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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 - 러닝 앤솔러지
김연수 외 지음 / 판미동 / 2026년 6월
평점 :
2025년은 내게 조금 특별한 해였다.
나는 어릴 때 다리가 너무 심하게 휘어 교정신발을 신었다.
실내에서도 교정신발 위에 덧신을 신어야 했고, 불편하고 아픈 것은 둘째치고 사람들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고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초등학교 때, 100m달리기를 하면 내 순서를 기다리는 것은 아주 고역이었다.
온 힘을 다 해 뛰는데도, 나는 30초 이내에 100m를 달릴 수가 없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운동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2025년, 40대가 되어서 내가 하루에 한 시간을 뛰는 사람이 되어 있을거라고 100m달리기 순서를 기다리던 나에게 말해주었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10km를 쉬지 않고 달리게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면 믿을 수 있었을까?
2025년, 주변에 러닝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직장동료는 피골이 상접해있었다.
모두가 그의 건강을 염려했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더할나위 없이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러닝전도사를 넘어 마치 러닝NPC가 된 것 같았다. 그와 얘기를 시작하면 모든 대화는 러닝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뿐,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달릴 때 호흡이 부족한 느낌, 목에서 나는 피냄새, 터질듯이 뛰는 심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느린 나. 모두 싫었다.
다른 직장동료들이 하나 둘 홀린듯이 그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새로 산 러닝화를 자랑하고, 자신의 기록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서도 나 역시 달리게 될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달리게 된 것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경험이 있던 동료에게 책 선물을 받아서였다. 그는 슬로우조깅이라는 것이 있고, 그게 살을 빼는데 훨씬 좋다며 나를 계속해서 설득했다. 나는 결국 마지못해 그를 따라나섰다. 집에 있던 운동화를 아무거나 신고 세상 괴로운 얼굴을 하고.
아주 천천히 뛰었다. 뛴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한강을 따라 뛰는 할아버지같은 속도였다. 그는 내게 스마트워치의 새로운 활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페이스라는 게 뭔지 알게 되었고, 내 심박을 처음으로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심박이140을 넘지 않게 조절해서 뛰었다. 내 첫 달리기는 30분간 이어졌다. 1분도 뛰기 힘들던 내가 30분을 달릴 수 있다니. 나는 감격했다. 그렇게 시작된 달리기는 몇 달간 이어졌다. 쉬는 날에는 1시간을 달리고, 출근하면 점심시간에 3~40분을 뛰었다. 처음에는 3km뛰는 게 다였는데 같은 시간에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점점 늘어났다. 즐거웠다.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처음엔 가벼운 발목부상이었다. 그 다음엔 무릎, 그리고 엉덩이, 결국엔 양쪽 햄스트링이 가볍게파열됐다. 한의원에 가는 횟수가 늘어났고, 안마원을 자주 찾게 되었다. 안마사분께서는 내게 달리기를 하기엔 무리가 있는 몸상태라고 말했다. 결국 나는 달리기를 그만두고 재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좋아지던 몸지표가 다시 곤두박질 치고 체중도 10kg이나 늘어났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도서전에서 이 책을 보고 나는 달리며 숨이 가볍게 차던 그 감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민음사 결제줄은 너무 길었다.. 7월에야 만나게 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너무나도 달리고 싶어졌다.
경쾌한 느낌의 표지에 앤솔러지여서 가볍게 읽을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묵직한 삶의 무게들이 느껴졌다. 나무 사이 하늘을 보며 달리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달리기도 하지만 그들이 달리기를 통해 느끼는 건 나와 다르지 않았다. 런너스하이를 경험해본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달리다보면 생각이 나를 따라오지 못하게 된다는 감각이 들고, 명상을 한다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삶은 내게만 무거운 것이 아니어서, 이 작가들 역시 저마다의 이유로 무게를 느끼고, 저마다의 이유로 달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달린다는 행위는 사람의 몸에 각인되어 있는 본능과도 같은 행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졸리면 잠을 자는 것처럼, 영혼이 허기지고 무거우면 달리면서 그 짐들 떨구게 하는 게 사람의 몸 어딘가 깊이 새겨져있는 본능일지도 모른다고.
최근 겪는 힘들 일들로 나는 20살 이후 처음으로 일을 쉬고 집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하루에 300보정도 걷는 삶.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시러 가는게 귀찮았다. 책장을 다 덮고 난 지금, 달리고 싶은 마음이 차오른다. 달리다보면 나도 이들처럼 차분하게 글을 쓸 힘이 생기게 될까? 차분하게 삶이라는 전투에 다시 임할 힘이 날까? 치열한 여름날씨가 두렵기도 하고, 늘어난 체중에 전보다 더 부상을 자주 입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내내 이래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다. 당장 달리지 않아도 되고, 무기력하면 무기력하게 있어도 된다고. 그래도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간다고.
근거없는 생각이라고 치부하기엔, 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 이 책은 분명하게 그런 생각들의 근거가 되어준다.
그들은 각자 살아가고 각자 달리지만, 달리던 길 위에 지쳐 나자빠진 나에게 근거가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준다. 그래서 아마, 나는 곧 다시 달리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내일부터 달린다고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