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나를 위해 일하게 하라
세달 닐리.폴 레오나르디 지음, 조성숙 옮김 / 윌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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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변혁적 발전이 예견되는 미래를 보면, 우리는 어떻게 AI를 이해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차후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도래에 맞춰 인간은 어떻게 일해야 할까? 발전하는 흐름을 보면, 미래 그 어떤 직종도 AI와 그에 관련한 디지털 기술로부터 무관할 수 없는 전망이 예상된다. 따라서 AI의 발전은 더디더라도 멈출 수는 없어 보인다.

이제 우리는 배움과 적응이라는 선택지를 통해 좋든 싫든 조금씩 AI를 삶에 녹여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떤 학습이 필요한지, 전문가에 비견한 지식 학습이 요구되는지와 같은 의문이 들 것이다.

<AI 나를 위해 일하게 하라>에서는 우선적으로는 ‘디지털 마인드셋’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더불어 이를 위해 AI의 몇 가지 기술적 주제(알고리즘, 데이터 등)를 전부가 아닌 30%만 이해해도 충분하다고 한다. 그 말에 따라 이 책은 디지털 마인드셋의 세 가지 핵심인 ‘협업’, ‘연산’, ‘변화’를 통해 목차를 총 3부로 나누어 딱 필요한 30%만을 핵심적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디지털 마인드셋이란, 데이터와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한 우리 나름의 접근법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AI에게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 AI를 생각하는 방식과 대응하는 행위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차후 AI를 통해 발전할 디지털 시대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책 한 권에 알고리즘의 구조를 이해하며 헤매지 않고, 무한한 빅데이터에서 올바른 지식을 선별할 수 있으며, 변화하는 일자리 트렌드에 따라 기계와 사람과 어떻게 협업하고 소통하며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 등의 방법이 담겨있다.

변화를 앞둔 시대에 마냥 두려운 마음이 들 때, 앞으로 자신이 어떤 태도와 시각으로 다가올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AI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 구조를 간단히 파악해 볼 수도 있어서 좋았다.

이 책에선 AI(기계)를 기계로 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기계가 아무리 사람처럼 정교한 외형과 행동 능력을 갖췄다고 해도, 사람과 똑같이 대한다면 오히려 기계의 능력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없다고 한다. 기계와의 성공적인 상호작용을 위해선 기계에 통하는 기술로만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즉, 인간에게 적용되는 사회적 범주는 기계를 이해시키기 어렵다.

다만, 특정 분야의 주어진 지시를 수행하는 제한된 능력을 가진 현재의 인공지능(ANI)을 넘어, 스스로 학습하여 새롭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공일반지능(AGI) 또는 인간의 통제 없이도 스스로 목적, 목표, 전략을 개발하여 지속적인 지능을 확장하는 인공초지능(ASI)으로 기계가 진화하게 된다면?

이는 또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아직은 상당히 멀어 보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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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대한민국 - 우리가 선택한 파국과 소멸의 사회경제학
김현성 지음 / 사이드웨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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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망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할 정도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 애정을 갖고 망해가는 나라를 살려 보겠다며 선뜻 나서는 이는 드물어 보인다. 오히려 다 같이 나라가 이 모양인 걸 자조하며, 차라리 파국을 맞이하는 걸 재촉하는 듯하다. 한국을 보면 마치 이곳저곳에서 구멍이 뚫려 침몰하는 배를 보는 것 같다.

좁아터진 서울 및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 가까이 모여 있는, 죽어라 일해도 내 집 마련은커녕 당장 내일을 살아가는 것도 힘겨운, 노년에 빈곤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일터에 떠밀리듯 나가야 하는, 결혼 및 출산이 사치와 죄악이 되는, 약자가 약자 혐오를 하는 구조에 놓인, 경쟁하고 또 경쟁해야 하는 한국은 숨 쉴 여유조차 없는 각자도생의 나라가 됐다.

누군가는 그 까닭을 한국인의 품성을 문제로 든다. 원체 한국인은 욕심이 많고, 이기적이며, 정신이 궁핍해서 물질적인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앞선 현상들이 일어난 거라고 말이다. 얼핏 보면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유심히 이 현상을 바라보던 이 책 <자살하는 대한민국>의 저자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한국이 이렇게 병들게 된 까닭은 한국인의 품성 탓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근원적인 이유는 ‘돈’이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돈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경제적 구조’ 때문이다. 저자는 왜 한국이 망국을 맞이하고 있으며 과거의 경제적 성장 구조와 지금의 경제적 성장 구조가 무엇이 다른지 등 한국의 경제적 구조 특징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다양한 통계를 통해 분석한다. 한국이 망해가는 까닭을 경제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본인이 이전에 읽었던 지음미디어 출판사의 <환자명 대한민국>이라는 책과도 일맥상통해서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직접적으로 한국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운명을 마주한 것 같아 암울했다. 앞선 사회적 현상 및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아무리 한국이 싫다 해도, 내가 속한 나라가 망한다는 거의 확실한 전망을 조목조목 통계로 비판하는 책을 보면 슬퍼질 수밖에 없다.

사회로 나갈 시기를 맞이한 한국의 청년인 입장으로서 이 책은 참 아팠다. 한국의 저출산 대책으로 쪼이고 댄스라는 저질스러운 행사를 서울시의원이라는 사람이 주최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 나라의 국민을 인간이 아닌 가축으로 보는 이 나라에서 나는 과연 행복하게 삶을 보낼 수 있을까? 그저 착잡한 마음만 든다.

문제 해결을 위한 자세한 저자의 견해는 책의 말미에 담겨 있는데, 정리하면 저자는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정부가 나라에 대한 투자에 적극적이고, 나라를 가난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한 과정에는 국민 간의 이해와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이해와 합의를 통해 나라를 바꿔가야 하지만, 문제는 그만큼의 여유를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해결책이 아예 없을 만큼 망가진 건 아닌 듯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걱정이다. 이미 굳어진 경제적 구조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와 정부에 반발심을 품은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과연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을 위해 선뜻 나서줄 정치적 지도자를 기대할 수 있을까? 각자의 파이만 챙기기에도 먹고살기 바쁜 이 나라에서 우리는 과연 지금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현상의 완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나는 그저 이 나라에서 빈곤에 떠밀려 자살하는 결말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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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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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자기 검열의 시대이다. 조금의 흠결도 누군가에겐 큰 균열이 되어 평생 꼬리표가 된다. 우리는 도덕 아닌 도덕이라는 가면을 쓰고, 누군가에 대한 평가에 엄격히 군다. 서로서로 평가하는 게 너무도 익숙하고, 때론 무례하다는 걸 잊어버린 시대. 보이는 것만 보고 단편적으로 판단을 일삼는 이 시대, 당연하게 굳어져 이제는 일상이 된 그런 시대를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아가는 한 여자가 있다.

여자의 이름은 영아. 27세 유치원 교사로 항상 잘 웃고, 남을 배려하고, 욕지거리가 나오는 상황도 잘 참는 사람이다. 그러니 자신이 정한 도덕의 정의를 친구도 같이 실천해 줘야 하는 성미를 가진 친구의 비위도 잘 맞춰주고, 5년이나 사귀었지만 별 감흥이 안 드는 남자 친구도 그저 자신을 좋아해 주고 좋은 사람인 것 같으니 계속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어떻게 인내하고만 살 수 있을까? 인내가 강한 영아에게도 어느 순간 균열이 찾아온다. 예전에 인내심 강한 자기 모습을 되찾고 싶었던 영아는 한 의학연구센터에서 정서를 조절하는 간단한 뇌 시술을 받게 된다. 그 이후 영아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이야기가 <오렌지와 빵칼>이다.

뇌 시술을 받은 영아는 소위 ‘도덕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이해할 수 없고 불쾌하기도 한 모습을 보인다. 답답한 상황에서 늘 꾹 참기만을 택했던 영아는 이제 참지 않는다. 평소 짜증 나게 굴던 사람과 상황에 반항하기도 하고, 더욱이 남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행복(샤덴 프로이데)을 깨닫게 된다.
사회적으로 처참히 망해버린 누군가의 인생, 토막난 인체 등 이름 모를 누군가의 괴로움으로 점철된 삶과 상황을 관음하며 영아는 질질 침까지 흘려가며 쾌락에 겨운 웃음을 뿜는다.

사실 이런 모습은 그리 놀라운 것 없다. 우리 모두 도덕이라는 통제의 가면 아래, 그와는 전혀 동떨어진 쾌락이라는 자유를 하나쯤은 품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솔직해져 보자. 우리 모두 각자의 도덕적 정의를 가지고 있는 것만큼 각자의 샤덴 프로이데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를. 당장에 샤덴 프로이데는 익명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만 봐도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두 사이코패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오렌지와 빵칼>은 늘 도덕이라는 여러 잣대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의 또 다른 이면적인 모습에 주목한다. 이 작품을 읽을 때 드는 충동적이고, 폭력적이고, 그래서 상당히 불편하기까지 한 복잡한 감정은 작가가 그런 이면적인 모습을 영아라는 인물을 통해 불쾌하리만치 잘 조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그 불쾌하다는 느낌은 한편으로 우리가 지극히 도덕적인 인간이라는 사실도 함께 조명하는 듯하다. 또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동시에 반전 있는 스토리텔링도 좋았다.

보통 소설책은 마냥 시간 때우기처럼 느껴져서 직접 돈 주고 사지는 않는데, 이 책은 뭔가 강렬히 끌려서 사서 보게 됐다. 결론은 왜 금방 3쇄가 됐는지 알 것 같았던 소설. 상큼하면서도 서늘하고, 묵직하니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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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때가 오면 - 존엄사에 대한 스물세 번의 대화
다이앤 렘 지음, 황성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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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공존한다.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다. 삶이 시작되면 죽음도 시작된다. 다만 현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비교적 죽음을 연장할 수 있는 각종 의료시설 및 환경에 놓여있고, 죽음을 온전히 마주하지 않는 사회적 심리로 인해 죽음을 현실적으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야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라든지, 고독사와 같은 사회적 현상을 비롯한 여러 죽음의 상황을 목도하게 되면서 더는 죽음을 마냥 묻어둘 수만은 없게 되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언젠가라는 죽음의 ‘때’를 과연 내가 원하는 온전한 시기와 형태로 맞이할 수 있을까.

먹고 싶은 음식을 내 의지대로 먹고, 여행하고 싶은 곳을 내 의지대로 여행하는 것처럼 내가 어떻게 죽고 싶은지도 마찬가지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령 몸은 덜 아픈 상태로, 편안한 집에서, 내가 마지막까지 마주보고 싶은 이들과 마주하며 눈을 감는 상상을 해 본다.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어떻게 죽을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기는커녕, 애초에 우리는 성숙하고 안정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마음가짐이나 환경에 있지도 않다. 죽음이라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무력감 때문에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일까.

어쨌든 그런 까닭으로 준비 없이 죽음을 목도하게 되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저 막연히 언젠가 죽겠거니, 나중에 되면 다 알아서 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살다가 말이다. 그래서 아직 죽음이라는 경험에 미숙한 본인으로서도 그저 두려울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는 방법은 되레 죽음을 주제로 한 논의에 관심을 갖고, 생각을 아끼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안락사, 존엄사, 연명의료와 같은 죽음과 얽힌 주제에도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한, 죽음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 공포를 마주하는 일을 넘어서,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해 돌아보고 개개인의 더욱 의미있고 충만한 삶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때가 오면>은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주는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은 일찍이 어머니와 남편의 죽음을 마주하고 존엄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저자가, 훗날 다양한 이들을 만나며 그들과 함께 존엄사를 주제로 나눈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질병으로 인한 말기 환자, 그의 가족, 의료 종사자, 종교인, 입법가 등)

이 책의 저자는 존엄사를 찬성하는 의견 및 반대하는 의견 모두 골고루 포용하며, 다가올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꾸릴 것인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어떠한 죽음의 형태가 옳은지 그른지를 섣불리 재단하지 않고, 각자가 놓인 상황과 환경에서 어떻게 삶의 마침표를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다.

*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면 정신적으로 고통이 극심한 이들을 대상으로 안락사를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되면 좋겠다. (안락사는 인위적인 생명 단축 행위로서 존엄사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개념이다. 신체적으로 병들고 아픈 경우는 죽음에 이를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만 병들고 아플 때는 죽음에 이를 수 없다. 다만 죽음을 선택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신체적인 고통과 더불어 정신적인 고통도 인정받았으면 싶은 것이다.

삶은 행복할 때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순간이 느껴질 때가 더 많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러한 유형의 안락사는 정말 복잡하고 논란이 될 사안이 분명하니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다.
본인은 단순히 무조건적인 정신적 고통에 따른 안락사 입법을 위한 목표의 논의를 바라는 것보다는, 우리가 삶을 이야기하는 만큼 거리낌 없이 죽음에 관해서도 이야기함으로써 이른바 죽음에서 삶을 찾는 과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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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체중 - 크고 뚱뚱한 몸을 둘러싼 사람들의 헛소리
케이트 맨 지음, 이초희 옮김 / 현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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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걸 줄이고 많이 움직이면 살이 빠진다는 말은, 잠을 줄이고 많이 공부하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함을 전제로 말이다.

‘신체는 합리적이지 않다.’ 책의 194페이지의 문장이다. 해당 문장처럼 사람의 신체는 일관적이지 않다. 키, 생김새 등과 같이 살이 찌고 안 찌고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먹어도 삐쩍 마른 사람이 있고, 그 삐쩍 마른 사람보다 덜 먹어도 살찐 사람이 있다. 친구(마른 사람)와 나(살찐 사람)의 이야기다.

그런데도 아직 이런 지방, 특히 비만에 대한 부분에서는 사람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다. 사람의 몸은 내부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바뀌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다. 그래서 마른 사람이 살찌기 어려운 거고, 살찐 사람은 요요현상을 겪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가? 오히려 제대로 노력하지 않았다고, 의지가 없어 실패한 거라고 변하지 않은 이를 욕하는 게 태반이다. 그 비난은 특히 비만인에게 가혹할 정도다. 비난과 함께 조롱, 특히 혐오는 암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진다.

부끄럽지만 나도 비만 혐오를 한다. 내 몸에 있는 지방을 싹 빼내려고 지방흡입 수술까지 두 번이나 했다. 이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수술 부위를 고민하고 있다. 거울 너머로 내 몸을 보는 게 싫고, 두툼한 살덩이를 부여잡고 이만큼 뜯어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비만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혐오감도 든다. 그런 사람들과 닿으면 다른 사람과 닿는 것보다 더 더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비만이 죄가 될 수 없음에도 그저 비만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이 좋았다. 이런 태도가 부끄럽고 무례하고 단편적인 편향적 사고라는 걸 자꾸만 알려주기 때문이다.

<비정상체중>은 이렇듯 우리의 비만 혐오가 당연해진 이유와 비만혐오를 공고히 하는 사회적 구조를 파고드는 책이다. 건강 걱정을 빙자한 조롱적 품평을 저격하는 책이기도 하다. 건강과 비만에 대한 상관관계에 관해서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책의 저자는 비만인이며 철학자이다. 저자의 내밀한 경험과 섬세하고 정교한 글의 정리, 여러 주제 관련 사례를 통해 비만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비만 혐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책이라 깊이 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비만 혐오는 개인의 편향된 태도가 아니라, 비만인과 비만인을 벗어나려는 이에게 ‘구조적’으로 폭력을 주는 하나의 현상이며 이 현상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밀접하게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비만인은 둔하거나, 게으르거나, 의지가 없고, 신뢰가 떨어지는 등 사회에서 제 기능을 제대로 못 하는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대놓고가 아니더라도 은연중이라도 말이다. 온라인에서는 어떤가? 무자비하게 쏘아대는 화살처럼 비만인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거기에 반응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단연코 비만인에 대한 조롱이다. 불만이면 살을 빼라는 식이다.

바꾸기 어려운 것에 대한 수용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너그러운 시각을 갖는 것이 더 이로운 사회일까, 획일적인 것을 만들기 위해 몸에 해로운 약을 쓰고 칼을 대는 게 더 이로운 사회일까.
보이는 것에서만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보이는 것에 치중해서 놓치고 있는 수많은 가치가 더 많지는 않을까.
전반적으로 외적인 부분을 신경 쓰느라 극심한 고통을 받는 한국인에게 특히 와닿을 책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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