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씨의 직업
조반나 조볼리 기획, 마리아키아라 디 조르지오 그림 / 한솔수북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글자 없는 그림책 이다. 상상력이 부족하고 생각 많이 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글자 없는 그림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녀석도 날 닮았는지 글자 없는 그림책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한 번 쓱 흝어만 볼 뿐~

 

그래도, 이 책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마지막 반전 때문이었다. 한 껏 멋지게 차려 입고 집을 나서는 악어 씨의 일상은 우리네 사람들 일상과 똑같아 보였다.

그런데...

 

행복한 꿈을 꾸던 악어 씨는 아침을 알리는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나 커튼을 젖히고, 화장실에서 힘 쓰고, 이빨 닦는 모습은 우리 아침 일상과 비슷하다.

악어 씨가 넥타이를 고르고, 아침을 가볍게 먹은 후 중절모와 멋진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서는 모습은 큰 회사에 다니는 직원 처럼 보였다.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땡땡이 무늬의 옷을 입은 악어 씨의 오늘 패션에 무언가 중요한 만남이나 사업계획이 있는 듯 하다.

악어 씨는 꽤 여유 있게 걸어 간다. 어딘가 가는 도중에 치아관련 상점을 구경하다가 지나 가는 차가 물을 튀어서 악어 씨 옷이 젖어 화도 난다.

전철을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타고 지하로 내려간 악어 씨는 서커스단 포스터 앞에서 갑자기 기분이 굉장히 나쁜 표정이다.

"왜 일까? " 라고 아들에게 물으니 노답이다ㅜㅜ

악어 씨는 만원 지하철에 탔다.

예전에 전철을 타고 다닐 때가 기억이 나는 장면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 때문에 빈대떡이 되기도 했고, 악어 씨처럼 정거장을 지나쳐서 내릴 때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아들에게 했더니 이해를 잘 못한다.

지하철에서 나온 악어 씨는 꽃 한다발과 통닭? 햄버거? 를 사들고 어딘가를 향해 계속 걸어 간다.

거대한 철문을 들어 서니 창문으로 여인이 보인다. 악어 씨는 그 여인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젠틀하게 인사한다.

다음 장을 넘기니 우리 안의 원숭이들이 보인다. 여기는 어딜까?

악어 씨의 표정만 보아서는 알쏭달쏭 하다.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냥 그런 건지...

그리고 들어 선 곳은 샤워 시설이 있는 락커룸 같은 곳이다. 진짜 여기는 어딜까?

옷을 다 벗고 그가 있는 곳은 동물원 악어 우리 이다.

악어 우리와 사람들 사이의 유리막을 사이로 악어 씨가 사람을 보는 건지, 사람들이 악어 씨를 보는 건지 헷갈리는 마지막 장면은 대반전 이다.

 

근사하게 차려 입고, 신문을 한 손에 들고, 젠틀하게 출근하는 악어 씨의 모습과 출근한 곳이 동물원 악어 우리 였다는 반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악어 씨의 겉모습은 분명 엄청 멋진 직업을 갖고, 굉장히 있어 보이는 직업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 안에 갖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악어 씨의 모습은 씁쓸하다.

악어 씨는 자유를 갈망하는 동물원 동물들의 모습일 수도 있고, 럭셔리한 생활을 꿈꾸지만 현실은 팍팍한 인간의 모습일 수도 있고,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현대에 존재 가치가 없는 인간의 모습일 수도 있고 등등...

생명의 자유, 인간존엄 등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었다.

 

초3 아들녀석은 내 예상대로 그냥 훓어 보았다. 글자가 없으니 그림을 가볍게 보는 것이다. 솔직히 그림이 전하는 녀석만의 느낌을 듣고 싶었는데...ㅜㅜ

하지만, 모라도 좋다. 그림만 보아도 좋을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머리 아프게 굳이 생각하지 않고 그림만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면 녀석도 매번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천천히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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