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은 아름답다
우은정 지음 / 한언출판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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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대 졸업에 24살의 나이로 사법고시까지 패스한 저자. 그녀가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기 전 입소까지 미루며 그동안 꿈꿔왔던 일을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바로 해외여행 가기. 공부하며 힘들다 느껴질 때, 눈 앞에 붙어 있는 세계 지도를 보며 이겨냈다던 그녀는 일 년 간의 해외 여행을 위해 일 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비용을 마련했고, 여행지에 대한 공부도 하고 정보도 모으고 하며 계획을 짰다고 한다. 언어 공부 뿐만 아니라 가 볼 나라의 역사 공부도 했다고.

 
 철저한 준비를 마치고 떠난 여행에서 저자는 319일이라는 시간을 타국에서 보내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에 착실하게 사용했다. 책을 통해 본 그녀는 물이 부족해 몇 일을 씻지 못할 때도 있었고, 하루 가까이 차 안에서 밥도 못 먹고 쪽잠을 자기도 했으며,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무지막지한 바가지 요금에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놀랄 정도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환대와 도움을 받기도 했고, 각 국의 외국인들과 한 데 어울려 즐겨보기도 했으며, 그 안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도 했다. 첫 여행지 남아공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여행지와 다름 없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르기까지 짜증나고 화나고 힘든 상황도 있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여태 좁은 틈에서 자기도 모르게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가르침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 안이라고 해도 내 집, 내 가족을 떠나 여행을 한다는 것을 '큰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온 나는 저자의 그 용기가 정말 부러웠다. 그 느낌의 반의 반이라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부러움과 함께 '나도 한 번..'이라는 마음이 슬그머니 일었다. 1년이라는 시간을 내지 못하더라도 딱 한 달만이라도 불확실한 낯선 세계에 한 번 떨어져 봤으면...
모험은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안정적인 것만 바라는 사회 속에 있다 보니 점점 소극적이 되어 가고, 불확실한 것에 대한 불안이 때때로 밀려 들어와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 장소, 그리고 심지어는 나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겐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나니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내 인생을 한 번 뒤흔들어 볼 경험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느낌들을 보며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건 나에게 단순한 여행 수기가 아니었다.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반성하고, 더 큰 세계를 보라고 독려하는 글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고 난 지금. 나도 계획이란 걸 세워보려고 한다. 당장은 해야할 목표가 있기 때문에 잠시 미뤄두지만 이 목표점에 다다르면 반드시 모험을 해보리라. 안으로 밀어두었던 자신을 찾고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서.
표현하기도 힘든 감동과 공감, 도전에의 의욕 등등. 이렇게 많은 것을 전달해 주는 책을 만난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p.53
 우리는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p.106
 바로 그 순간, 내 두 손에 고인 그 물이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아무것도 부럽지 않았다. 씻을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이었다니. 물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니.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써왔던 물이 이렇게 나를 울게 할 줄 누가 알았을까?
 여행을 떠나와 나는 울고 있었다. 너무나 행복해서. 진짜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했다.
 
p.341
 나는 '후회 없는 삶'에 대한 짐도 내려놓았다. 내 좌우명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자'다. 많은 사람들이 후회 없이 살자고 말한다. 후회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다. 그렇지만 오만 감정을 가진데다가 불완전하기까지 한 인간이 후회라는 것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삶은 선택의 연속인데, 선택하는 것이 있으면 포기해야 하는 것 또한 존재하기 때문에 후회가 뒤따르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후회를 하면서 배우는 것은 꽤 많다. 사실 스스로에게 중요한 가치를 알고, 그것을 좇아 살면 자연스레 후회는 하지 않는다. 후회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결국 자신의 선택에 대한 만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후회하지 않는 삶의 시작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다. 또한 후회도 결국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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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셀러 -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반짝이는 사랑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3
아리카와 히로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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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이야기가 나온다. 첫번째 이야기는 두번째 이야기에서 나올 여작가의 소설 속 이야기이다. 조금은 독특한 구성. 두 이야기 모두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러브스토리이다.

 

 Side A와 Side B로 나뉘어져 있는데 A에서는 앞서 이야기 했듯이 두번째 이야기에 나올 여작가의 소설 속 이야기이다.  

첫 줄부터 빨려 들어갔다. 눈이 문장을 줄줄 좇았다. 아니 눈이 문장에 빨려 들어가 빠져나올 수 없었다. 문장이 의식을 모조리 빼앗았다.

 자신이 쓴 소설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과거의 안좋은 기억 때문에 극도로 꺼려하는 여자와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 우연한 기회에 여자의 소설을 엿볼 수 있었던 남자는 그녀에게 푹 빠진다. 하지만 자신의 소설을 내보이는 걸 치부를 내보이는 것과 같이 창피하게 생각했던 그녀는 남자에게 거리를 두게 된다. 아무리 소설의 내용이 좋다고 말을 해줘도 자신을 갖지 못하는 여자. 대학 시절 악의적인 혹평을 받게 된 기억때문이었다. 이런 경우 글을 쓰는 것에 손을 놓아버릴 수도 있었으나 여자는 이른바 '쓸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가치를 알아보는 남자를 만날 수 있었으니 여자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노력에 노력 끝에 여자의 마음이 풀리면서 둘은 결혼에 골인한다. '쓸 수 있는 사람'과 '읽어주는 단 한 사람'의 상황이 계속된 가운데 남자는 여자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여자에게 문학상 공모전에 나가볼 것을 설득한다. 설득 끝에 여자는 공모전에 나가게 되고 대상을 거머쥐게 되어 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행복이 계속 될 것만 같았던 둘에게 어려운 상황들이 계속 되는데 마지막 시련은 여자의 불치병으로 막을 내린다. '치사성뇌열화증후군'이라니... 굉장히 낯선 병명인데 여자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사고'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다. 생각하는 것을 즐기는 작가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병. 결말은 정해진 것이었다.

 

 "전에는 여성 작가가 죽는 이야기였잖아? 이번에는 작가의 남편이 죽는 이야기를 쓰면 어때?"

 Side B는 작가인 아내에게 남편이 하는 말로 시작이 된다.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자와 남자는 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별로 없는 관계였는데 어느 날 남자가 여자의 소설의 열렬한 팬임을 알게 되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된다. 오랜 시간을 사귀다 둘은 당연하다는 듯이 결혼을 한다. 새벽에 글을 쓰고 늦게까지 잠을 자는 여자를 위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다. 여자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남자. 고마운 그를 위해 여자는 남자의 말대로 '스토리셀러'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행복하기만 했던 둘은 병원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조금씩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교통사고로 수술을 하게 된 남자에게서 췌장에 종양이 보인 것. 모든 게 자신이 그런 소설을 쓰게 된 탓이라 여기는 여자는 바뀌기를 바라고 또 바라지만 결국 몇 년이 지나고 남자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소설 쓰는 여자와 그 소설을 읽는 남자의 러브스토리라. 달콤하고 은은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따끔하고 눈시울을 붉힐 묵직한 러브스토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소설은 조금 가벼운 느낌이었지만,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에서 따뜻함을 느끼게 하기에 그저 그런 소설로는 남지 않게 되었다.  줄거리 자체가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결과는 슬픈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저 길게 여운을 끌 만큼의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은 조금 덤덤하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라 조금 아쉬움이 느껴질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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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사회 - 솔깃해서 위태로운 소문의 심리학
니콜라스 디폰조 지음, 곽윤정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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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자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저자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타인과 나누려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두가지를 소문이 탄생하는 요인으로 꼽고 있다.

 

 사람이 두 명 이상 모이기만 하면 온라인상이든 오프라인상이든 온갖 소문들이 여기 저기서 튀어나온다. 이런 소문들은 그냥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거짓인지 사실인지와 상관없이 퍼져나간다. 근거없이 이런 소문이 날리는 없다는 둥,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느냐는 둥. 일단 어떤 소문을 듣게 되면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의 사실관계를 먼저 알아보기 보다는 믿고 보는 경향이 많다.

 

 그런데 좋은 소문이면 그렇다손 치더라도 문제는 나쁜 소문이다. 자극적이고 좋지 않은 소문일수록 날개 돋친 듯 삽시간에 퍼지고 그 위력도 강해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을 느끼도록 하고 집단 간에 분열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저자는 긍정적인 소문보다 부정적인 소물을 더 쉽게 받아들이는 인간의 성향을 '부정성 경향'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좋은 일 보다는 나쁜 일에 더 주의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희망적이고 기분 좋은 소문보다 불안을 조장하는 위협적이고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소문의 비율이 왜 더 많이 차지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게 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소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소문과 뒷담화 그리고 도시괴담은 어떻게 다른지, 왜 소문을 퍼뜨리는지, 왜 사람들은 소문을 믿는지, 소문을 통제하는 방법은 없는지' 크게 다섯 개의 물음에 답을 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나열만 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예와 실험 결과를 제시해주어 이해를 돕는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지만 그 중 특히 소문과 뒷담화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뒷담화가 부정적인 영향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것, 학력이 높은 사람은 소문을 잘 믿지 않을 것 같지만 사건을 파악하고 대처하려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것, 그리고 거짓말이라도 자꾸 들을수록 사실인양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 불안이 사람의 인지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것들이 가장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은 소문에서 자유로워지기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또한 사람이 지닌 본성과 심리적인 이유, 고정관념 그리고 자신이 속한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소문은 논리와 진실 여부에 상관없이 커다란 힘을 가지고 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발 빠른 정보화 시대에 우리가 하루에 듣는 소문의 양도 어마어마 하고 파급력도 굉장하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소문들을 보고, 듣고, 심지어는 좀 왜곡시켜 전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생각해보니 놀랍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저자는 사람이 진실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노력만 기울인다면 거짓 소문에서 어느 정도 빠져 나올 수 있다고 낙관한다.

소문의 흐름에 내맡기지 않고 통제하는 것. 이것이 온갖 루머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진실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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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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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여름에는 연례행사 마냥 친구들과 둥글게 모여 앉아 괴담이야기를 나누며 더위를 잊곤 했다. 지금은 많이 희미해져 이야기가 드문드문 기억날 뿐이지만 그 때 괴담을 들으며, 혹은 이야기를 하며 정수리까지 쭈뼛쭈뼛 해지곤 했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책 「괴담」도 그 때 그 느낌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차마 밤에는 펼치지 못하고 환한 대낮에 읽기 시작했다.
 
 연두와 지연, 인주는 항상 같이 다니는 사이이다. 셋은 같이 합창부에서 성악을 했고, 세명이 모이면 으레 그렇듯이 한 명이 따돌림을 당했는데 그 당사자가 인주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인주가 학교 뒷편 연못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학교를 뒤흔들었고, 침착한 연두와는 달리 어딘가 모르게 정신을 놓은 듯한 지연이 아이들의 입방아의 희생자가 되었다.
항상 함께 다니던 연두와 지연, 그리고 인주는 묘한 관계였다. 연두와 지연은 인주를 견제하기 위해 단짝 친구인 것처럼 굴었지만 사실은 그뿐, 서로 좋아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이런 둘의 묘한 우정은 인주가 죽음으로써 바로 무너졌다.
그런데 인주의 죽음 이후, 지연이 조금 이상해진다. 인주가 귀신이 되어 함께 있다는 둥, 괴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연두에게 여동생 연지를 조심하라고 하는데 연두는 눈빛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편, 치한과 보영, 미래는 트리플 관계다. 남자 한 명에 여자 둘, 셋은 사귀는 사이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상한 관계라며 쑥덕이지만 셋은 즐겁기만 하다.
치한의 위로는 같은 재단의 미대에 다니는 형(요한)이 있는데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치한과 달리 뭔가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요한은 인주가 죽고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야 보영에게 자신이 인주 사건 목격자라고 하며 범인으로 연두를 지목한다. 평소 요한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피해 온 보영은 이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지연과 요한이 함께 꾸민 일이라고 의심한다.
영원할 것만 같던 셋의 관계는 미래의 속마음이 들통나면서 어그러지고 만다. 그동안 티를 내지 않았던 것 뿐, 미래는 치한을 항상 혼자 독차지 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런 미래를 보영은 용납할 수가 없다. 
 
 이야기의 중반부를 지나며 괴담의 주인공이 드러나고 이야기는 점점 기묘하게 흘러들어간다.  
 
나는 이 괴담의 주인공. 또 다시 무대가 펼쳐지는 거야. 그 안에서 너는 사라지는 거지.
 
 사람의 욕망과 질투가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은 간접적인, 혹은 직접적인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욕망과 시기가 커지고 커져 걷잡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어김없이 괴담은 현실로 다가온다.
 
연못 위에서 첫번째 아이와 두번째 아이가 사진이 찍히면 두번째 아이가 사라진다.
 
일등과 이등이 사진 찍으면 이등이 사라진다.
 
형제가 사진을 찍으면 둘째가 사라진다.
 
 꼭 일등이 사라져야 맞는 것 같지만, 여기에서 두번째는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괴담은 예상할 수 없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책을 덮고 나서도 뭔가에 홀린 것 마냥 기분이 묘했다. 괴담을 읽으면 으레 그랬던 것처럼 으스스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는 않았고 묘하면서도 씁쓸했다.
 
p.155
"너도 그 괴담 들었지? 일 등과 이 등. 이 등이 사라진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들지 않아? 왜 이 등이 사라질까? 이 등이 일 등을 죽이고 싶을 텐데, 일 등이 사라져야지. 하지만 이 등만 일 등을 죽이고 싶을까? 일 등은? 일 등과 이 등, 둘 중 더 불안한 건 누굴까? 일 등과 이 등도 상대적인 걸까? 중요한 건, 남는 아이는 언제나 첫 번째 아이가 된다는 거야. 그게 누구든, 사라지는 게 누구든지...... 더 중요한 건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진다 해도 끝나지 않는다는 거야. 없애고 나도, 또 반복돼. 끝이 없어. 이 세상엔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있고, 두 번째 아이는 또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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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사랑이 남편을 죽였다
차란희 지음 / 푸른향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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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북한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될까 싶어 이 책을 선택했다. 책 제목도 선택을 결정하는데 한 몫 했다. 한국에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어 무작정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는 저자는  현재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살지 못하고 먼 타국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살고 있다고 한다. 본글에 들어가기 전 편집자의 글을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작가의 사정이 정말 안쓰러워 눈물이 '찔끔' 하고 나왔다.
 
 저자는 책을 통해 가족의 이야기는 물론 지인들의 이야기와 북한 사람들의 생활, 북한 내부의 상황 등등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주변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쓴 것이기 때문에 깊이 파고 들어간 글은 아니었지만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던지라 새롭고 재미있고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읽는 도중 낯선 단어들이 좀 있었지만 본문에도, 뒤장에도 따로 설명이 되어 있어 직접 찾아봐야 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소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사람이다.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자랐고, 북한 내에서 인정받는 남편을 만나 어려움 없이 살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태권도 사범인 남편을 따라 여기 저기 해외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장성한 아들이 대학을 다니다 외국인 여자와 사랑에 빠져 가출하게 된 것이다. 이 일로 저자와 남편은 물론 북한에서도 발칵 뒤집어졌다.
유학생들은 엄격한 감시와 통제를 받곤 했는데 유학 중 자유를 찾아 다른 나라로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란다. 그 중 남녀간에 사랑에 빠지는 것을 엄히 제한한다고. 비교적 자유로운 외국에서 그곳에 물들어 사상이 변질될까 싶어 그렇게 통제를 해왔다고 한다. 
아들의 사랑도피로 졸지에 북한 당국으로부터 추적을 받게 된 저자와 남편. 
그래도 덕망있는 남편 덕택에 현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숨어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아들과 연락도 끊기고 조국으로부터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 쓴 채 쫓기며 걱정과 불안에 하루 하루를 버텨가던 중 남편이 심장마비로 하루 아침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남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야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들 곁에는 연인인 나타샤가 함께였다고 한다. 저자는 둘을 원망도 많이 했지만 자식인 아들과 딸 같은 나타샤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랑이 무슨 죄인가. 
 
 저자의 가족은 그렇게 충성을 바친 조국으로부터 사랑한 죄로 버림을 받고 막막한 가운데에서 어쩔수 없이 조국을 포기해야 했다. 한국으로 들어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이 이상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없어 타국에서 외롭게 지내고 있다는 그녀.  어릴 땐 가족의 그늘 안에서, 어른이 되어선 든든한 남편의 그늘 안에서, 조국의 그늘 안에ㅓ 편히 살아 온 그녀에게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은 억울하고, 슬프고, 또 억울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보고 공감해주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됐고, 한국에서 책을 내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한 민족이니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북한에서는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서로가 감시하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로부터 통제와 감시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살고 있는 내가 보기에는 많은 것이 놀랍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북한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하고.
저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의 상황이 좀 더 나아지길 비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저자의 근황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펴냄으로써 그동안의 아픔이 조금은 덜어졌기를 바란다.
 
 
p.374
잠시 후 이 방을 나가면, 나는 더 이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일 수 없었다. 내가 태어난 땅을, 내 어미가 살고 있고 내 아비가 묻힌 땅을, 내 형제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그 땅을 버리려 하고 있었다. 내가 맨발로 걸음마를 하고 어린 시절 동무들과 어울려 흙장난을 할 때 맡았던 그 달콤한 향기를 나는 다시는 냄새 맡을 수 없을 거였다. 까만 내 머리카락 위에 비추던 햇빛과 하얀 볼을 스치고 지나가던 바람도 만져볼 수도 없게 될 것이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처음 만나던 날, 잔잔히 흐러던 대동강의 물소리와 첫 입맞춤을 하던 떨기나무 그늘 밑에도 가볼 수 없을 것이다. 내 아이가 태어나고 내 아이가 뛰어놀던 그 세상으로부터, 우리 가족이 단란하게 살았던 시간으로부터, 모든 추억으로부터 나는 영원히 추방당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이 아닌, 나와 조금도 닮지 않은, 나와 전혀 다르게 생긴, 물 설고 땅 설은 외지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말도 통하지 않는 이방인으로 살아야 한다. 이 나라의 국적을 얻어 원한다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겠지만 지구상에 딱 하나, 갈 수 없는 곳, 나를 허락하지 않을 그곳은 내 조국이며 내 고향이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내 아들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나는, 내 아들은, 내 남편은 그 모든 익숙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런 것들로부터 차갑게 밀쳐져야 했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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