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안드레아 바츠 지음, 이나경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평점 :
🍷
약 #스포주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반부에 그야말로 ‘몰아치듯’ 읽게 되는 미친 소설. 영화 #델마와루이스 를 모티브로 삼은 듯한데, 그보다는 쓴맛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대학 시절부터 함께한 단짝 친구인 크리스틴과 에밀리. 그들은 1년에 한 번씩 외국의 모험적인 장소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시작은 에밀리를 겁탈하려던 여행자를 크리스틴이 죽여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이 부분은 확실치 않다. 크리스틴과 에밀리가 서로 ‘네가 죽였잖아’라고 말이 달라서.)
어쨌거나 크리스틴의 주도로 둘은 함께 시체를 절벽으로 떨궈 은폐하고, 1년 뒤 여느 때처럼 다시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살인은 한 번이면 족했는데, 이번에는 크리스틴이 자신을 겁탈하려던 여행자를 죽여버림으로써(이 부분도 둘 중에 누가 죽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본 소설의 화자인 에밀리의 서술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일이 커진다.
좋든 싫든 둘은 ‘운명공동체’가 된 셈인데, 에밀리는 크리스틴이 영 탐탁지 않았다. 첫 번째의 살인 이후 PTSD에 시달리던 에밀리와는 달리, 무서울 정도로 태연하고 심지어는 또다시 여행을 떠나자는 모습이 사이코패스 같았기 때문에.
거기다 크리스틴이 사이코패스라는 심증이 점점 확신으로 굳혀지는 증거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면서, 에밀리는 점차 크리스틴에게 거리를 두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에밀리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며 숨통을 조여오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정말 토가 나올 정도로 숨이 막혔다. 속된 말로는 진짜 ‘쫄렸다.’ 완전 얀데레다.
독자의 ‘심리적인 공포’를 무자비하게 쥐고 흔드는 저자의 묘사가 감탄스러웠다. 통학하면서 가볍게 읽어볼까 했는데, 정신 차리니 목적지를 지나칠 뻔할 정도로 활자에 파고드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내가 뭘 그렇게 재미있게 보는지 힐끗힐끗 살펴보는 사람이 분명 있었을 정도로 맛깔나게 읽었다고 확신한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누구 하나 제정신인 사람이 없었다는 점. 크리스틴도 미쳤고, 화자인 에밀리도 미쳤고, 그나마 멀쩡하다고 생각했던 에밀리의 남친 애런도 미쳤다. 애런이 살짝 멀쩡하지 않다는 것도 복선이 있었어서 무릎 빡하고 쳤다.
이 소설은 복선 천지다. 하나하나 찾아내는 맛이 쩐다. 내가 미처 다 찾아보지 못한 부분도 있을 듯한데, 눈썰미 좋은 독자분께서 더 찾아보시길.
소설 분량의 90% 정도가 진행된 이후의 전개가 상당히 급전개인 느낌이어서 그런지, 마치 머리를 연속으로 딱딱 두들겨 맞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누가 최종흑막인지 시원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중과부적 엔딩이라 살짝 화가 났지만… (개인적으로 똥을 닦다가 만 것처럼 확실하지 않은 결말을 싫어하는데, 이 소설 자체가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니다.)
그리고 크리스틴이 에밀리를 보호해주는 포지션이, 후반부에서는 에밀리가 애던을 보호해주면서 전복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 근데 이게 마냥 또 좋은 쪽으로 전복되는 것은 아닌데… 구구절절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일단 이야기를 다 읽어봐야 그 전율을 느낄 수가 있으니 무조건 읽어보는 거 추천. 심리적으로 쫄리고 싶다, 완벽한 킬링타임이 필요하다 싶으면 무조건 쟁여서 읽자.
*
앞서 델마와 루이스를 모티브로 한 것 같다고 언급했었는데, 페미니즘 요소를 담은 영화를 모티브로 해서 그런지 작중에서도 관련 요소가 종종 등장한다.
여성으로서 비교적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고 마는 처지, 여성을 억압하면서도 때로는 애런처럼 존중하기도 하는 남성의 다양한 군상 등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남성이 여성을 죽이는 이야기는 많이 접해봤지만, 그에 비해 여성이 남성을 죽이는 이야기는 많이 접해볼 수 없었기에 이 소설이 조금은 더 신선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쫄깃쫄깃 쫄리고 이래저래 여운도 많이 남는 소설. 애정서린 서평이 구구절절 잘 써지는 걸 보아하니, 참 재미있게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 점수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