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어린이 표
황선미 지음, 이형진 그림, 서울초등국어교과교육연구회 / 이마주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에게 이렇게 감정이입이 되기는 처음인 것 같다. 마치 내 아들이야기 같아서 주인공과 함께 억울해 하기도 했고, 주인공 엄마와 같은 심정으로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간절히 바랬던 점이 있다. 주인공과 같은 또래인 초3이 되는 아들녀석이 주인공의 담임샘과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기를~

 

3학년이 되는 주인공 건우 반의 담임샘은 특별한 규칙을 만들다. 담임샘은 절대로 매를 들지 않는 대신 노란색 '나쁜 어린이 표'를 준다. 물론 '착한 어린이 표'도 있다. 그리고, 나쁜 어린이 표는 착한 어린이 표로 감할 수 있다. '나쁜 어린이 표'는 준비물을 못 챙겨 왔을 때, 공부 시간에 떠들었을 때, 욕했을 대, 싸웠을 때, 숙제 안 해왔을 때, 복도에서 뛰었을 때 받게 된다.

그런데, 건우는 의도치 않게 자꾸 나쁜 어린이 표를 받게 된다. 잘하고 싶지만 매번 나쁜 어린이 표를 받게 된 건우는 억울하다. 잘못을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 판단하는 담임 샘이 밉고, 학교에 가기도 싫다.

 

"나는 여태껏 내가 나쁜 애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왜 자꾸 나쁜 어린이 표를 받는지 모르겠어요." 라는 건우의 생각에 너무도 공감이 된다. 건우는 착한 어린이 표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아이인데, 나쁜 어린이 표를 받게 되는 억울한 상황들이 전달되어 오히려 담임 샘이 미워서 건우를 응원하게 된다.

 

건우는 선생님이 공평하지 않았던 일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래서 수첩에 이렇게 썼다.

나쁜 선생님 표 하나! 고자질한 애한테도 나쁜 어린이 표를 줘야지요.

나쁜 선생님 표 둘! 싸움은 지연이가 먼저 시작했어요.

나쁜 선생님 표 셋! 저도 발표 좀 시켜 주세요.

나쁜 선생님 표 넷! 창기는 떠든게 아니라 수학 문제를 물었을 뿐이에요.

나쁜 선생님 표 다섯! 선생님은 친절하지 않아.

나쁜 선생님 표 여섯! 노란색은 싫어.

 

"만약, 이 수첩을 건우의 담임 샘이 본다면?" 생각만 해도 정말 사이다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꼭 들통나기를 바랬다. 하지만, 건우는 '이건 비밀이야. 들통나면 난 죽어!'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말에서는 나의 바램대로 이 수첩을 담임 샘이 보게 되고, 갈등을 푸는 열쇠가 되어 감동적인 결말을 보게 된다.

 

나쁜 행동에 대해 나쁜 어린이 표를 주던 담임 샘은 규칙을 바꾼다. 나쁜 어린이 표를 주어도 아이들의 행동이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자 아이들 동의도 없이 착한 어린이 표로 나쁜 어린이 표를 감하는 일은 없던 걸로 규칙을 바꾼다. 건우는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며 속으로 외친다. '엉터리! 이게 무슨 규칙이야!'

 

그리고, 건우는 수첩에 몰래 적는다.

나쁜 선생님 표 일곱! 규칙을 마구 바꾸면 안 돼요.

나쁜 선생님 표 여덟! 창기가 왜 늦었는지 물어봐야지요.

 

건우의 수첩 글을 보면서 '나쁜 선생님 표'에 폭풍 공감했다. 규칙을 잘 지키라고 하면서 선생님은 마구 바꾸고, 친절하라고 하면서 선생님은 지각한 이유를 묻지도 않았으니 건우가 주는 나쁜 선생님 표는 정당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건우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왜 욕을 했는지, 왜 지각을 했는지, 왜 친구와 싸웠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만 나쁜 어린이 표를 받는 것이 억울할 뿐이다. 고자질한 아이도, 먼저 시비를 건 아이도 같이 나쁜 어린이 표를 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어느 날, 감기에 걸린 건우는 체육시간에 혼자 교실에 남게 된다. 그때 갑자기 선생님 책상에 있는 스티커 통이 눈에 들어 왔고, 얼른 그 통을 열어 보았다.

"맙소사! 나쁜 어린이 표가 이렇게 많아. 이걸 다 우리가 받겠지!"

나는 스티커 뭉치를 들고 부들부들 떨었어요. 누가 보기 전에 얼른 다시 넣어야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이 많은 노란 스티커를 받을 애들은 고작해야 창기, 민철이, 정욱이, 나, 그리고 몇 명뿐이거든요.

 

나는 스티커를 자디잘게 찢어서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어요. 그리고 변기 뚜껑을 덮고 나서 올라앉아 다리를 꼭 끌어안았어요. 무섭고 슬퍼서 쉴 새 없이 눈물이 나왔어요.

 

노란 스티커 뭉치를 들고 부들부들 떠는 건우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고, 그동안 억울했던 건우의 모습과 아들 녀석이 오버랩 되면서 나 또한 부들부들 떨며 건우와 함께 스티커를 자디잘게 찢고 있는 상상을 했다.

건우는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상처 받았을까?

스티커를 찢어 버리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건우의 두려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건우를 따뜻하게 안아 주고 싶었다.

 

그 사이 선생님은 건우의 수첩을 보게 된다. 드디어 내가 바라던 순간이다. 건우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아마도 들키기를 바라는 마음과 영영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반반 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건우의 수첩을 본 선생님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너무도 궁금한 순간이다.

선생님은 수첩을 보고 건우의 마음을 이해 하게 되고,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네가 나쁜 어린이 표 다 가져간 거랑 내가 너한테 받은 거, 우리끼리 비빌로 하자.네 덕분에 애들을 가르치기가 더 힘들겠구나."

"이건우, 2학기 때는 반장이 될 수 있기 바라. 그래서 반을 이끈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보렴."

"어서 가라. 너, 많이 아파 보이는구나. 그리고 한 가지 알려 줄 게 있어. 과학 선생님이 네 작품 좋다고 하시더라."

 

건우는 선생님이 고맙다고 처음으로 느끼게 되면서 그동안의 응어리를 풀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건우 덕분에 진정한 교사란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정말 스토리에 감정이입이 제대로 되어서 너무 재미있게 읽고, 폭풍 감동을 받았다. 어쩜 이렇게 현실과 같은 스토리로 독자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는지 감탄에 또 감탄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이 책은 현직 선생님들의 필독서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구지고 실수하는 어린이는 있어도 나쁜 어린이는 없다는 걸 선생님들이 꼭 명심하여 좋은 가르침을 주셨으면 정말 정말 좋겠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더욱 멋지게 성장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 책을 읽고 이렇게 진심으로 감정이입이 된 것이 처음이어서 이 책은 아이와 부모, 특히 선생님에게 고전으로 읽혀야 할 책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은 이미 고전이었다. 국내 창작 동화 최초 100쇄 출간, 100만부 돌파한 어마무시한 책이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어린이, 부모, 선생님들의 가슴을 적시며 우리 창작 동화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책이었다. 그 책이 출간 18년 만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 이번에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전 것은 보지 못했지만, 18년 만에 새 옷으로 갈아 입은 <나쁜 어린이표>는 일러스트도 따뜻하고 종이의 질도 매우 좋아서 오래 오래 소장해 두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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