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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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6번째책
<눈을 감고>

눈을 감고 앓다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저는 한 번 잃었던
길의 걸음을 기억해서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으로 만날
악연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시령이나 구룡령, 큰새이령 같은
높은 고개들의 이름을 소리내보거나

역을 가진 도시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면
얼마 못 가 그 수첩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상한 예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 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러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의 창마다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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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 시집 읽기에 딱 좋은 날씨네.

저녁이고, 비가오고, 금요일이야.

그러면 묵혀두었던 시집 한 권에 술 한 잔 해줘야지.

시에 취하는 걸까 술에 취하는 걸까

아리송한 밤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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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잇다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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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철의 입술이 떨려왔다. 그가 침을 한번 꿀꺽 넘겼다. 그는 빠르게 세월을 거꾸로 돌려보았다. 아들과 갔던 모든 곳은 자신과 아버지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공간들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와 오랜 기억이 담겨 있는 곳 들을 자식과 찾아다닌 것이다. 그는 아버지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보았다. 아버지의 인생이 자신과 닮아 있었다. 희생, 아픔, 행복, 웃음, 슬픔. 모든 감정이 아버지와 닮아 있었다.
˝이리 살았구먼, 아버지도. 나처럼 이리 살아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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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라는 병의 초기 증상을 보이는 아버지와 정리해고를 당한 50대 아들의 기억에 관한 소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병에대해서 말하지 못하고
아들이라는 명목으로 낳아주신 아버지에게 소흘한.

생각해보면 아버지라는 사랑의울타리 안에 살아가면서도 그 사랑의울타리라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여 고마움도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특히 며칠전에 검사때문에 병원에 입원하여 환자복을 입고 계시던 아버지 모습을 보고 난 뒤라 그런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더 먹먹함을 지울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껏 누구 덕분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이 책을 본다면 아마 책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왠지 안방에 주무시는 아버지 옆에서 잠을 자도록 해야겠다.

이 작가가 쓴 책들은 영화화로 많이 되었는데 이 책도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좋은 책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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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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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들 충고들을 하지요. 인생의 바른길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요. 친구여, 네가 가는 길에 미친놈이 있다니 조심하라.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전화를 받는 친구가 바로 그 미친놈일 수 있는 거예요. 인생을 역주행하는 미친놈이 있다는데 너만은 아닐줄로 믿는다며. 그 농담의 말미처럼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미친놈은 아마 한둘이 아닐 거고 저 역시 그중 하나였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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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 지금은 날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야. 물론 그 마음이 진심이란 것 알아.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게 꼭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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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감당해. 오욕이든 추문이든. 일단 그 덫에 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인생이라는 법정에선 모두가 유죄야. 사형선고 받은 죄수가 하는 말이니까 새겨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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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어 봤다.
알쓸신잡에서 나오는 작가의 표현과 지식에 반해서 책을 구매를 했다가 이제서야 읽었다는.

사실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다른 소설에 비해 재밌다고 말을 하지는 못하겠다. 본적이 없기 때문에.

다만 7편으로 이루어진 이 단편집 하나하나가 다 흥미로웠고 몰입감도 엄청났다. 그래서 책을 펼친지 5시간만에 다 읽었다는.

오늘 서점가서 김영하 작가의 다른 소설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근데, 하루에 두종류의 소설의 감정을 오롯이 느낀다는건 참 힘들구나.
다음엔 좀 쉬운 책 읽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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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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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번째책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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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기 떄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은 답서를 할 것이다. 우리의 편지가 길게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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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오래 침묵했고
과거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조금 안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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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마음에 들이지 않은 채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는 왜 나밖에 되지 못할까 하는 자조 섞인 물음도 자주 갖게 된다.
물론 아주 가끔, 내가 좋아지는 시간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시간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어떤 방법으로 이 시간을 불러들여야 할지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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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하든 문학을 하지 않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현실은 꽤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하게 하고 또 감내하게 만든다. 물론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닌 스스로가 원한 삶을 사는 것이니 불평을 길게 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문득 삶이 막막해지거나 아득해질 때 비슷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술은 큰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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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나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미신 같은 말을 잘도 믿고 지키며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정작 믿어야 할 사람에게는 의심을 품은 채 그 사람과 그의 말을 믿지 않을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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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대를 애정하는 마음보다 상대가 나를 애정하는 마음이 작을 때 우리는 짝사랑이라는 병에 든다. 이 병은 열병이다. 발병부터 완치까지 나의 의지만으로 시작되고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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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연애는 상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자라나 있을 때 시작되는 것이므로 연애의 시작은 사랑의 시작보다 늘 한발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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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 내리는 정의들은 너무나 다양하며 그래서 모두 틀리기도 모두 맞기도 하다. 다만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언제나 참일 것이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여전히 이 세상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다면 그 이유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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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나에게는 여행같은 것으로 남고
당신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하지 못할 앞으로의 먼 시간은
당신에게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나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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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고 글자를 눈에 읽히는 순간 틀어놓은 노래를 껐다.

온전히 이 책에 들어있는 글에 집중하고 싶어서.

중간중간 읽다가 소름이 돋는 부분도 있었고 울컥하는 부분도 있었다.
시인이 쓴 산문집이라 그런지 기존 산문집과 다르게 시적인 표현들이 참 많아서 시집을 읽고 있는건가 생각이 많은 책이었다.

처음에는 제목은 좋은데 표지가 좀 약하다 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내용을 다 읽고 나니 이래서 표지를 이런 느낌으로 만들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오랜만에 박준시인의 시집도 꺼내서 읽어 보고 싶어졌다.



#다음엔뭐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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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 - 나를 여행으로 이끌었던 것들의 온기
이현숙 지음 / 팬덤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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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9번째책

여행하고 싶다면 젊었을 때가 좋다.
무엇을 하든 눈부실 테니.
여행하고 싶다면 나이 들었을 때가 좋다.
누구든 기꺼이 당신을 도와줄 테니까.
때와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신이 원한다면
그곳이 어디든.
-
나는 길 위에서 길을 잃었고
길 밖에서 길을 찾았어.

바로 내가 길이었거든.
-
인생에 겹치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순간이 낯선 시간이야.

내 이마에 내리는 햇빛도
저 벽에 쏟아지는 햇살도
어제의 것은 하나도 없어.
-
무심히 지나가는 풍경들
사라지는 모든 순간들
흩어지는 세상의 소리들
언젠가는 몹시 그리워지겠지

모든 것은 단 한 번뿐이니까.
-
누군가 너의 사진이 되었고
너는 나의 사진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무엇으로 살고 있다.
-
서점 문을 열자마자 책 냄새가 훅 얼굴을 덮쳤어.
코로 들어오는 냄새가 아니라 몸에 끼얹어지는 냄새였어.
나무의 몸통에서 책의 겨드랑이로
그리고 다시 나의 신경을 타고 온몸으로 전이되는 글의 채취.

비는 계속 쏟아졌어.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꼼짝없이 서점에 갇혀 버렸는데 그게 그렇게 좋더라.
비 오는 날 우산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낭만적인 핑계가 될 줄은.
가끔은 꼭 있어야 할 무엇이 없을 때가 더 좋기도 해.
-
시간은 그냥 저 혼자 흐르는 것인데
사람들은 거기다 속도의 개념까지 씌어 버렸다.
빨리 가 봐야 몇 걸음 앞인데도
서로 먼저 가려고 야단이다.

느린 것을 참지 못해
자동차와 비행기를 만들고
인터넷이라는 멍청한 신까지 만들었다.
기다림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불평한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오늘도 우리는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시간에 갇힌 자신을 보지 못한다.
-
당신은 나를 잘 모르지만
나는 당신의 평생을 보았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세상과 이별하는 날
나도 당신과 이별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그림자입니다.
-
옷이 화려하다고
그림자까지 화려하지는 않아.

옷이 초라하다고
그림자까지 초라하지 않은 것처럼.
-
‘사ㅡ랑‘이라고 소리 내 말해 봅니다.
입이 활짝 열렸다가 혀끝이 둥글게 말려 입천장에 닿습니다.
입을 다물고는 사랑을 말할 수 없습니다.
혀가 뻣뻣해서는 사랑을 부를 수 없습니다.
닿지 않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랑은 없습니다.

모름지기
사랑은
열리고
둥글어지고
닿아야 하는 일입니다.

당신은 사랑을 어떻게 부르시나요?
-
-
-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시집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성적인 표현이 참 많은 책인듯.

글 옆에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이 있고 작가는 이 순간을 찍으면서 이렇게 느꼈다고 생각을 하니 더 좋은듯.

#다음엔뭐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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