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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세스 노터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기 전에 겁부터 먹었다. 이 두꺼운 책을 소화해 낼 수 있을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기타 유럽의 여행서들을 간간히 접하긴 했으나 '산티아고 가는 길'은 여느 여행책들과는 확연히 색이 다른 책이었다. 처음 몇장을 읽어 가면서 과연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역사서 인지 고대건축 예술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으니까. 하나의 예술서로 거듭난 산티아고 가는 길은 과히 찬사를 받을 만하였다.  

세스 노터봄의 스페인 사랑은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스페인은 평생을 바쳐서 사랑해야 할 땅이다. " " 스페인이라는 보물 창고는 캐도 또 캐도 바닥이 안 보인다. " 는 말들처럼 스페인은 아주 매력적인 나라였다. 1945년 첫 방문이후 매년 스페인을 찾는다는 노터붐은 그의 눈으로 본 다양한 스페인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혹시나 여행정보(숙박시설, 식당 등)를 얻을 요량으로 이 책을 펼쳐 들었다면 다소 실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통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역사, 정치, 미술, 정서 등을 모두 섭렵할 수 있게끔 철저한 안내자가 되어준다. 한편의 여행서라기 보다는 문화유산 답사기에 더 가깝다고 할까.. 

하나 더 매력적이었던 부분은 책이 쓰여진 년도가 80~90년도 이지만 결코 진부한 표현들이 없다는 점이다. 생생한 묘사들과 세련된 표현들은 마치 직접 눈으로 스페인을 둘러본 것만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한편의 이야기가 끝나는 뒷부분에는 사진이 실려있는데, 읽으면서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거의 일치할 때면 놀라울 따름이었다. 예술의 문학적 표현 말고도 그가 들려주는 전쟁과 전설들은 세계사 수업을 받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 나는 얼마전부터 바르셀로나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이것은 순례의 길이기도 하지만 명상의 길이기도 하다 "라는 말처럼 책은 우리를 명상의 길로 인도한다. 

스페인은 오래된 땅이다. 전쟁과 참극, 역사의 격변, 만행, 쓰라린 갈등을 수없이 겪은 땅이다. 그래서 일까, 즐기는 관광보다는 역사의 흔적을 뒤따라 가는 답사에 더 어울리는 책이다. 스페인을 보물창고에 비유했듯 그가 들려주는 보석같은 이야기들은 스페인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을 안겨주었다.  

'나에게 여행은 질러가는 길이 아니라 둘러가는 길'이라 말하는 노스터 붐의 여정은 더디게 느껴진다. 유난히 샛길로 빠져드는 그의 행적을 따라 찬찬히 스페인을 음미하기에 더없이 좋은 동행이 되어주리라.   

   
  스페인에서 여행자는 초연해야 하고 허름한 마을 주막에서도 기꺼이 묵어야 하고 낯선 시간 개념도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 날씨 때문이든 고집 때문이든 복이 많아서든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든, 스페인에는 그냥 잘 버려진 곳들이 있다. 그런 데를 가면, 세상은 신문 방송에서 떠드는 것처럼 그렇게 어지럽지도 않고 사납지도 않고 덧없지도 않구나, 아무리 개개인의 삶은 부침이 있더라도 이 세상에는 영고성쇠를 넘어서는 불변의 것이 있구나, 하는 환상에 잠시나마 빠져들 수가 있다.  
   

일반 여행과는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화려한 멋도 맛있는 음식도 없지만 무엇보다 쫒기는 여행에서 벗어나 여유와 감상에 젖어들 것이다. 네덜란드어로 된 제목도 '우회로'를 뜻하는 omweg, 독일어 번역판도 우회로를 뜻하는 Umweg 라고 한다.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은 이렇게 더디게 구석구석을 돌고 돈다. 얼마전 서울에 들렀을 때 제주도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했단다. 언젠가 '제주도 가는 길'도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를 내심 가져본다. 그가 들려주는 제주도는  또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 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그의 스페인에 대한 애정만큼 내가 갖게 된 스페인이란 나라의 다양한 관심이 부풀어 오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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