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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지음 / 달 / 2025년 4월
평점 :
당신을 죽이고 싶었고
그만큼 사랑하고 싶었다
‘어떤 책일까?’
27년 동안 알코올중독에 빠진 엄마와 살았던, 저자의 지난한 시간의 기록. 또한, 그러한 저자가 훗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얻은 ‘엄마의 시선’으로, 저자의 엄마를 되짚어 들여다보게 된 기록.
‘무엇을 알려줄까?’
엄마라는 존재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모순된 감정, 죄책감, 그리고 화해의 가능성 등 이분법적일 수 없는 복잡한 가족 사이 애증 관계와 서사를 보여준다.
‘누가 읽으면 도움이 될까?’
엄마라는 존재가 행복보다는 상처로 다가오는 사람, 엄마라는 존재에 애증을 느끼는 사람.
‘개인적 감상’
‘어쩌면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감정은,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은 절실함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 사람에게 무작위로 주어지는 것들은 잔인하다. 개중에서 부모라는 존재, 특히 ‘엄마’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의 온전한 자아가 확립되기 전까지 그 아이의 온 세상으로써 자리한다.
그렇듯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엄마라는 존재가, 날마다 술 때문에 제대로 몸도 정신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어떨까.
타인에게도 폭력적이고, 자기 자신에게는 더더욱 폭력적인 파괴적 행위를 일삼는 모습. 그러한 모습을 보며, 아이는 엄마를 통해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하게 될까.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인 것은 아니다. 부모가 그런 식으로 알코올중독에 빠진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과는 또 다른 행태의 충격과 상처를 주는 일이다.
아이는 그러한 부모를 목격하며 죄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엄마는 나를 미워해서, 사랑하지 않아서 술을 마시는 거야’, ‘내가 사랑스럽지 않아서, 엄마가 나를 원치 않았는데 내가 태어나서 술을 마시는 거야’라고.
결국은 ‘나로서는 엄마의 결핍을 채울 수 없으니, 엄마가 술을 마시는 거겠지’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내가 가장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끝내는 나를 지독히도 외롭게 만든다는 그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결국 엄마라는 존재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러워지고 만다.
그러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저자는 뜻밖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저자가 그가 낳은 아이를 예뻐하던 모습에서, 저자의 엄마가 그를 예뻐하던 과거의 모습이 일순간 비춰 보였던 것이다.
그 일순간을 기점으로 저자는, 술 냄새에 가려 묵혀진 지난 27년의 세월을 다시금 되짚어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리고 엄마를 향한 마음이 어떻게 그런 사람이 엄마일까, 하는 마음에서 어떻게 그런 사람이 엄마를 해냈을까 하는 마음으로 변모하게 된다.
매번 술을 이기지 못해 남들에게 타박 받는 미운 엄마였지만, 그 순간의 사이사이마다 잠깐씩 스쳐간 저자를 향한 사랑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비록, 그 사랑이 세상이 보기에는 형편 없는 공백으로 가득한 돌봄의 형태일지라도… 그 나름대로의 사랑은 분명하게 존재했음을 알게 된다.
아마 많은 독자가 엄마를 향한, 해묵은 원망을 담은 마음에 공감을 얻고자 하는 기대감에 이 책을 펼쳤으리라. 하지만 원망이 있었듯 그 사이 사랑도 있었다는 저자와는 다르게, 끝까지 엄마라는 존재에게서 일말의 사랑도 느낄 수 없었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 사랑을 느끼기도 전에 일찍이 엄마라는 존재와 관계가 단절 되었거나.
그러한 이들에 포함된 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나의 엄마 대신의 존재가 되었던 아빠가 떠오른 책이었다. 아빠는 엄마의 역할도 해야 했고, 아빠의 역할도 해야 했다. 남자 홀로 여자 아이를 키우기엔 너무도 벅찼던 세상. 부모, 특히 엄마의 부재를 당시의 세상이 성숙히 받아 들이기에 아직 많이 부족했고, 때문에 서로가 느끼는 힘겨움을 감추기엔 아빠도 나도 참 어렸다. 아빠는 홀로 나를 키워내야 하는 상황이, 나는 한쪽 부모 없이 자라야만 했던 상황이 각자에게 참 버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서로에게 미움이 어린 순간이 많았어도, 결국은 사랑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남들이 어떻게 그런 부모를 사랑할 수 있겠어, 라고 묻는대도 그런 부모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순간과 시간을 우리는 건너 왔음을. 어쩌면 칼로 물을 베는 것과 같은 관계는 부모 자식 간에도 해당되는 말이지 않을까, 책을 덮은 후 조심스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