 만난다. 드.디.어. ㅎㅎㅎ)

지난 몇 년간 알아온 그녀는 솔직한 사람이다. 나누는 이야기에 진심을 담을 줄 아는 사람이고, 눈이 맑고 가슴이 따뜻한, 아이처럼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이 책을 쓰고, 또 길고 긴 시간 동안 원고를 다듬으며, 때론 두려워하고 망설이는 모습까지 모두 함께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의 책을 만났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책에 대한 감상은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오늘은 창립기념일 휴무였고 나는 오전 시간을 온전히 그녀의 책을 음미하기 위해 산더미 같은 집안일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도망가자~~~)

그녀가 살짝살짝 브런치와 블로그를 통해 보여줬던 이 책의 몇몇 꼭지들을 읽으며 나에게도 필요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 직감은 맞았다.

나는 내후년이면 반백이 되는 나이가 부끄럽게 돈에 대해 무감하다. 그저 회사를 다니며 그 월급 안에서 조금은 모으고 쓸 만큼 쓰면서 예산은 짜지 않고 모이는 돈에 목적도 없이 여기저기 처박아 놓고는, 매일의 지출을 기록하는 의미 없는 가계부를 쓴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을 뿐이니... 어떻게 부동산 투자와 재건축으로 재산을 착실히 쌓아가는 엄마를 옆에 두고도 이렇게 관심이 없는지... 아니라고 하면서 은연중에 그런 엄마를 너무 의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일찍 만나면 만날수록 빛을 볼 책이다. 사회 초년생들, 신혼부부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뭐 이미 스스로 자기 돈의 주인으로 잘 살고 있다면 권하지 않겠다.

언니가 동생에게 이야기하듯(물론 진짜 내 가족이 한다면 잔소리가 되겠지만..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하다) 차분하지만 따끔한, 따끔하지만 따뜻한 조언들이 들어있다. 실질적 팁들도 당연히 들어있다. 물론 자세한 건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한다.(읽어보면 공부하고 싶어질 거다. 나처럼 ㅎㅎ)


내가 몰랐던 그녀의 상처를 볼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내가 아는 그녀의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볼 때는 반가웠다. 그리고 나보다 담대하게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가 존경스러워졌다.

이 책을 써준 그녀가 고맙다. 나도 내 돈의 주인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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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환상 - 의학자가 걷고, 맡고, 기록한 세상의 냄새들
한태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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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여러 곳을 여행하며 많은 사진과 기록이 남았지만 가장 생생한 것은 여행지의 독특한 냄새와, 그 냄새에 얽힌 감성적 기억이었다. 지구촌 곳곳의 삶이 고유의 냄새들을 만들어 가는 풍경, 그리고 그 냄새들이 그 지역을 특징지어 가는 과정을 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냄새와 후각이 선사하는 그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적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 <후각과 환상> 에필로그 중에서


감각적인 책표지와 <후각과 환상>이라는 제목에 끌려 읽을 책들이 많은 와중에도 성장판 독서모임의 서평단을 신청했어요. 책을 받아보고 뒷부분 책날개에 적힌 에필로그 일부를 읽어보니 아름다운 사진과 여행지의 냄새에 대한 이야기가 왠지 추억을 소환해 줄 것만 같았어요. 코로나19로 해외여행뿐만 아니라 국내여행도 그리 마음이 편하지 못한 지금 대리만족으로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이 책의 저자 한태희 님은 역사 공부와 답사 여행을 좋아하는 의학자이자 작가로 현재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미생물학과 의학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해요.


목차는 향의 기원(중동&북아프리카), 향의 진화(유럽), 향과 나(아시아) 이렇게 나눠져 있어요. 지역을 나눈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곳을 여행했을 때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답니다.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호텔 근처의 전통 향수가게를 찾았다. 몇 대째 가게를 잇고 있다는, 나이 지긋한 주인이 차를 가져오며 이야기를 꺼낸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가? 무슨 걱정이 있는가? 건강은 어떤지? 대화는 20~30분간 이어졌고, 주인은 자신이 지닌 향 원료로 우리에게 맞는 향 조합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다른 한편에선 유리 장인이 향로를 만들며 그 위에 우리 이름을 새겨 넣는다. 벽 선반을 가득 채운 온갖 향료 병을 보며 이집트의 긴 역사를 생각한다. 고대 이집트 왕국 이후 페르시아의 지배와 알렉산더의 침략이 있었고, 로마 제국의 지배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아랍 이슬람 왕조들이 이어졌다. 그 다양한 문화의 흔적이 저 향료들 속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향의 잔치 속에서 주인과의 대화를 되새긴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가.......' 아득해질 때쯤 주인이 조합 향 다섯 개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의 이름은 '사막의 오아시스'. 건조하고 향긋한 냄새다. '오아시스'와 또 다르 향 조합 하나를 골랐다. 이들 향 조합에 알코올 등 적절한 첨가제를 섞으면 나만을 위한 향수가 완성되는 것이다

p.25, 후각과 환상, 한태희


와~ 이렇게 정성이 들어간 향수는 얼마나 특별할까요? 가보고 싶어집니다.

산책길에 만난 나비


메디나라 불리는 구시가지에는 이슬람 사원과 학교, 찻집, 전통 시장과 가게들이 몰려 있다. 중세 이후 시간이 멈춘듯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다. 구시가지의 한 전통 가옥을 숙소로 잡았다. 골목 깊숙이 자리한, 그 속을 짐작할 수 없는 건물 앞에 섰다. 입구로 들어서자 타일로 장식된 정원과 분수가 아름답고 한가롭다. 이튿날엔 이 분수 옆 테이블에서 아침을 먹었다. 바게트와 홍차, 과일 잼이 놓인 청화 접시와 컵이 고아했다.

p.49, 후각과 환상, 한태희


분수 옆 테이블에 앉아 고아한 접시와 컵에 바게트와 홍차, 과일 잼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저를 상상해 봅니다.

* 고아하다: 예스럽고 아담하다.(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분수 옆은 아니지만 회사 근처 카페에서


점심 식사를 위해 근처 전통 식당을 찾았다. 아랍 양식으로 지어진 식당의 정원 한가운데에 장미 꽃잎을 띄운 분수대가 있다. 장미는 모두가 인정하는 꽃의 여왕이다. 그 매력적 향기는 모든 시대, 모든 곳에서 사랑받았다. 장미를 각별히 좋아했던 페르시아인들은 그 꽃잎에서 장미수와 오일을 추출하여 향수를 만들고 음식과 음료에 사용했으며, 귀한 손님에게 장미수를 뿌리며 환대했다. 고대 로마인 또한 장미를 광적으로 사랑했다. 귀족들이 잔치가 열린 정원에는 장미수가 흘러나오는 분수가 있었고 사람들은 장미 화관을 쓰고 장미수가 들어간 와인을 마셨다. 기독교에서 장미에 얽힌 향락은 경계되었지만 그 성스러운 모습은 숭배되었고, 기독교 초기의 묵주는 말린 장미로 만들어졌다. 이후 아랍 과학자들은 장미 증류 기술을 더욱 발전시켰고, 장미수와 오일은 중동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향수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이슬람 사원 건축에 사용된 회반죽에도 장미수를 섞었는데, 뜨거운 오후 달궈진 벽에서 장미향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아시아가 원산지인 장미는 전 세계에서 재배되어 왔고 최소 1만 가지 이상의 종류가 알려져 있다. 특히 '다마스크 장미'는 중세 십자군이 다마스쿠스로부터 서유럽에 들여와 그 이름이 생겼다. 사향같이 그윽하고 진한 향기가 특징이며, 지금도 향수에 들어가는 장미 오일은 대부분 다마스크 장미에서 추출된다. 불가리아와 터키가 최대 생산지다.

퍼지는 장미 향 속 가벼운 흥분을 느낀다. 활짝 핀 꽃은 식물들의 생식기관이다. 화려한 색깔과 향기로 벌과 나비를 유혹해 수정을 하고, 향기 속 일부 성분들은 해로운 곤충이나 미생물을 억제하기도 한다. 작가 다이앤 애커먼은 장미를 비롯한 꽃의 향기가 "나는 생식 능력이 있고, 준비되어 있고, 가져볼 만하고, 나의 생식기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곤충을 향한 장미의 유혹은 인간에게도 통하는 걸까?

p.52~53, 후각과 환상, 한태희


건축에도 장미수가 쓰여 뜨거운 오후엔 달궈진 벽에서 장미향이 났다고 하니 흥미로워요. 맡아보고 싶네요.

올여름 수목원에서


중세 말기에 이르자 유럽 대도시의 인구는 급증하기 시작한다. 공공 위생이나 하수 시설이 변변치 않았던 탓에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들은 악취로 휩싸여 갔다. 이때까지도 개인의 청결이나 목욕을 동양의 이단적이고 퇴폐적인 문화로 여겼던 유럽에서는 청결하지 않은 몸의 강한 체취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당시 귀족들은 이미 다양한 향수들을 사용했지만 개인의 체취를 가린다기보다 오히려 강조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이를테면 사향같이 냄새가 강한 동물성 향으로 유혹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식이었다.

나폴레옹의 황후였던 조세핀은 사향이나 사향고양이향, 용연향을 즐겨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체취를 사랑한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 쓴 편지에서 "곧 만날 때까지 2주일간 목욕을 하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p.68~69, 후각과 환상, 한태희

동양의 목욕 문화를 이단적이고 퇴폐적이라고 생각했다니... 이것처럼 예전과 달라진 생각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변함없이 옳은 것일까? 점검해 봐야 하지 않을는지요.

유독 청결해 보였던 회사 근처 새로 오픈한 카페


광장 맞은편으로 알카사르의 육중한 성벽이 보인다. 가톨릭 왕조 시절 아랍 궁전이 있던 자리에 이슬람과 유럽 양식의 절충인 무데하르 양식으로 건설된 궁전과 정원이다. 무려 500년에 걸쳐 건설되는 동안 많은 건축 양식이 더해졌는데 궁전과 정원 곳곳은 화려한 아랍식 타일로 장식되어있다. 야자나무 아래 오렌지 나무와 꽃향기가 흐드러지고, 아름다운 정자가 놓여 있는 정원의 모습은 그저 평화롭다. 사막이 고향인 아랍인들은 물이 흐르고 나무와 꽃이 자라는 정원을 낙원의 모습으로 여겼는데, 여기가 바로 그 낙원이다. 타일로 장식된 벤치에 앉아 있는 동안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공작새 한 마리가 정원 사이를 우아하게 걷는다.

p.85, 후각과 환상, 한태희


가보고 싶은 곳이 하나하나 늘어나네요. 스페인 세비아에 있는 알카사르 공식 홈피에 들어갔다가 인스타까지... 정말 공작새 사진이 똿! 너무 아름다운 건물이에요.



오늘날 스페인이 세계 최대 생산국인 올리브 나무는 본래 지중해 연안에서 7000년 전부터 재배됐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아테네 지역 플라톤 학당이 있던 자리의 올리브 나무는 수령이 2400년인 것으로 밝혀졌으나,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그 제자들이 이 올리브 나무 주변을 산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p.87~88, 후각과 환상, 한태희


2400년을 죽지 않고 살아있는 나무가 있다니요. 그 나무는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지켜봤겠네요.


궁전을 나와 헤네랄리페 궁에 들어선다. 물소리와 새소리가 영롱한 정원이 펼쳐지고, 오렌지 나무 그늘 아래 장미와 머틀 꽃의 향기가 화사하게 퍼진다. 아랍인들은 궁전 전역의 정원과 분수를 흐르는 수로망을 설계하기 위해 시에라 네바다 계곡의 물을 끌어왔다. 그러나 1492년, 나스르 왕조는 이토록 아름다운 궁전을 건설해놓고는 가톨릭 연합군에 최종 항복하며 북아프리카로 돌아가게 된다. 마지막 왕 보압딜은 "영토를 빼앗기는 것보다 이 궁전을 떠나는 게 더 슬프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훗날 이곳을 방문했던 19세기 기타 연주자 타레가는 황폐해가는 궁전의 그 처연한 아름다움에 감동했고, 그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남겼다. 이 기타 곡의 섬세한 트레몰로 선율에는 애절한 아름다움과 함께 나스르 왕의 회한이 배어 있다

p.90~91, 후각과 환상, 한태희


궁전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네요. 현빈이 주연으로 나왔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드라마도 생각나고 그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흘렀던 기타 선율도 생각나네요.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는 1592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설립한 유서 깊은 대학이다. (중략)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캠퍼스는 울창한 숲속 고풍스러운 건물과 동상들이 늘어서 있어 중세 시대를 연상시킨다. (중략) 낡은 책 사이로 종이와 먼지 냄새가 스며 나온다. 목재의 향 속에서 잉크 냄새도 살짝 느껴진다. 오랜 시간과 생각들이 쌓여 있는 이 나지막하고 그윽한 향.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향으로 위로와 영감을 받았던가?

p.93~94, 후각과 환상, 한태희


책 냄새가 주는 편안함은 아마도 책이 나무향을 품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21세기 들어 새로운 정보혁명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사람들은 책 대신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쉽게 얻고 전자책을 읽는다. 종이책의 위상은 점점 축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런 종이 위에 펼쳐지는 활자들, 그 편안한 냄새, 책장 넘기는 소리, 때로는 작게 메모를 적으며 읽어가는 충만한 시간을 그 무엇이 대신할 수 있을까? 종이책은 여전히 읽는 자의 마음 깊숙한 곳에 각인돼 있다.

p.97, 후각과 환상, 한태희


저 같은 책 수집가에게는 마음에 쏙 드는 글이네요.


더블린만 북쪽 해안에는 호스라고 불리는 작은 반도가 있다. 더블린 시내에서 전철을 타면 40여 분 만에 이 반도의 초입에 자리한 작은 어촌에 도착한다. 기차역을 빠져나오면 작은 항구를 마주치는데, 하얀 돛을 올리고 항해를 준비하는 요트가 떠 있다. 해산물 식당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면 정원마다 꽃이 핀 아담한 마을에 닿는다. 꽃향기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골목 중간쯤 시인 예이츠가 한때 살았다는 집이 있다. 하얀 벽에 시인을 설명하는 동그란 현판이 걸려 있고, 함께 쓰여 있는 시구절에 마음 설렌다.

"나는 내 꿈을 당신 발 밑에 펼쳤습니다. 사뿐히 밟으세요, 당신 밟는 것 내 꿈이니."

p.102, 후각과 환상, 한태희


예이츠가 10대 후반에 이 지역에서 살았고 더블린 문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하니 갑자기 10대 후반인 저희 딸이 생각나네요. 비교는 고통의 시작이니 이쯤 해서 생각을 멈춥니다. ㅎㅎㅎ


맥주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음료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농경 문화가 시작되면서 저장된 곡식이 비에 젖어 발효된 것이 맥주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중략) 비슷한 시기 농경 문화가 발달한 이집트에서도 빵과 맥주가 만들어지고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은 임금을 맥주로 받았다고 한다(다행히 피라미드는 똑바로 세워졌다!).

p.106, 후각과 환상, 한태희


임금을 맥주로 주다니요. 이 노동자들은 그 맥주를 팔아서 필요한 것을 샀으려나요? 저도 맥주를 좋아하긴 하지만 월급을 맥주로 주는 건 좀...

맥주와 드라마, 책과 커피만큼 좋아하지요. 속리산 에일은 자연드림에서 살 수 있어요.


이 세상을 뒤덮은 온갖 냄새를 우리는 어떻게 구별하는 것일까? 인간은 1000개 정도의 후각수용체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약 300개 유전자의 기능이 알려져 있다. 콧속 후각 세포에서 발현된 후각수용체들은 냄새 물질을 인식해 뇌에 전달한다. 인간이 시각과 청각에 주로 의지하게 되면서 많은 후각 유전자들과 그 기능은 퇴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각은 생명체의 발달과정에서 가장 오래된 뇌 부위와 연결되어 있고 이 부위는 여전히 인간 능력의 신비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p.148, 후각과 환상, 한태희


멀리 거대한 은빛 덩어리가 꿈틀거린다. 바닷속 15m, 오후 햇살을 받아 번쩍이는 정어리 떼는 타원형에서 갑자기 기이한 형태로 그 모습을 바꾼다. 돌연 사라지더니 내 왼쪽에 다시 나타난다. 유령이 춤추듯 그 비현실적 모습에 나는 완전히 빨려들고 만다. 절벽에 붙은 산호가 맹렬히 빛을 뿜어내고 내가 뱉는 물방울 소리가 신비하게 울린다. 헐떡거리다 문득 낯선 냄새를 느낀다. 정어리 냄새? 하지만 내 코는 어깨에 멘 공기통에 연결돼 있으니 이는 후각적 연상이나 환상에 가깝다. (중략) 후각은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원시적이고 신비한 감각이다. (중략) 인간의 후각 중추는 대뇌 피질 아래 변연계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감정이나 기억, 성적 충동과 동기 부여를 관장하는 신경조직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중략)

"직관적 마음은 성스러운 선물이고, 합리적인 마음은 충실한 종이다. 우리는 종을 찬미하고 선물을 잊어버린 사회를 창조했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이다.

p.153~154, 후각과 환상, 한태희


과학자였던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니 직관의 중요성이 더 와닿는데요. 그렇다면 이렇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직관을 어떻게 더 깨어나게 할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합리적 마음의 의심 없이 직관을 따를 수 있을까요? 우린 언제 직관을 가장 많이 쓸까요? 후각 이야기에서 직관 이야기로... 궁금증이 뭉게뭉게 피어납니다.


눈에서 수집된 시각 정보들은 대뇌 피질에서 종합적으로 분석되고, 인접한 언어 중추를 통해 언어로 표현된다. 동시에 언어를 표현하는 문자는 시각으로 인식된다. 언어가 다양한 시각적 자극을 표현하며 발전하는 동안, 후각은 논리적 언어보다는 감정에 더 밀착되어 갔다. 우리는 냄새를 맡으며 복잡다단한 감정에 빠지지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려는 순간 어려움에 닥치곤 한다. 시각을 통해 입력되는 정보는 다른 정보를 희석시키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각 말고 다른 감각에 빠져들 때 눈을 감는다. 음악에 빠져들 때, 키스하거나 포옹할 때.

p.166, 후각과 환상, 한태희


우연히 스치는 향이 수십 년 전으로 저를 이끌어 추억에 빠지게 할 때가 있어요. 지금은 찾기 힘든 향수인데 아마도 그 비슷한 향이겠지요. 여러분에게도 이런 향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때론 눈을 감고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게 바로 명상일 수 있겠다 싶네요.

홍콩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억만장자가 많은 도시이며, 인구당 롤스로이스 보유는 세계 1위다. 개인 소득도 세계 최고 수준인 이곳은 빈부 격차 또한 매우 높다. 홍콩 섬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에는 초호화 저택들이 모여 있지만 구룡반도의 서민 지역에는 좁은 아파트에 여러 가족이 모여 사는 곳도 있다. 돈과 사람을 따라 동서양이 어우러진 음식과 유흥 문화도 발전했다. 길거리 음식부터 최고급 식당까지 홍콩의 미식 문화는 그 질과 다양성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최고다. 이런 홍콩의 모습을 왕가위 감독은 영화 <화양연화>(2000)에서 유려한 영상과 감각적 음악으로 그려냈다. 비가 쏟아지는 거리, 국숫집 창틀 너머 뽀얗게 피어오르는 연기, 거실에 모여 마작하는 사람들, 붉은 커튼이 날리는 호텔 복도와 치파오 차림의 여자가 걸어가는 뒷모습, 어두운 골목 벽 한편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남자의 쓸쓸한 옆얼굴. 영화는 1960년대 홍콩의 가장 내밀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정교하게 이어 붙인다. 제목인 '화양연화'는 '꽃같이 아름답던 시절'을 뜻하고, 영화의 마지막은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먼지 낀 창틀로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만약 용기를 내 그 창문을 깨트린다면 오래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p.188~189, 후각과 환상, 한태희


장만옥, 양조위가 주연을 했던 <화양연화>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 됐었나 보네요. 어스름한 기억 속에서도 감각적인 영상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은데 문득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두리안의 이 고약한 냄새는 깊은 열대 숲속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과일을 먹지 않는 육식동물도 두리안이 풍기는 초식동물의 내장 냄새에 이끌려 이 과일을 먹는데, 이때 배설물을 통해 두리안의 씨앗이 널리 파종된다. 우리에게 악취로 느껴졌던 두리안 냄새가 동식물에겐 생존 수단인 것이다. (중략) 결국 악취와 향기는 인간이 가른 개념일 뿐, 생태계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인간 또한 그 사슬로부터 무관치 않다.

p.223~224, 후각과 환상, 한태희


두리안의 악취 속에 이런 비밀이 숨어있었네요. 결국 악취와 향기는 인간이 가른 개념일 뿐이라는 것.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에 이런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역사, 영화, 문학 등을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게 되는 책이었고. 후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주는 책이었어요. 글도 어찌나 감각적으로 쓰시는지 사진이 없어도 글만으로 그 아름다운 풍광을 눈앞에 그려낼 수 있었던 부분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중간중간 배치된 사진들을 보는 즐거움 또한 큰, 여행지의 냄새를 그 모습과 함께 담아 내려 노력한 에세이입니다.

좋은 향을 맡을 때면 '아~ 사진으로 이 향까지 전해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할 때가 있는데요. 과학기술이 더 발전하면 이곳에서 제가 느끼는 냄새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게 될까요? 그런 날이 올까요? 


색다르고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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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했던 것들
에밀리 기핀 지음, 문세원 옮김 / 미래지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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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소설인데요.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성폭력, 인종차별, 계층 간 갈등을 다루고 있는 책이에요. 두께는 좀 되지만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금세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책 뒤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약간의 스포가 있으니 참고하고 읽어 주세요.

내슈빌 엘리트 사립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SNS 스캔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삶을 살기 위한 용기


어느 날 파티에서 취한 상태로 찍힌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그 이미지는 들불처럼 빠르게 퍼졌고, 윈저 커뮤니티는 양쪽으로 나뉘어 논란으로 떠들썩해진다. 피해자인 16살 소녀, 그녀의 초라하고 자기방어적인 홀아비 아빠, 그리고 부와 특권을 가졌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의 엄마. 거짓말과 스캔들의 중심에 서게 된 셋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의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문을 갖게 되고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묻기 시작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최근 읽고 있는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님의 <식물의 책>의 한 부분이 생각났어요. 


제가 소나무 세밀화를 그리는 동안 느꼈던 점은 늘 우리 가까이 있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오히려 놓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희귀 식물이나 멸종 위기 식물보다 오히려 근처 앞산의 소나무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을 수도 있어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도 늘 검토하고 되돌아봐야 하고요. 어쩌면 이건 연구에서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필요한 자세일 거예요.

늘 우리 가까이에 있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에 대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일이 있지 않나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요. 이 소설 속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요. 천사 같던 아들의 예상치 못했던 행동에 순간 엄마의 마음속 무언가가 뚝하고 부러졌다고 표현해요. 그 사건을 대하는 남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고요. 하지만 아들과 다른 부분은 남편의 변화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지만 묻어두고 있었던 거지요. 다시 생각한다고 하니 얼마 전 읽었던 애덤 그랜트의 <싱크 어게인>도 생각나네요. 


초반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가해자 남자아이의 부모가 아이에게 사진에 대해 어떻게 된 것인지 물을 때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 여자아이도 자기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부분과 남자아이의 아빠는 그저 자기 자식이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하는 모습이었어요. 이 상황에서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는 건 엄마뿐이더라고요. 어쩜 이렇게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할 수 있는지... 


그리고 라일라(피해자)가 어릴 때 아빠랑 엄마가 싸우고 엄마가 집을 나가게 되는데 아빠가 생각하는 부분에서 묘한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딴 사람도 아니고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니, 이건 뭐가 잘못된 거였다. 짐 싸서 나가는 것은 아빠들 몫이었다. 새로 가정을 꾸리건 혼자 지내건 말이다. 원래 엄마들이란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는 존재들 아니던가.

왜 엄마는 자리를 지키는 존재들이어야 하는지.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화가 올라왔어요. 타인의 헌신을 당연시 여기지 말고 감사할 줄 알기를...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성을 갖기를... 마음에 새겨봅니다.


이 책의 제목인 <우리가 원했던 것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이 책을 옮긴 문세원 번역가는 책의 끝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네요.


정의, 치유, 회복, 화해, 용서. 이 책이 담은 가치들이다. 진부하게 들리는가? 어쩌면 우리는 이것들이 진부해서가 아니라 부담스러워서 모른 척하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 가치들은 힘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추구하는 가치들과는 달라서다. 그렇다고 이러한 가치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앞으로도 누군가에 의해서 계속해서 지켜질 가치들이다. 돈과 권력보다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고 수호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짜로 힘이 있는 '가진 자'다. 타협과 증오와 원망과 응징은 겁쟁이들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반갑다. 이런 가치를 지켜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성공과 부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외치는 세상 속에서 정신없이 달라고 있는 우리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그런 가치들이 아니었을까.

니나와 라일라, 그리고 톰이 보여주는 용기 있는 모습은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상처 입고 약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나아가는 것이니... 그리고 두려움을 아는 것은 경험했던 상처들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아팠던 경험들 때문에 타인의 고통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 누군가를 돕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것, 바로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한 거죠.


<비폭력 대화>의 한 부분과도 이어져 옮겨봅니다.


앨리스 워커는 <컬러 퍼플>에서 이것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어느 날 나는 엄마 없는 아이처럼 느끼면서, (실제로 나는 엄마가 없었다), 조용히 앉아 있는데, 그때 내가 전혀 따로가 아니라 모든 것의 한 부분이라는 느낌이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알았다. 내가 나무를 자르면 내 팔에서 피가 흐르리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나는 과연 그녀들처럼 용감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어요. 더불어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요.


* 출판사 미래지향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ps. 이 책을 읽으면서 <82년생 김지영>과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스토리나 스타일은 다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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