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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먹는 일기장 ㅣ 사계절 중학년문고 33
송미경 지음, 이희은 그림 / 사계절 / 2017년 8월
평점 :
제목도 표지의 그림도 참 재미있는 책이어서 보고 싶게 만든 <일기 먹는 일기장> 이다. 제목만 보고 일기 쓰기 싫어하는 초3 아들이 생각났다. 일주일에 한 번 일기 숙제가 있는데 어찌나 쓰기 싫어하는지~ㅜㅜ
그나마 일기 숙제라도 없었으면 일기의 '일'자도 안 쓰려고 할 녀석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무척 솔깃했다. 일기는 숙제용이 아니라는 걸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스토리가 무척 기대 되었다.
오~너무 재미있다. 나 보다 먼저 읽은 녀석은 "엄마, 이거 진짜 재미있어요" 라며 책을 펼치자 마자 꼼짝 않고 읽는다. 잘 시간이 되어 내일 읽으라고 하니까 읽은 곳 까지 표시하고는 다음 날 아침 눈 뜨자 마자 녀석은 이 책을 펼쳐들고 끝까지 읽고는 "엄마, 다 읽었어요~" 라며 뿌듯해 한다. 책을 재미있게 녀석을 보며 나도 참 뿌듯했다.
녀석이 재미있게 읽었기에 나도 기대감을 갖고 이 책을 펼쳤다. 그러고는 나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찐한 감동과 웃음, 재치 만점 스토리에 가슴 뭉클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책에 푹 빠져서 읽었다. 현실과 이상을 오가는 판타지한 스토리로 녀석과 같은 또래의 주인공들 이야기에 녀석도 나도 폭풍 공감했다.
특히 너무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서 아들녀석에게 읽어 주었더니 자기도 재미있게 읽었다며 내용을 줄줄이 말한다. 주인공 동진이가 급식 시간에 장난쳐서 선생님께 혼나고 반성문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데 그 내용이 기가막히다.
아름다우신 담임 선생님께. 다시는 급식 시간에 묘기를 펼치지 않겠습니다. 물론 친구들이 무척 서운해하겠지만요.
누구보다 아름다우신 담임 선생님께. 다시는 급식 시간에 특별 공연을 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친구들이 무척 섭섭해하겠지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신 담임 선생님께. 다시는 급식 시간에 재주를......
동진이의 반성문을 듣던 담임 선생님은 "그만!"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 뒤 동진이는 또 혼나야 했다. 동진이에게 푹 빠져 있던 나는 동진이의 반성문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나도 모르게 "푸~하하하~" 웃으며 녀석에게도 말한 것인데 녀석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었다는 생각에 또 한번 웃음이 났다.
말썽쟁이인줄만 알았던 동진이의 멋진 반성문 실력은 학부모로써, 어른으로써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책의 주인공지민이와 동진이는 무지개 아파트에 사는데 1동 부터 7동까지 무지개색 순으로 되어 있다. 1동은 방이 하나고 7동은 방이 일곱 개나 된다.
1동에 사는 지민이는 아빠가 암 투병 중이고 엄마는 작은 분식집을 운영한다. 장차 피아니스트가 꿈인 지민이는 가난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도 받은 적이 없지만, 부모와 한 방에서 자고 아빠가 물려준 낡은 피아노가 있어서 행복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지민이 일기장이 일기를 먹어서 매일 선생님께 혼나서 고민이다. 지민이는 분명 일기를 썼는데 다음 날 사라지는 것이다.
7동에 사는 동진이는 부유하지만, 크리스마스 때 원하는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동진이는 축구공을 갖고 싶은데 엄마는 집중력 향상이나 지능 계발에 관련 된 것들만 사준다.
그러던 어느 날, 지민이와 동진이는 지구 반대편 마을로부터 음악 잔치에 초대장을 받는다. 지구 반대편 마을은 어디이고, 왜 하필 지민이와 동진이에게 초대장을 보냈을까? 초대장에 써 있는 참가 자격과 방식이 재미있다.
참가 자격
1.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받고 싶은 선물을 받은 어린이는 참가 불가
2. 한 번도 물건을 잃어버린 적 없는 어린이는 참가 불가
3. 천재, 완벽한 우등생, 박사 학위 가진 어린이 모두 참가 불가
방식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곡을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면 됨.
특히 엉터리 연주곡일 경우 더 높은 점수를 줌.
대상 수상자 상품
무엇이든 가장 갖고 싶은 선물 한 가지
지민이는 암 투병으로 시골로 떠난 아빠와 함께 살고 싶고,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중고로 팔아버린 아빠가 물려준 피아노가 갖고 싶다. 동진이는 축구화와 축구공이 갖고 싶다.
그래서 둘은 약속된 시간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드디어 지구 반대편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 안내원은 "어린이 여러분! 이곳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에게 잃어버린 것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라며 '어린이 비밀 은행'으로 안내 한다. 그곳에는 지민이의 잃어버린 일기와 낡은 피아노의 잃어버린 '라'와 '솔' 소리도 있었고, 동진이의 잃어버린 공들도 있다.
'어린이 비밀 은행'은 간절한 소원을 보관하는 곳이었고, 이 방의 것들은 언젠가 지민이가 이루게 될 꿈들을 미리 보여 주기 때문에 지민이의 피아노에 대해 쓴 일기만 보관한다고 했다. 그리고 안내원인 이렇게 말한다.
"네가 진실한 마음으로 적어 놓은 것들은 언젠가 현실이 된단다." 라고...
이 책에 결말은 열린 결말이다. 지민이와 동진이가 음악 잔치에서 1등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둘은 일등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처음으로 생각했고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해냈다며 행복한 표정의 그림으로 끝난다. 아마도 1등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니 일등을 했으면 좋겠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고, 아빠가 물려준 낡은 피아노를 다시 찾고 싶고, 아빠와 엄마 가족이 함께 살고 싶은 지민이의 꿈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지민이의 진실한 마음을 일기에 적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현실이 될거라고 응원하고 싶은 결말이다.
등장인물들의 뚜렷한 개성만 보아도 저자의 글 쓴 의도를 잘 알 수 있다. 주인공 지민이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주위에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지민이 친구 동진이는 부유한 집이지만 원하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동진이네 아랫집 지팡이 할멈은 동진이가 코딱지 파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몹시 신경질 적이다. 반면 샘 선생님은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동진이의 말을 잘 들어 준다.
지민이가 사는 무지개 아파트 기린 상가는 예전에는 무척 장사가 잘 되었지만 근거리에 새로운 건물들이 생기면서 기린 상가의 손님들 발길이 뜸하다.
이런 경제적 배경이나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작가가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진심으로 공감하게 되고, 희망을 갖고 싶게 만든다. 이렇게 이 책은 일기의 소중함을 말하기 보다는 꿈을 가지고 싶거나 꿈을 이룰 용기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따뜻한 희망을 주는 책이다. '부'의 척도에 따라 아이들을 대하고, 아이들의 소리에 귀를 닫은 어른들에게 반성의 시간을 주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주인공의 꿈과 동심에 응원의 박수를 마음껏 보냈다.
하지만 현실은 책 속과 달라서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 본연의 모습을 응원하고 인정해주고 싶지만, 아이의 행복을 위한답시고 녀석의 마음은 무시한 채 내 마음대로 녀석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데...나는 왜? 녀석을 믿지 못하고 남들 눈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지...참 마음이 아프다.
책을 덮고 나면 "네가 진실한 마음으로 적어 놓은 것들은 언젠가 현실이 된단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일기는 숙제이기 때문에 쓰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을 적으면서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열심히 살면서 미래를 꿈꾸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일기 먹는 일기장>을 읽은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꿈은 무엇인지, 어떤 것을 간절히 원하는지 등등 자신의 마음을 진실하게 일기에 쓸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