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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과 서 - 동양인과 서양인은 왜 사고방식이 다를까 - EBS 다큐멘터리
EBS 동과서 제작팀.김명진 지음 / 예담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동양인은 전체를 보고 서양인은 부분을 본다...등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굳이 우열을 가리자는 건 아니지만 내용으로만 본다면 동양의 판정승(?) 같다. 그런데 이런 연구를 수행한 사람이 누구냐를 볼 때 동양의 섣부른 판정승이라 단정짓는 것은 위험하다. 이 연구 자체가 서양의 지식 생산기지인 대학이라는 체제 속에서, 특히 심리학이라는 근대 과학의 원리와 지도 아래 진행된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동양인 교수도 나온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는 교수들이다). 누가 이런 연구를 왜 애시당초 기획을 했고 구상을 했느냐에 있어 동양이 주도권을 뺏긴 것이라 본다면 너무 경쟁적인 시각일까?
동양의 판정승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현대 대한민국이라는 '동양'이 얼마나 책에서 주장하는 동양적 가치를 잘 실현하고 있으며 또 그에 따라 조화롭고 전인적인 삶을 실제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내가 볼 때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지금의 동양은 온전한 동양이 아니라 서구 근대화에 의해 '변형된 동양'이다. 제도, 문물 등 많은 부분이 서양의 수입물로 채워져 있으며 젊은 세대들은 세련됨, 현란함, 독립적, 시각적, 속도, 개인 등의 표현으로 대변되는 서양적 가치를 더 우수한 것으로 생각하며 숭앙하고 있다.
책과 다큐에서 내세운 우수한 동양적 가치를 실제로 구현하며 사는 '동양적 행복'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누렸으면 좋겠다. 그를 위해 필요한 지혜 또한 우리의 동양적 사유방식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하며...
실제로 서양 사람들은 이 책에서 얘기한 동양적 사고방식을 자기네들이 갖추지 못한 시각, 인류의 보다 높은 지혜의 완성을 위한 소중한 자산으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현하며 살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할까?
이 책을 통해 동양과 서양, 그 둘의 만남의 양상과 의미, 그리고 나아가 우리가 어떤 자세로 서양을 맞이해야 하는가에로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동양의 것이라 무조건 고집하고 서양의 것이라 무조건 거부하는 자세(혹은 그 반대)보다 무엇이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 판단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한편, 동양(인)에게는 동양적인 '무엇'이, 서양(인)에게는 서양적인 불변의 특성(property)이 있다는 생각 자체도 서양적 단견일지 모른다(이는 위에서 얘기했던, 서양 학자들이 쥐고 있는 연구의 주도권 문제와도 관련이 있겠다). 모든 것은 주변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겨나고 유지되다가 소멸되는 일종의 '과정(process)'일 뿐이라는 것이 더 동양적 지혜에 가까울 것이다. 혹시 한국에 오래 산 미국인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종종 그가 미국 사람보다 한국 사람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직관적으로 가져본 적이 있다.(미국에 오래 산 한국 사람도 별로 한국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은 서양보다 동양에 더 가깝다. 결국 동양과 서양에 귀속되는 속성, 특질, 유전자가 있다기보다 문화라고 일컫는 주변 환경에 의해 끊임없이 형성되고 유지되다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유연한 태도로 그런 흐름을 타고 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