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했던 것들
에밀리 기핀 지음, 문세원 옮김 / 미래지향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미국 소설인데요.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성폭력, 인종차별, 계층 간 갈등을 다루고 있는 책이에요. 두께는 좀 되지만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금세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책 뒤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약간의 스포가 있으니 참고하고 읽어 주세요.

내슈빌 엘리트 사립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SNS 스캔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삶을 살기 위한 용기


어느 날 파티에서 취한 상태로 찍힌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그 이미지는 들불처럼 빠르게 퍼졌고, 윈저 커뮤니티는 양쪽으로 나뉘어 논란으로 떠들썩해진다. 피해자인 16살 소녀, 그녀의 초라하고 자기방어적인 홀아비 아빠, 그리고 부와 특권을 가졌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의 엄마. 거짓말과 스캔들의 중심에 서게 된 셋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의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문을 갖게 되고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묻기 시작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최근 읽고 있는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님의 <식물의 책>의 한 부분이 생각났어요. 


제가 소나무 세밀화를 그리는 동안 느꼈던 점은 늘 우리 가까이 있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오히려 놓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희귀 식물이나 멸종 위기 식물보다 오히려 근처 앞산의 소나무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을 수도 있어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도 늘 검토하고 되돌아봐야 하고요. 어쩌면 이건 연구에서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필요한 자세일 거예요.

늘 우리 가까이에 있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에 대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일이 있지 않나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요. 이 소설 속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요. 천사 같던 아들의 예상치 못했던 행동에 순간 엄마의 마음속 무언가가 뚝하고 부러졌다고 표현해요. 그 사건을 대하는 남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고요. 하지만 아들과 다른 부분은 남편의 변화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지만 묻어두고 있었던 거지요. 다시 생각한다고 하니 얼마 전 읽었던 애덤 그랜트의 <싱크 어게인>도 생각나네요. 


초반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가해자 남자아이의 부모가 아이에게 사진에 대해 어떻게 된 것인지 물을 때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 여자아이도 자기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부분과 남자아이의 아빠는 그저 자기 자식이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하는 모습이었어요. 이 상황에서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는 건 엄마뿐이더라고요. 어쩜 이렇게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할 수 있는지... 


그리고 라일라(피해자)가 어릴 때 아빠랑 엄마가 싸우고 엄마가 집을 나가게 되는데 아빠가 생각하는 부분에서 묘한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딴 사람도 아니고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니, 이건 뭐가 잘못된 거였다. 짐 싸서 나가는 것은 아빠들 몫이었다. 새로 가정을 꾸리건 혼자 지내건 말이다. 원래 엄마들이란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는 존재들 아니던가.

왜 엄마는 자리를 지키는 존재들이어야 하는지.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화가 올라왔어요. 타인의 헌신을 당연시 여기지 말고 감사할 줄 알기를...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성을 갖기를... 마음에 새겨봅니다.


이 책의 제목인 <우리가 원했던 것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이 책을 옮긴 문세원 번역가는 책의 끝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네요.


정의, 치유, 회복, 화해, 용서. 이 책이 담은 가치들이다. 진부하게 들리는가? 어쩌면 우리는 이것들이 진부해서가 아니라 부담스러워서 모른 척하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 가치들은 힘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추구하는 가치들과는 달라서다. 그렇다고 이러한 가치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앞으로도 누군가에 의해서 계속해서 지켜질 가치들이다. 돈과 권력보다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고 수호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짜로 힘이 있는 '가진 자'다. 타협과 증오와 원망과 응징은 겁쟁이들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반갑다. 이런 가치를 지켜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성공과 부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외치는 세상 속에서 정신없이 달라고 있는 우리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그런 가치들이 아니었을까.

니나와 라일라, 그리고 톰이 보여주는 용기 있는 모습은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상처 입고 약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나아가는 것이니... 그리고 두려움을 아는 것은 경험했던 상처들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아팠던 경험들 때문에 타인의 고통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 누군가를 돕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것, 바로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한 거죠.


<비폭력 대화>의 한 부분과도 이어져 옮겨봅니다.


앨리스 워커는 <컬러 퍼플>에서 이것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어느 날 나는 엄마 없는 아이처럼 느끼면서, (실제로 나는 엄마가 없었다), 조용히 앉아 있는데, 그때 내가 전혀 따로가 아니라 모든 것의 한 부분이라는 느낌이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알았다. 내가 나무를 자르면 내 팔에서 피가 흐르리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나는 과연 그녀들처럼 용감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어요. 더불어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요.


* 출판사 미래지향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ps. 이 책을 읽으면서 <82년생 김지영>과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스토리나 스타일은 다르지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