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싫어서 - 퇴사를 꿈꾸는 어느 미생의 거친 한 방
너구리 지음, 김혜령 그림 / 시공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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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회사에서 쓰러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 때문이 아닌
내가 회사에 왔음을
상사에게 확인시켜줘야 한다는 마음에.
-
˝형은 꿈이 뭐예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는 거.˝ ‘배우‘는 ‘직업‘인데,
그에게 ‘일‘이란 곧 ‘연기‘일 텐데,
그는 ‘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일‘을 꿈꾸며 사는 그의 대답이
매일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는 나에게
계속 머문다.
-
하나. ‘내가 좀 손해 보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지만
회사에서 손해 보고 산다는 건
곧 호구 인증이라는 것을 뼈아프게 느끼고
회사에서만큼은 할 말을 하게 되었다.

둘. 나는 ‘사람이 먼저다‘라고 생각했지만
회사에서는 일이 먼저였다.
언제부턴가 나도 상사-동료 들을
일 잘하는 사람-일 못하는 사람으로 구분한다.
-
팀장님.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팀장님 때문에
제 속에서 천불이 나고 있잖아요.
-
퇴근 후에는,
주말에는 제발 나한테
전화 좀 안 했으면 좋겠다.

할부로 산
100만 원짜리 휴대전화를
자꾸 던져버리고 싶다.
-
주어진 일에 대한
수많은 물음을 뒤로하고
단 하나의 물음에만
집중하고 있다.

월급날이 며칠 남았지?
-
1년 전에 경험해본 한 번의 백수 생활.
이미 한번 겪어봤기에
처음보다는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두 번째 백수를 꿈꾸지만
동시에 과거의 그 경험이 자꾸 발목을 붙잡는다.
-
어떤 날에는 ‘회사를 그만둬도
참 잘 지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생기면서 말이다.

그런데 또 어떤 날에는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백수 생활이 떠올라
덜컥 겁이 난다.

언제 이 회사를 그만둘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날마다 다르게 느꼈던 이 두 마음을
계속 번갈아 껴안으며 지내지 않을까 싶다.
-
내가 가진 시간을 주고
그 대가로 한 달에 한 번 돈을 받는 행위가
버거워지는 요즘.

지금껏 잘 버텨왔으니,
지금도 잘 버텨내고 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잘 버티길.
-
내 맘 같지 않게 진행되는 일들 때문에
나날이 한숨이 늘어가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러는 와중에도
예측하지 못했던 작은 기쁨들이 함께할 것이라 생각하니
내 맘 같지 않게 흘러가는 순간들도
잘 껴안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이 나이쯤 되면
막연히 ‘뭐‘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올해를 일주일 남겨둔 지금,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뭐‘가 되고 싶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막연하기만 했다.
-
회사에서 생긴 짜증
회사에서 풀어야 하는데
괜히 집에 와서 푼다.

아무 잘못 없는 우리 엄마.
미안해 죽겠다.
-
찝찝한 감정을 추스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밥을 먹고 소화시키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한데

회사는 퇴사를 고민하는
내 마음 추스를 틈도 없이
참 한결같이 나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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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싫다는 것.
결국
사람이 싫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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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잘했어˝라는 말을 듣기 위해,
순간의 뿌듯함과 보람을 위해
계약된 시간 이상으로 에너지를 쏟아내다 보면,
그리고 그게 몇 번인가 반복되다 보면
지금 내 행동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문듣 깨닫는다. ˝역시˝와 ˝잘했어˝는
입 밖으로 내뱉어짐과 동시에
흩어지는 ‘말‘일 뿐이었다.
-
업무량은 넘쳐나는데
인력 충원 없이 직원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이 조직의 잔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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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는 일 없이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이따금 회사 생활에 지쳐 한숨지을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만약 지금 당신이 회사를 쉬고 있다면, 지금 하는 일 없이 보내는 시간이 훗날 고된 일상에 찰나의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지금도 훗날에도, ‘지금‘은 가장 좋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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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보니 역시 어느 회사나 다 똑같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위에 선임이나 더 위에 선임들도 분명 자기들도 겪었을 터인데, 왜 이렇게 밖에 못하지 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리고 정녕 나도 저렇게 되는걸까 라는 의구심이 든적도 있다.

군대 있을때 나는 저런 선임은 안 될거야, 라고 말하고 그 말을 지키려 부던히 노력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다니.

생각해보면 회사라는 큰 타이틀에 우리를 맞추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 역시 나도 저렇게 될 수 밖에 없게 되는건가 싶기도 하고.

요즘에 퇴사를 꿈꾸고 있는 나라서인지 이 책이 더 크게 와닿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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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2017-01-1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굉장히 수려한 글솜씨군요 저도 공직 의원면직한지가 1년이 다 되가서 너무 공감되어서 처음으로 댓글 답니다 무엇을 하시든 잘 헤쳐나가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