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점 지하 대피자들
전예진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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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서평단

“잘 들어요, 혹시 뭐가 잘 안 되면,” 주호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적강산 자연휴양림 고라니 매점으로 오면 돼요.” (p.14)

“나는 우리가 서로한테 그런 존재로 남으면 좋겠어요. 내가 보잘것없다고 느껴질 때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기억으로.”(p.192)



다만 쉬고 싶을 뿐인데 세상은 쉼에도 이유를 대라고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직 활동도 안 하고 놀고먹는“ ”잉여 인간”(p233)이라 서슴없이 비난한다. 사회가 원하는 틀과 질서에서 조금만 엇나가도 가차없이 날세우며 달려들면서 선의를 베푼다고 생각한다. 도와주려고 그랬다는 남루한 변명으로는 이기적인 민낯을 채 가릴 수도 없다.

『매점 지하 대피자들』에는 소위 “인생 망한 사람”(p.209)들이 그런 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처하며 시작된다. 그러나 휴양림에 위치한 ‘고라니 매점’의 지하에서는 기대했던 고립 대신 연대의 장이 펼쳐진다.

주인공 선우는 사회생활에 진저리치다 적강산 고라니 매점을 찾게 된다. 어메니티로 헤드렌턴과 야전삽을 내어주는 이곳은 매점 아래로 직접 굴을 파고 나름의 질서에 맞춰 투숙하는 ‘호텔’이다.

굴을 파는 행위는 생존이자 사회에서의 분투와도 닮아있다. 온몸을 다 우그러뜨리고 기어서 길을 내는 동안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흙먼지, 막다른 길, 예기치 못한 상황들, 진위를 파악하기 힘든 사건, 타인을 향한 경계와 같은 것들과 마주친다.

어느 순간, 지하 대피자들은 느슨한 연결로 서로를 간신히 지탱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사이다. 완벽한 연대와 끈끈한 우정, 곡진한 보살핌과 같은 것들로부터 도리어 자유롭다. 공동체라는 결속 안에서도 뚜렷한 ‘나’를 잃지는 않는다. 섣불리 구원을 말하지도, 희망을 주워섬지도 않아 오히려 진솔하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모든 것들이 휩쓸려 가는 장면은 속엣말을 다 쏟아내는 통곡같다. 선우를 비롯해 각자의 이유와 사연으로 은둔을 자처하던 이들을 지상으로, 지붕 위로 오르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연락이라도 하고”(p.256) 지내자 말을 건네면서 미래를 기약한다. “이제 어떻게들 살 거”(p.256)냐는 물음을 내던질 수 있을 만큼, 삶에 대한 애착이 자라 있다.

작가의 문장에는 요란하지 않은 위로가 담겼다. 나와 어딘가 닮은 점을 찾아가며 읽었기에 굴로 숨었던 대피자들의 다음 일상이 궁금해진다.
#전예진 #매점지하대피자들 #한국문학 #젊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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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가해자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손현주 지음 / 우리학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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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출판사도서제공

“한 세계를 깨뜨린다는 게 뭘까?”
“…… 알을 부수고 나와야 진짜 세상을 만난다는 말 아닐까?”
“그럼 알은 결국 스스로를 가뒀던 곳이네.”(p.103)



여기, 마음 잘 맞는 친구이자 모범생, 사랑스러운 손자이자 아들이 있다. 모든 걸 가진 그는 언제나 여유롭고, 곁에서 바라보는 이들은 남몰래 그의 유복함을 선망한다. 이 친밀한 사이의 존재가 (고의는 아니었을지언정) 악행을 저지르고 고해를 망설인다. 그럴 때, 곁에서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친밀한 가해자』는 열여섯 평범한 청소년들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는 하굣길, 할머니의 안부 문자. 주인공 ‘준형’에게 부유한 할머니가 쏟아붓는 사랑과 금전적 보상은 행운이자 속박이다. 이렇듯 모든 일들이 지닌 양면성을 짚어가면서 그를 둘러싼 배경을 하나씩 펼쳐보인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동생, 엄마는 모든 일에서 동생을 우선한다. 그런 까닭에 준형은 늘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는 입장에 서야했다. 관계의 균열은 걷잡을 수 없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공허하다.

불안감에 허덕이는 심리를 그려내면서 흔들리는 일상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사실 완전한 악의에서 비롯되지 않은 사건이지만 미래를 저당 잡히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그는 잘못으로부터 달아나고 싶고, 도리어 “너 증거 있어?“(p.153)라 힐난하다 무너져 내린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완전한 선인도 악인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허구 아닌 현실감이 느껴진다. 죄책감으로 뒤흔들리는 일상을 보여주면서도 섣불리 교훈적 우화처럼 흘러가지는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선택과 상황들을 집요하게 뒤쫓으면서, 독자 역시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p.139)은지 계속해서 되묻게 만든다.

선과 악, 고백과 은닉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면서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알을 깨뜨리고 나오는 건 스스로의 용기와 결단이다. 곁에 있는 사람도 방관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달아 갈 때, “그냥 진실을 말하기만 하면”(p.187)된다는 정직한 목소리가 술렁대는 그를 다독인다.

인물들의 심리와 주변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해, 마지막까지 쉼 없이 내달리게 하는 책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대답을 강요하기보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끔 현실감 있는 세계를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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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의 사랑들 - 흙과 틈 사이로 자라난 비밀과 상실 그리고 식물에 관한 이야기
쿄 매클리어 지음, 김서해 옮김 / 바람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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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 또 하나의 이야기를 줄게.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로 만들어졌지만, 우리가 잊은 것들로 이루어지기도 했단다.(p.418)”

식물의 성장, 계절과 절기의 흐름 그리고 가족의 계보에 관한 이야기를 겹쳐서 에세이로 엮은 책이다. 내밀한 사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글은 시적인 문체와 어우러져서 특유의 분위기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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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을 아버지로 알아온 사람과 비혈연임을 알았을 때, 심지어 그가 자신의 딸이 아님을 알고도 일생 다정한 아빠였음을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마음들을 고스란히 담았다. 덧붙여 어머니의 삶, 그녀가 선택한 만남, 상실들을 조명한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작가가 유전적 계보를 훑어가는 과정이 촘촘하게 들어있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가족의 이야기로 확장되면서 앞 마당의 식물들은 더 멀리 멀리 뻗어간다.

24개의 절기를 기준으로 나눈 소제목들은 가드닝 지식과 계절의 흐름에 따른 작가의 사유 변화까지 보여준다. 담담하게 쓰고 있지만 글의 전반에 흐르는 애상적인 분위기가 가슴에 저민다. 작가는 “내 안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고, 또 동시에 텅 비어 있“다고 밝히는데, 이렇듯 나를 이루는 것들을 전부 나의 의도만으로 고를 수는 없음을 알게 된다.

작가는 나의 뿌리를 ‘파헤치며’ 글을 쓰고 정원을 가꾼다. 쓰는 몫은 작가의 일, 정원 일은 어머니의 몫이었는데, 둘을 함께 해 나가면서 작가는 어머니와 완전하고 깊은 대화를 해내길 원했다. 책을 읽으면서 존재와 사랑에 관해서 사유하고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기회가 되었다. 나와 타자의 경계와 직면하고 확장할 수도 있다. 문학적인 아름다움도 가득 담긴 책.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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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족의 최후
송아람 지음 / 미메시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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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서평단
연민금지, 위로금지, 이해금지.ᐟ

송아람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만화를 그리면서 이 세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고 밝힌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함부로 끼어들지 않고, 다만 함께 흘러가기로 한다. 책을 읽으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10대 시절을 온전히 같이 누렸다. 그러면서 과거의 나를 힘들게 하던 순간도 흘려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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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족 : 90년대 초 강남에 거주하는 부모를 두고 화려한 소비생활을 누린 청년을 일컫는 말.*

90년대 금수저 청소년의 방황과 삶에 관한 고뇌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마치 그 시절을 경험했던 것처럼 까닭 모를 향수까지 불러일으킨다. 미성년들이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들 조금씩은 닮은 까닭일 것이다.

주인공 오하나는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누리지만 정서적으로는 공허하다. 부모님과의 얄팍한 유대관계도 원인이다. 엄격한 아버지와는 소통은 커녕 연극하듯 가면을 쓰고 겨우 대할 뿐이고, 엄마는 나름으로 바빠 서로의 하루에 겹쳐들기 어렵다. 평범한 일상 속 특별한 순간을 간절히 바라는 그는 소위 ‘노는 친구들’과 휩쓸린다.

우정과 풋사랑, 일탈 끝에 캐나다 유학을 가면서 오하나의 삶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러나 어렵게 쟁취해낸 선택이었던 유학 생활은 녹록지 않고, 어느덧 진짜 나와 보여주고 싶은 나 사이에서 지독하게 방황한다.

또래집단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미움, 배척은 미성숙하기에 더욱 맹렬하다. 무모한 선택들이 이어져 걷잡을 수 없이 위태로워지고, 감정의 민낯들은 버겁다.

영원한 우정, 변치 않을 관계와 같은 것들은 헛되고 부질없는 환상이다. 항상성만 내려둔다면 어떤 순간에 발현하는 진실한 마음과 연대는, 그 순간만큼은 무엇보다 질기다.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집착은 독이다.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변화에 닳고 깎이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파고에 속절없이 쓸려가는 오하나의 시절. 미성년에서 성년,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을 미화 없이 담담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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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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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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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얼마나 많은 검은 페이지가 있는 걸까.(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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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벽장을 열고 나가라고, 여기로 나오면 된다고.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의 힘으로 그 방을 탈출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풀이 방법을 공유하는 일을(p.213)” 해낼 것이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모순같은 제목이 이해된다. 암순응하듯, 작가가 배치해둔 서사 속에서 시야가 밝아지는 때가 있다. 작가는 익숙한 것들 속에 생경한 것들을 심어두고 그 연결고리들을 자꾸 곱씹게 한다.

어둡고 음습한 곳에서 건져올린 감정과 마주하고 그것을 전부 해체해나가는 과정이 담겼다. 마음 깊은 곳에 있을 어떤 ‘검은 페이지’와 대면하는 것,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저주를 따라가다보면 축복과 의미가 전복되는 순간이 있는데 소름이 돋는다.

책에서 소년은 말한다. “소름이 끼쳤으면! 제발 좀 소름이 끼쳤으면!(p.92)” 그리고 정말 소름이 끼치는 때가 있다. 이 소름의 정체는 꼭 책을 읽어서 느꼈으면 좋겠다.

어떠한 스포도 남기고 싶지 않은 책이다. 현재와 과거를 부단하게 오가면서 사람과 그가 일궈가는 인생의 다면성을 서사로 보여준다. 작가의 문장은 미묘하게 불편한 지점을 파고든다. 티 하나 없이 완전한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고 그런 까닭으로 “누구에게도 타인을 함부로 단죄할 권리는 없다(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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