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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진리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9
김선욱 지음 / 책세상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정치는 진리의 영역일까? 정치와 진리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정치의 영역에서 진리는 어떠한 위치를 갖는 것일까?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마르크스에 이르는 서양 정치철학의 전통에서는 늘 이론에서 시작하여 정치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정치는 항상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이 때문에 정치철학에서 정치 영역에 대한 진정한 접근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된 것이다. (p. 80)
정치는 철학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정치적 현상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 즉 이미 이성적으로 구성된 어떤 이론을 가지고 현상에 접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무(無)이론적 태도로 관찰하여 그 현상의 가장 독특한 특성을 파악하려는 자세를 현상학적 태도라고 한다. (p 14)
「정치와 진리」는 이와 같은 물음에 답을 제시하며 정치와 진리의 관계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현상상적 태도’로 접근한다. 나아가 권력, 시민의 정치 참여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그리고 정치 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정치 철학을 토대로 문제를 풀어간다는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저자는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를 정치란 무엇인가, 인간의 복수성human plurality, 진리의 개념 그리고 공적인 것(정치적인 영역)과 사적인 것(사회적인 영역)의 구분을 통해 논증해간다. 나아가 “정치는 의견의 영역이다.”라고 주장하며 정치는 인간의 복수성(개성, 다양성)을 기반으로 언어를 그리고 개인의 판단을 통한 공적 영역에서의 설득과 합의의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경제 문제와 같은 사적인 것을 위해 기능할 때 그리고 인간의 복수성을 바탕으로 한 정치 공간에서 진리라는 절대적 준거와 기준이 억압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각자의 의견과 판단을 기초로 여기에 공동인식(공감각, 상식)을 연결 고리로 시민 연대와 공동 행위의 결속이 가능해 진다고 서술한다. 더불어 이러한 권력과 법의 관계와 정당성에 관해 논한다.
짧게나마 책에서 한나 아렌트 여사가 강조하는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정치와 진리에 대한 관계, 공적 공간의 위치와 의의, 인간의 복수성 그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치의 반대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한 개인의 판단에 대한 타당성, 비판적 거리 두기, 개인들 간의 공동행위와 시민의 힘(권력) 그리고 세계적 연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과 아렌트 여사를 통해 몇 가지 상념이 떠오른다. 먼저, 정치라는 공간에 대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치는 절대적인 진리를 위한 논증의 공간이 아니라 복수성을 토대로 한 설득과 합의의 공간이다. 그럼 정치는 ‘열린 공간’(혹은 ‘열려있어야 하는 공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정치라는 공간에 있는 인간에 대한 물음이다. 그것은 ‘정치적인 인간’의 조건과 역할 그리고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것이다. 나아가 ‘인간됨’이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물음을 던져본다.
한나 아렌트 여사의 정치 철학을 기초로, 「인간의 조건」과 「칸트 정치철학 강의」에서 상당 부분 차용하여 씌어 진 책은 그녀의 정치 철학 입문서로 보면 좋을 듯하다. 페이지 수에 비해 그녀의 정치사상을 포괄적으로 비교적 쉽게 다루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반갑게도 지난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전체주의의 기원」 등 그녀의 주저서 대부분이 국내에 모두 출간되었다. 이제 이 책을 디딤돌로 하여 차례차례 그녀를 직접 만나봐야겠다.
<책에서>
언어의 본질적 사용이 문제가 되는 곳에서 문제는 항상 정치적이다. (p. 31)
현대 사회에서 평등은 마치 가장의 독재적 권력 앞에 서 있는 가족 구성원의 평등과 같다. 즉, 소비나 사용의 대상을 평가하는 기준을 중심으로 인간의 활동이 평가됨으로써 복수성에 바탕을 둔 행위는 더 이상 존중되지 않는 평등 말이다. (p. 47)
현대 사회에서 경제적 가치에 따라 모든 것을 평가하고 가름하는 태도는 이러한 ‘사회적인 것’의 대표적인 예이다. 획일성을 요구하는 ‘올바른 척도right measure’를 주장하고 적용하는 것은 마치 한 사람이 자신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평가하고 지배하는 군주제 통치와 같다. (p. 48)
사회적 가치가 인간의 모든 가치가 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주장은 경제 지상주의 물든 인간성 회복을 외치는 선언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드러내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p. 59)
......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생각할 거리가 필요하다. (......) 이런 거리 없이 동료의 감정적 호소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군중심리라 부르고, 이해 관계에 연루되어 어떤 의견에 동조하는 것은 당파성 또는 지역성에서 나오는 것이며, 기존의 법적 질서에 의한 결과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것은 제도적 폭력에 대한 직간접적인 참여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 모든 경우에서 필요한 것은 생각할 수 있는 거리의 유지다. (p. 95)
정치적 연대를 통해 이룩된 공동 행위는 참여자의 개성을 무시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개성이 드러남으로써 공동 행위가 의미 있게 된다. 공동 행위를 나타내는 영어 표현 중 하나로 action-in-concert가 있다. 이는 콘서트를 이룬 행위라는 뜻이다. (......) 정치적 공동 행위란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원리를 이루어가는 행위인 것이다. (p.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