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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솔직히 책 제목만 보고도 부담스럽고 불편한 느낌이 든다.
나는 패션에 큰 관심도 없고 옷을 많이 사는 편도 아니지만, 사실 싼 옷을 사서 막 입고 더러워지고 낡으면 버리는 것에 거리낌은 없었다.
옷을 버리는 게 아니라 헌 옷 수거함에 넣는 것이니 재활용 될 것이라는 알량한 기대로 그 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제목을 달고 책이 나오지 않더라도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그 모든 헌 옷들이 재활용 될 리 만무하다.
헌옷수거함은 늘 꽉꽉 차 있고 매 시즌마다 새로운 옷이 쇼윈도를 장식하는데 과연 그 옷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새 옷들조차 완전히 판매되지는 않을텐데 남은 재고들은 어디로 갈까?
나는 그런 고민들마저 헌 옷 수거함에 쉽게 버려버리곤 했다.
그나마 나는 당근마켓 등에서 중고 의류를 구매해서 입는 편이라 나름 의식있는 편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되었던 다큐영상, TRACER: 우리가 수거함에 버린 옷은 어디로? 153벌 GPS 활용 전세계 추적기.
책 내용이 기시감이 들었던 것은 그 영상을 책으로 펼쳐낸 것이어서였다.
'헌 옷이 어디로 갈까?'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한겨레21의 프로젝트.
153개의 gps 추적기를 옷에 하나하나 손수 달아 수거함에 넣었다.
영상을 보는 내내 경악을 금치 못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다시 잊혀져있었던 내용들이었다.
광활한 유튜브의 바다속에서 이 영상을 접했던 걸 생각하면 책으로 펴낸 것의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프로젝트이고 또 그 내용이 너무 중요하다보니 최대한 많은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는 저자들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한겨레출판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책 속에도 버려진 옷들의 산이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장면을 접할 수 있는데 나는 오히려 영상으로 버려진 옷들의 산을 뒤지는 pd님을 봤을 때보다 그 페이지를 보고 더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생산한 옷, 우리가 소비한 옷을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로 수출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쓰레기장으로 쓰는 것.
더 가슴이 아팠던 것은 이 옷들을 재활용하기 위한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아무런 보호장비도 갖추지 못하고 화학물질들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들의 어린 자녀들은 버려진 헌 옷이 가득 쌓인 곳에서 자란다는 것이었다.
헌옷들이 흘러간 곳 중에는 중고옷을 수입하는 게 금지된 나라들도 있었는데 이 말은 곧 불법적으로 밀수입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재활용이 되는 옷들도 엄청난 오염수를 방출하고 노동자를 병들게 하고, 재활용되지 않는 옷들은 끝내 소각되고 만다.
소비하는 데도 버리는 데도 윤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귀찮고 부담스럽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들에게 용돈을 주며 한 번 읽어보라 꼬셔봐야겠다.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