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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 하루키가 말하는 '내가 사랑한 음악'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올 어라운드 원 맨 밴드 ‘더 하루키’
하루키의 글에서는 음악이 흐른다. 다른 이들은 그의 소설이 좋아서 그를 찾는다지만 나는 단지 음악이 나온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를 만났고 음악이라는 소품이 특별한 의미가 없었을지라도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키를 만났고 그의 소설을 읽었다. 아마도 음악이 없었다면 그의 작품을 만났을 확률은 희박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당연히 처음 접한 작품은 「상실의 시대」가 아니라 「재즈 에세이」(열림원) 였으며, 나의 기억 속에 그는 이미 「재즈 에세이」의 저자로 각인되어 있었다. 더불어 지금도 그의 소설이 좋아서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음악이 나올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읽는다. 나에게 있어 그는 소설가가 아니라 절실하게 닮고 싶은 ‘음악광’같은 존재이다.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는 하루키에 대한 나의 비뚤어진(?) 관심을 가득 충족시켜 준다. 이전 작「재즈 에세이」, 「또 하나의 재즈 에세이」(까치)가 극히 짧은 분량에 다분히 감상적으로 쓰였던데 반해 이 책은 그의 음악 감상의 깊이와 애정 당연한 말하지만 그의 필력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미 소설 속에서 무수히 등장한 음악들을 통해 그의 해박한 음악적 지식은 알고 있었지만 웬만한 음악평론가를 능가하는 방대한 지식과 이해력, 날카로운 통찰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시더 월튼을 시작으로 우디 거스리 까지 총 11명의 아티스트와 재즈, 클래식, 팝음악을 통해 개인적인 추억담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간다. 또한 각 아티스트의 일대기를 돌아봄과 동시에 그들의 음악이 가지는 의미를 포착함도 놓치지 않는다.
재즈 피아니스트 시더 월튼을 소개하며 ‘퍼시픽 리그 하위 팀에서 2루수를 보는 6번 타자’라 비유하는 그의 기가 막힌 표현은 혀를 내두르게 하며 '아, 시더 월튼 그도 있었지'하며 무릎을 치게 만든다.(실제로 집에 있는 음반을 뒤져 그를 찾아봤다. 하루키의 번득이는 재치 넘치는 한 마디처럼 그는 그런 존재였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 17번 D장조 D850>설명에서는 그의 박식함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레이먼드 카버와의 공통점을 통해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루돌프 제르킨과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이 두 피아니스트를 비교해가는 내용도 상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그리고 비운의 두 천재, 스탄 겟츠와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 여정을 돌아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윈튼 마살리스(tp)에 관한 내용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마살리스의 음악적 지루함에 대한 일장 연설은 꽤나 흥미롭다.
“......개인적인 체험은 나름대로 귀중하고 따뜻한 기억이 되어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당신의 마음속에도 그와 유사한 것이 적지 않게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결국 피와 살이 있는 개인적인 기억을 연료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만일 기억의 따스함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에서 살고 잇는 우리네 인생은 아마 견디기 힘들 만큼 차디찬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마도 우리는 사랑을 하는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마치 사랑을 하듯이 음악을 듣는 것일 터이다. (p.89)
듀크 엘링턴의 <It Don't Mean a Thing, If It Ain't Got That Swing>에서 스윙과 의미만 바꿔치기 한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는 제목 그 자체가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개인적인 추억과 기억, 체험들에 의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며, 그러한 것들은 그 자신에게 모두 의미가 있는 음악 인 것이다. 재즈에 있어 ‘스윙’이 필수적 요소인 것처럼 -물론 스윙의 의미가 축소된 재즈도 있으며 필수 요소가 아닌 재즈도 있지만 듀크 엘링턴 곡의 관점에서 보면 - 하루키에게는 ‘의미가 없다면 당연히 스윙도 없는 것’이다. 언듯 「재즈 에세이」첫 장에 있는 서머셋 몸의 말을 인용한 “재즈를 듣는 행위에도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면도칼에도 철학이 있는 것처럼”를 “음악을 듣는 행위에도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면도칼에도 의미는 있는 것처럼.”로 바꾸는 건 어떨까 한다.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다시 봐도 정말 멋진 제목이다. 이보다 더 끝내주는 제목이 과연 또 있을까?
“여기에 수록된 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과 가령 조금이라도 음악적 공감 같은 것을 나눌 수 있다면 더 이상 기쁨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래,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같은 종류의 심정 말이다. 음악적 공감. 또한 이 책을 읽고 나서 ‘음악을 더 많이, 더 깊이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당초의 내 소망은 거의 이루어진 셈이다.”
마찬가지로 재즈에 있어 연주자 간에 공감을 통한 긴밀한 인터플레이가 절대적인 것처럼 하루키는 독자와의 음악적 ‘공감’ 나누고자 한다. 그럼 이렇게 “공감할 수 없다면 스윙은 없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아쉽게도 부덕한 독자의 빈약한 지식 때문에 상당 부분 놓친 게 많고 인터플레이는 차치하더라도 ‘더 하루키’가 들려준 11 곡의 음악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제 하루키가 소개한 음반들로 위시리스트를 채우는 일만 남아있다. 본격적으로 스윙을 느낄 시간이다.
p.s. 아쉬움이라면 역자분이 음악에 문외한인지는 몰라도 아티스트 명과 음악용어 표기는 실망스럽다. 책의 성격상 음악전문가에게 미리 감수를 받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