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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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고 싶은가, 살고 싶은가.

이것이 지난 10년 동안 나를 살아 있게 한 질문이었다.

지금껏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살고 싶어서가 아닌,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28p

은우가 그런 아이였다.

또래 남자아이들이 땡볕 아래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지렁이나 달팽이를 함부로 짓밟고, 비비탄총으로 거미를 맞추며 키득거릴 때 은우는 미물 하나 밟지 않으려고 바닥을 살피며 걷던 아이였다.

은우가 죽인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었다. 56-57p

웃다가, 웃다가, 울음이 쏟아졌다. 62p

인생은 물속처럼 상하좌우 구분이 안 돼 헤맬 때가 있지만, 도로는 정확해서 길을 따라가면 목적지가 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 이것이 내가 지난 10년간 삶을 버텨온 방식이었다. 63p

고난과 불행에 연이어 발목을 붙잡히는 기막힌 삶은 소설이나 영화뿐 아니라 현실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자기가 경험한 세계가 전부인 줄 아는 사람들은 자기 잣대로 쉽게 확신하고 말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만, 세상에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나 삶의 극단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을 아낀다. 마음 하나도 신중히 쓴다. 가까이 있어도 안전한 사람들. 나는 이들이 안전한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70p

"누구나 저마다의 압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거지.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욕조에서 이불 빨래를 하고, 누군가는 심장이 터지도록 달리면서."

잠든 개의 흉곽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진 사장님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숨을 참는 거고." 76p

그리고, 나는 안다.

실은 녀석들 모두 내 안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사람은 제 안에 어린아이를 품은 채로, 영영 온전히자라지 못한 채로 속절없이 늙어가는 거니까. 322p

나는 자살예방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22년간 숱하게 많은 자살자들과 자살사별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살예방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위해 교육을 받으면서 유난히 괴로웠던 것은 9살짜리 아이가 자살한 이야기를 들었던 때였던 것 같다.

죽고 싶은가, 살고 싶은가를 그 아이는 얼마나 생각했을까.

생각하다 생각하다 생각하기조차 지쳤던 것은 아닐까.

괜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이었었다.

말라가의 밤은 담백하고 잔잔하게 영상을 보는 것처럼 흘러간다.

강렬한 감정의 폭발도 없이 그저 물이 흐르듯 흘러간다.

그래서 책을 읽어 넘기는 것 자체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숨에 완결까지 다 읽고 나서도 잔잔하게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은 책이다.

우리의 삶은 꾸역꾸역 웃다가 한 번 무너지며 엉엉 울고, 또 다시 꾸역꾸역 웃으며 버티는 날들이 더 많기에, 죽고 싶은지 살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되새기게 된다.

삼구가 자신의 압력을 버티며 숨을 참고 정확한 도로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하고, 또 다시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나의 구도, 일구와 이구도, 삼구도 모두 내 안에 있고, 나 역시 영영 자라지 못한 채로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다.

누군가 웃다가 웃다가 울음이 쏟아질 때 내가 건강한 상태이길, 여유가 있기를 바라면서.

또 내가 웃다가 웃다가 울음이 쏟아질 때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건강한 상태이길, 여유가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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