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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인초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이곳은 희극만이 유행한다네.
꽃잎 하나 하나 바라보며 정취에 잠기는 꽃놀이를 즐기 듯, <우미인초>는 따뜻한 봄날,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곱씹어 읽어야 하는 책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 아름다운 문장으로 인간의 도리를 노래하고, 죽음에 의미를 부여한다.
<우미인초>에서 가장 인상깊은 인물이 있다. 바로 후지오와 후지오의 엄마다. 소세키는 후지오를 자존심의 여자, 후지오의 엄마를 수수께기의 여자라고 표현했다. 그 둘을 이보다 어찌 더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자존심을 확인하고 싶어 타인을 조정하려하고,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타인의 사랑을 짓밟은 후지오와 그런 그녀의 자존심을 부추겨 자신이 원하는대로 요리하려 드는 후지오의 엄마에게 정말 딱 들어 맞는 표현이다. 자신의 본심은 숨긴채, 남의 본심을 읽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 정확한 답대신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 이도저도 아닌 대답을 늘어뜨려놓는 사람들, 지금 세상엔 후지오와 후지오 엄마같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고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세상은 후지오 같은 여자가 너무 많아 곤란합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하지요."
"후지오가 한 명 나오면 어제저녁에 본 여자 같은 사람 다섯 명은 죽일 겁니다."
고노의 계산법대로라면 2014년 지금 세상엔 후지오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후지오 같은 사람으로 몇 명이나 죽었을까?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렇게 죽인게 아닐까? 내 마음 속이라고 후지오와 후지오 엄마같은 더러움이 없는 건 아닐테니까말이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최소한의 방패같은 거라고 말하며 자신의 합리화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후지오와 결혼하기 위해 5년동안 자신을 기다려온 여자에게 파혼 통보를 한 오노에게 , 무네치카는 인간의 도리를가르쳐주었다. 인간의 도리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이 말이 아련하게 정말 아련하게 느껴진다. 우린 인간의 도리를 얼마나 지키며 살고 있을까? 오노를 통해 마치 영겁의 세월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자신만을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 자신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인간의 도리따위는 내팽겨치고 자신이 유리할 때만 외치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랐다. 다행인건 오노는 그래도 겁쟁이었기에 무네치카의 말에 수긍를 했다는 것이다. 다만, 후지오와 후지오 엄마에게는 좀 더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나쓰메 소세키는 죽음을 말한다. 앞만 보며 삐뚤게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붙잡고 세우려 해도, 달리기만 할 뿐 멈출 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떤 말도 그들의 가슴에 남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노 역시 후지오와 의붓어머니(=후지오의 엄마)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나쓰메 소세키는 후지오의 엄마에게 죽음을 선물해줄 수 밖에 없었으리라. 죽음과 같은 강한 자극만이 그들을 멈출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의 관념이 극도로 쇠퇴하여 삶을 원하는 만인의 사회를 만족스럽게 유지하기 어려울 때 돌연 비극이 일어난다. 여기서 만인의 눈은 모두 자신의 출발점으로 향한다. 비로소 삶 옆에 죽임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멋대로 미친 듯이 춤출 때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경계를 벗어나 죽음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을 안다. 다른 사람도 나도 가장 싫어하는 죽음은 결국 잊어서는 안 되는 영겁의 함정이라는 것을 안다. 함정 주위에서 썩어가는 도의의 밧줄은 함부로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밧줄은 새로이 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제이의 이하의 활동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하여 비로소 비극의 위대함을 깨닫는다.
희극은 비극과 함께 할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나쓰메 소세키는 말한다. 내 삶은 어떠할까? 당신의 삶엔 희극과 비극이 함께 존재합니까?
두 달 뒤 고노는 이 한 구절을 발췌하여 런던에 있는 무네치카에게 보냈다. 무네치카는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이곳은 희극만이 유행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