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송한 솜뭉치로 만든 인형을 만질 때의 감각적 기분이 이 시집을 읽는 내내 남았습니다. 이런 느낌을 현대시에서 만나기는 드문데도, 그럼에도 언어적 밀도나 이미지의 환원, 기표 아래로 흐르늗 서정적 여백을 두루 가졌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파가니니의 생애를 달려온 바이올린 줄을 느슨하게 푸는 순간 같은, 절묘한 포만감을 만끽합니다. 긴장감과 여유가 공존하는 즐거운 시집! 입니다.
시인은 낯선 미국에서 이민자로 남아 화가와 시인의 예술적 삶을 밀어간다. 환경에 예민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예술가로서의 삶은 시에서 이민자, 혹은 아메리칸이 아닌, 이방인들이 경험할 법한 쓸쓸함과 소외감 등을 덤덤한 어조로 표현해 내는 듯하다. 가장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고 있을 것만 같은 곳에서, 공기 속에 스며든 냄새를 그리듯 은연 중에 만연한 차별적 징후들 말이다.이럴 때 장윤녕의 시들은 낮은 목소리이며, 시집에 실린 시 <항해>를 통해 대표적으로 은유된다. 기대할 바깥이 부재할 때의 내면은 그 '기댈 곳 없음'의 반탄력으로 인해 아름답고 지극히 섬세한 떨림을 동반한다.그의 시가 숱한 현실적 벽을 밀어내고 새로운 조화로운 세계와 만나기를 기대한다. 그런 바람의 육화된 형태가 그의 삶인 시이며 그림이기도 할 것이니까.
시인의 시들은 따뜻한 손길과 드넓은 품으로 아픈 곳을 어루만질 줄 안다. 이 세계를 바라보는 온화한 시선이 그의 시적 전면이라면, 배면은 시적 화자가 이 세계에 살며 감내한 상처와 감추고 삭혀낸 응어리들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자리라 할 수 있을 듯하다.송곳처럼 날카로운 대신 이런 무구한 아량의 시적 세계는 독자를 어루만지는 또 다른 사랑의 실천이 된다. 자극적이지 않은 세계가 가진, 가슴이 깊고 웅숭해서 깊고 아늑한 시집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