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의 시간 -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아베 나오미.아베 사토루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누구나 도시락의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또는 소풍에 가서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던 기억,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하하호호 즐거움을 나누며 먹었던 기억 등등..

 지금은 대부분 급식을 하기 때문에 어떨지 몰라도 나에게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친구들과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던 즐거운 기억이 있다. 우리집 김치가 맛있다며 재빠르게 집어 먹던 친구들, 키가 작아 걱정이라며 어머니가 매일 싸주신 치즈를 먹기 싫다면서 항상 나에게 주었던 친구, 맛있는 반찬 다 빼앗길까 한 젓가락이라도 더 사수하려 애쓰던 내 모습, 가방에 쏟은 김칫국물 때문에 혼이 났던 기억, 소풍 가서나 운동회 날 맛있게 먹었던 김밥 등등. 도시락에 관한 추억이 아직도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땐 맛있는 반찬을 싸가져 갈 때면 나도 모르게 절로 어깨가 으쓱 올라가기도 했었다.
 
 「도시락의 시간」에는 서른 아홉명의 도시락에 관한 추억과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담겨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단정하니 맛이 있어 보이는 도시락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이 도시락들을 행복하게 먹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부러우면서 한편으로 그리워지기도 했다.
 

간단하지만 일하다 잠시 짬을 내어 먹을 수 있는 이 주먹밥을 8년째 먹어왔다는 츠치야 츠기오씨. 아침에 직접 마트에서 장봐온 것으로 빠르게 만들어 싸가지고 나온다고. 빠르게 만들기 위해 몇 년에 걸쳐 노하우를 익혔단다.

 

고양이가 참치를 먹다 남겨야만 먹을 수 있다는 마츠이 도시오씨의 도시락. 고양이들이 참치를 먹는 날이 아니면 이 도시락을 쌀 수 없기 때문에 회사식당에서 먹는단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정성어린 아이디어로 아이들 사이에서 도시락 영웅이 되곤 했다는 키타하라 다카노리씨. 몸을 가볍게 하면서도 든든하게 하려고 항상 절반은 야채를 싸가지고 온단다.

 

말이 좋아 말 하나만 보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금의 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다치바나 나츠키씨. 고생하는 딸을 위해 일터의 여건을 고려해 매번 얼린 반찬을 어머니가 보내주신다니 그 정성이 정말 대단하다.

 

도시락을 생각하니 농사일에 바쁘신 와중에도 도시락을 챙겨주셨던 부모님이 생각났다는 스즈키 다카히로씨. 그 도시락에 김으로 "공부해!", "바보"같은 글씨가 쓰여있었다고 한다.

 
 서른 아홉명의 추억을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다. 각자의 사연이 담긴 도시락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간혹 눈시울을 붉히게도 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사진 속 반찬에 계란말이가 참 많이도 있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 중 하나이기도 해서 반가웠다.
 
 요즘은 다들 바깥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급식 혹은 편의점에서 파는 저렴하고 그럭저럭 먹을만한 도시락을 많이 먹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가 없다. 매일 도시락을 준비하려면 귀찮기도 하고, 반찬 문제로 골치가 아프기도 하겠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맛있는 추억으로. 이 책을 보면서 옛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문득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 먹고 싶어졌다. 흰 쌀밥에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비엔나 소시지가 들어 있는 도시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트로베리 나이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스트로베리 나이트. 직역하면 딸기 밤(;) 달콤한 제목인데 장르가 미스터리라기에 미스터리와 딸기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무지 궁금해져서 빨리 읽어보고 싶었다. 결국 쌓여있던 많은 책들을 뒤로 하고 구입하고 금방 읽어버렸다.  읽고 보니 제목부터 호러가 따로 없었다.
 
초반부터 충격! 충격!! 충격!!! 끔찍한 사건이 펼쳐진다. 끔찍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 짐승만도 못한 일을 자식에게 하는 부모의 행위들을 보니 비록 허구의 소설이지만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실제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사람 같지도 않은 부모를 아이가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르는 이야기로 충격적인 이 소설을 시작된다.
 
스너프라는 용어를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보고 너무 놀라 아무 생각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을 살해하거나 사람에게 가혹한 행위를 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보는 사람이 있다니... 실제든 거짓이든 그런 것을 찍는 사람이나 호기심일지라도 보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바로 이 책에서 스너프와 관련된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살인 영상을 보여주고 '이 광경을 실제로 보시겠습니까?' 라는 메시지에 '예'를 누르면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초대장을 받는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초대받은 곳으로 가면 그곳에서 벌어지는 '살인쇼'를 보게 되는 것이다. 헌데 더 무서운 점은 살인쇼 무대에 올려질 희생자는 초대 받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는 것. 그것을 알면서도 계속 보러 가는 사람들은 두려우면서도 살아남아 살인쇼를 보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아마 다음 쇼에 가기전까지의 삶을 선물 받은 느낌인걸까. 이 사람들의 삶은 오랫동안 아무 의미 없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또렷이 느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어느 책에서 유서를 쓰고 나서 하루 하루를 더욱 충실히 살게 되었다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이 책의 경우는 있어서는 안될, 극단적이고, 끔찍하지만 비슷할지도...
 
책 띠지의 홍보 문구를 보고 「스트로베리 나이트」를 검색해보니 일본 드라마가 검색되어 나왔다. 책도 재미있게 봤겠다! 드라마도 한번 볼까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글의 묘사가 너무 잔혹하고 끔찍해서 그 장면을 선명하게 눈으로 볼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난 사람이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이야기는 영상으로 도저히 보질 못한다. 실제로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이 드라마도 보기를 포기했다. 강한 심장을 가진 사람들은 책을 보고 드라마를 봐도 괜찮을 듯. 
 
초반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중반의 살인쇼 묘사에 또 한번 충격을 받고 (조금 상상을 해봤더니) 후반에 밝혀지는 범인들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려고 한다. 직접 보시기를 바란다. 질질 끌리는 느낌없이, 묘사들 때문에 좀 인상이 찡그려지더라도 재미는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화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 인류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꿀 권리가 있다
아르노 그륀 지음, 조봉애 옮김 / 창해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인간은 왜 폭력성을 보이는걸까?
인간은 왜 같은 인간을 죽이는걸까?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권력자들이 왜 학살을 저지르고, 잔혹해진걸까?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하고, 강력한 무기를 갖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하나의 수단이 된 현재에 총, 칼 없는 평화를 이룰 수는 없는 것일까?

 

「평화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다.」의 저자 아르노 그륀은 인간은 본래 선하고 창조적이며,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 즐겁고 행복한 삶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쩌다 악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걸까.
아르노 그륀은 천편일률적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같은 삶을 강요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와 어렸을 적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억압에 그 이유를 두고 있다.

 

 오늘날에는 '나와 남의 치열한 경쟁'이 진리인 것 마냥 인식되고 있다. 최고가 되기 위해선 남을 이겨야 하고, 지는 것은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 타인과 협력관계를 맺기 보다는 짓누르고 이겨야할 존재로 인식한다. 이런 생각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주입되어 진리가 되고, 훗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훈이 된다. 이러한 바탕에서 충실히 살아온 사람들은 타인과 협력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사람들을 철이 없고, 현실은 생각하지 않고 이상만 꿈꾸는 사람이라고 비웃는다. 정말 사람들은 경쟁이 아닌 협력과 배려로 평화를 이루며 살 수 없는 것인가?

 

 저자는 인간을 결속시키는 것은 감정이입, 즉 공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공감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폭력성을 보이고, 악한 본성을 드러내는데, 공감능력을 상실하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살인을 한 사람들의 몇 가지 예를 통해 본 바로는 이렇게 폭력성을 가진 사람들 곁에 권위적이고 복종을 강요하는 부모들이 있었다. 이 부모들은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쟁 사회 속에서 예민한 감수성과 타인을 향한 따뜻한 애정은 나약한 것이라며 벌을 주고, 부모가 바라는 삶을 살도록 강요했다. 결국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아이들은 부모가 바라는 모습과 자신이 원하는 모습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고 보살핌을 받기 위해 거짓된 자아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이렇게 독립된 자아로서가 아닌 거짓된 삶을 살게 된 아이는 자존감을 잃게 되고, 그로 인해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이들의 고통은 어른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별 게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 쉽상이다. 나약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사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환경에서 결국 아이는 내면에 자신의 감정을 떼어내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아이들이 감정을 우습게 여기고,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법을 모르는 어른으로 자라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결과는 약한 사람에게 폭력성을 보이거나,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하게 된다는 것. 다른 사람을 죽임으로써 자신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는 것이다. 한 살인범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이 필요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히틀러의 예를 들었는데, 히틀러는 보기에 강인해보였지만 실제로는 나약한 인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고통과 절망을 자기 스스로 극복하지 못해, 사람들이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못할, 위대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절망에서 탈출하는 길이라 여긴 것이라고. 히틀러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지 않았던 부모로부터 어린 시절 따뜻한 경험을 하지 못한 상실감을 없애기 위해 다른 사람을 장악해야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p.116~117
아이는 자신이 육체적 · 도덕적으로 무력하다고 느낀다. 아직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모의 강압적인 힘과 권위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분별 능력마저 상실하고 만다. 불안이 극에 달하면 아이는 자동으로 공격자의 뜻에 굴복하고, 공격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며, 마침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고 공격자와 동일화하는 단계에 들어선다.

p.136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기대에 자신을 맞춰야만 시선을 끌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자신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감정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분노 어린 진짜 감정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든다. 그럼으로써 연기하는 배우가 되어 타인과 진정으로 공감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이런 부모 안에서, 사회 안에서 자란 사람들이 권력에 탐닉하게 되는데 이 사람들은 거짓된 겉모습 치장에 능하다.  삶에서 고통과 불안을 느끼는 대중들은 이런 현란한 겉모습, 강인한 모습에 현혹되어 지지하고, 의존하면서 전쟁에도 합세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이 말도 안되게 잔혹한 전쟁명령을 '성스러운 수행'으로 여기며 수행하게 한다고 말한다.

공감이 절실하다.

p.188
"이웃을 도울 수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도울 수 없다. 이것은 사랑과 공감을 지속시키며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들어가 그것을 나누는 우리의 능력이자 인간이라는 종이 계속 살아남기 위한 기본 원리다."   -달라이 라마

 

 어린 시절 있는 그대로의 본모습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정면으로 맞서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 사람은 어떤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도 자존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타인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저자는 교육과 이성만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타적이고, 자신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고통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과 대화를 해야한다고. 함께 공감하고 연대를 맺음으로써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육아서는 아니지만 읽어보면서 부모로서 경계해야할 것들을 느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인간이 본래 선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이 훗날을 좌우한다고. 숱한 매체를 통해 어린 시절 부모의 육아방법이 인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한번 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그냥 평화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어른으로서도.

조금 아쉬웠던 점은 반복된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스물아홉이다.

나는 뚱뚱하고 못생겼다.

나는 혼자다.

나는 취미도, 특기도 없다.

나는 매일 벌벌 떨면서 간신히 입에 풀칠할 만큼만 벌고 있다.

 

작가의 경험이 담긴 이 책은 스물아홉살 생일날을 자축하는 3평짜리 원룸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4년제 대학 졸업에 취업난 속에서도 금융회사의 정사원 자리를 얻었을 정도로 아마리(작가)는 나름대로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일이 잘 맞지 않아 1년 뒤 그만두고 난 후  고난은 시작된다. 그 이후 정사원 자리에 취직을 하지 못하고 파견직원으로 3개월마다 재계약할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며 살게 된다. 그러다 29살 생일날... 친구도 없이 3평짜리 좁은 원룸에서 촛불도 다 꽂지 못할만큼 작은 조각케이크 하나 올려놓고 자축하던 아마리는 현재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절망감을 느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첫번째, 하고 싶은게 없다는 죄!

이 책을 보는 사람들 중 다수는 공감하지 않을까?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잘 모르고, 그걸 생각해볼 시간도 갖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살아온 사람들이 많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나도 최근까지 그래왔다.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안보이고, 주위의 어른들은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하고, 막상 대학 문턱을 넘어 넓은 곳으로 나아가면 세상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음을 깨달아 그나마 잘한다고 생각했던 공부도 시들해져 버리고 말이다.

그래서 가슴 떨리는 꿈을 가지고 달려온 사람들이 항상 부러운 대상 넘버원이었다.

가난하게 살게 되더라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라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마음 속에 진하게 새겨졌다.

 

두번째, 세상은 널 돌봐줄 의무가 없는데 안정된 생활만 바라고 편안한 삶에 안주한 죄!

갓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때까지도 돌봐주던 세상이 어느 한 순간 저만치 뒤로 물러났다고 느꼈을 때의 그 느낌이란...

안정된 그늘 안에서 편하게만 살아왔던 나에게 혼자된 느낌이란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어른이 되었으니 혼자 감당해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상대방을 얼마나 원망했던지...  남탓도 참 많이 하고, 아마리와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느끼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나란 인간, 과연 살 가치가 있는 걸까?'

스물아홉이 지나 서른살이 되면 세상은 더 가혹지지 않을까! 그래서 아마리는 슬퍼할 사람이 조금이라도 남았을 지금 죽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죽는 것 마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살고 싶지도 않고 죽지도 못하고 자괴감에 빠져있던 그 때 운명처럼 눈에 들어온 티비 속 라스베가스 영상.

어차피 죽을거라면 미련도 남김없이 남은 생 단 하루라도 호화롭게 살아보자고 결심한다.

그렇게 시작된 아마리의 고군분투.

호화로운 단 하루를 위해 목표를 세우고,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용기로 밀어부치면서 아마리의 눈에 흐릿하던 세상이 점차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p.62 '기적을 바란다면 발가락부터 움직여 보자.'

 

p.86 외톨이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됐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무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외톨이인 것이다. 

 

p.122 "출세니 성공이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잣대를 갖는 거라고 생각해. 세상은 온통 허울 좋은 포장지로 덮여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만의 눈과 잣대만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야. "

 

p.156 "요즘 여자애들은 서름만 넘으면 나이 들었다고 한숨을 푹푹 쉰다며? 웃기지 말라고 해. 인생은 더럽게 길어. 꽤 살았구나, 해도 아직 한참 남은게 인생이야. 이 일 저 일 다 해보고 남편 자식 다 떠나보낸 뒤에도 계속 살아가야 할 만큼 길지. 100미터 경주인 줄 알고 전력질주하다 보면 큰코다쳐. 아직 달려야 할 거리가 무지무지하게 많이 남았는데, 시작부터 힘 다 쏟으면 어쩔 거야? 내가 너희들한테 딱 한마디만 해줄게. 60 넘어서도 자기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게 뭔지 잘 찾아봐. 그걸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란 말이야."

 

p.233 인생에서의 마법은 '끝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몸으로 깨달았다.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인생의 끝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살아갈까? 지금도 상상할 수는 없지만 인생의 끝을 생각해보면 아마리처럼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것만 같다.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며 펼쳐든 이 책이 마지막까지 울컥임을 느끼게 했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이렇게 많은 걸 느낄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내 목표를 생각해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해준 책!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의 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울고 싶은 날에는 마늘을 깐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박범신 소설가의 평 그대로 슬프지만 우습기도 하고, 안타깝지만 웃기다.

 

주인공 김영수는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셀러리맨이자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다. 어느 날 회사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어 실직상태에 놓인 주인공은 취업전선에 뛰어들지만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 마늘까기 부업을 시작한다. 그 다음 인형눈 붙이기, 종이학, 공룡알 접기..

아무생각 없이 기계처럼 단순노동을 하니 사는게 사는 것 같지 않아 힘들어하던 차에 부업 일감을 주던 아주머니가 취직자리 한군데를 추천해준다.

동물원에 취직하기 위해 한달 동안 체력훈련을 하고 (시험을 봐야하는데 시험이 윗몸일으키키, 오래매달리기, 멀리뛰기 등..) 취직에 성공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동물원 첫 출근을 한 날.. 김영수가 하게 된 일은 동물원 우리에 있는 고릴라.

그 동물원의 우리에 있는 동물들은 죄다 탈을 쓴 사람들이었던 것.

회의감에 빠져 겨우겨우 어쩔수 없이 버텨갔지만, 같은 우리에서 같은 일을 하게 된 세명의 고릴라(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차츰 적응을 한다. 그리고 김영수는 마지막까지 세렝게티 동물원의 고릴라로 남는다.

 

p. 29

본드의 속삭임은 은밀하면서도 달콤했다.

 " 우리 함께 꿈과 환상의 나라로 떠나요."

물론 환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몸에도 이상이 나타났다. 하는 일도 없이 늘 피곤했다. 가끔씩 헛구역질도 났다. 하지만 현실에 갇혀서 질식사하는 것보는 낫다고 생각했다. 본드는 산소마스크였다. 본드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주인공 김영수가 집에서 부업일로 인형눈 붙이기를 할 때, 그 현실이 견디기 너무도 힘들어 본드를 하는데.. 김영수의 상황이, 생각이 참 가슴 아팠다. 본드를 하며 환상속에 빠져 겨우겨우 버텨가고.. 환상 속의 이야기도 그리 아름답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먹고사는 일은 왜이리 힘이 든거냐며 우울해할 때는 참 공감이 많이 갔다.  

사람이 동물원의 동물로 일을 한다는게 처음엔 정말 비참하겠구나.. 주인공이 너무 가여웠는데, 현실에서 쓰디쓴 맛을 겪고 동물원에 와서야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보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실에서 사람구실 하려고 애쓰다 뒤돌아보니 사람답게 살고 있지 못했고, 오히려 사람구실을 안하고 살게 되니 사람답게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p.214

"그리고 동물원에 있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구실 같은 건 안해도 돼. 솔직히 이 나라에서 사람 구실 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고. 난 거의 없다고 봐. 하지만 동물원은 달라.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야. 웃기지? 내가 그랬잖아. 사는 게 코미디라고."

 

안타깝게도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표면적으로는 이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마지막까지 김영수는 세렝게티 동물원의 고릴라다. 하지만 마지막 그가 슬퍼보이지 않는 것은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어쩌면.. 오히려 현실에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더 힘들다.

겉으로는 정말 멋지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속은 사람다움을 포기한, 썪어문드러진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지만...후후

 

슬프면서도 우스운 이야기.. 처절한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담은 이야기.. 지금의 나는 사람답게 살고 있는건지 생각해본다. 한동안 여운이 길게 남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