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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의 성정치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8
한서설아 지음 / 책세상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오오오! 진짜 넘기는 장마다 주옥같은 말들이...근데 좀더 길게 썼으면 좋았을걸.지금까지 생각해 왔지만 시원하게 다룬 글을 읽을 수는 없었는데,여성들이 다이어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런저런 생각과 심리들을 너무나 잘 표현해 준 책입니다.좀 급히 끝맺었다,대안 제시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참 괜찮은 책이었습니다.여성들 뿐만 아니라 왜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그토록 목을 매는지 궁금하신 남자분들이 읽으시면 더더욱 좋은 책입니다.
저는 밑줄치거나 별표하는 걸 싫어해서(책은 깨끗하게 보자 주의임)대신 포스트ㅡ잇 플래그를 좋은 부분에 붙여두는 편인데요.1/3쯤 남아있던 포스트잇 플래그 다 썼습니다.나중엔 모자라서 못 붙였어요.책에서 중요하고 알려드리고 싶은 내용을 쓰고,가끔 제가 겪은 이야기도 넣었습니다.
처음 챕터는 여성의 '몸'에 대해 설명하면서 들어갑니다.몸 담론은 사회학 수업 때 나름 듣던 거라 (저는)슥 읽고 넘어갔구요.2장부터 맞아 맞아 하는 글들 주루룩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이성애적 사회에서 외모가 성적 매력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여자'로서 정체성을 인정받게 된다는 이야기.( 남성은 여성보다 외모의 중요성이 다른 자원,즉 사회적 위치나 돈,학벌,집안,성격 등으로 상쇄될 수 있는 융통성이 존재하나 여성의 경우에는 일차적으로 외모를 중심으로 여성다운 매력이 구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여전히 사회에서 '여자'로 인정받는 것의 중요성이 정체성을 이루는 다른 요소들-계층,학력,지위,나이 등-을 압도한다는 거죠.
사실 동성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별로 다를 것 없어요.다들 예쁘고 마른 여자친구(게이의 경우 몸매 좋고 잘생긴 남자친구)를 선호합니다.가끔은 통통한 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분은 일부분이고,동성애자들끼리의 만남에서도 일차적으로 보이는 건 외모니까요.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 애인찾기나 친구만들기 글을 보면 너무 남성같은 분은 싫다,마른 분이 좋다,뚱뚱한 분은 별로,외모가 적어도 평범은 되어야 한다라고 조건을 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여성의 외모는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죠.여성은 사회적인 기준이 녹아 있는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검열하고,자신의 몸이 이상적인 몸이라고 생각되는 기준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이를 변화시켜야겠다는 욕망을 갖게 됩니다.여성으로 하여금 외모를 관리하게 만드는 힘은 강제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지만,사회의 기준에 의한 평가를 지닌 시선들 속에 녹아 있으며 이 힘은 여성의 자아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여성들 스스로가 몸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을 이끌어냅니다.
성공한 여성의 이미지는 여러 매체들에서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나타납니다.이러한 이미지는 여성들의 날씬함과 이의 공공연한 전시를 성공한 지위의 상징으로 만들면서 여성들에게 현실적인 힘을 발휘합니다.날씬한 외모는 단순한 미적 기준을 넘어 자아 실현과 사회적 성공에 대한 여성의 욕망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다는 거죠.(일단 아직도 취업 시에 많은 기업들이 여성의 외모를 직업적 자질로 간주합니다.)이러한 추세에서는 외모도 하나의 능력이자 자본이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어요.
3장에서는 과학적 소비 이론과 다이어트,즉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해 얘기합니다.건강이 삶의 질을 상징하는 주요 가치로 자리잡으면서 소비 문화는 건강한 몸은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런 몸을 만드는 것은 각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 됩니다.
그리고 여성들도 건강함과 날씬함의 문제를 거의 같은 차원의 문제에서 사고합니다.날씬한 몸을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건강한 상태를 체중과 직결시키는 거죠.이러한 인식에서 건강이란 개인이 스스로의 몸을 알아서 챙기는 부지런함과 노력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적절히 통제할 줄 아는 자제력에 의해 성취된다는 판단이 더해집니다.(그래서 뚱뜽한 건 자기관리를 하지 못해서-라는 오래된 떡밥이 등장하는 거죠.)
이에 따라 여성들은 뚱뚱함을 건강하지 못함,추함과 더불어 게으름의 상징으로 파악하고 그러한 몸을 가진 다른 여성들에 대해 도덕적인 판단을 쉽게 내려 버린다는 거죠.(사실 남성들보다 여성들의 비판? 인식?이 더 무섭습니다. 여성 전용 커뮤니티에 160에 적정 몸무게가 얼마일까요? 하는 질문이 올라오면 십중팔구는 45-50킬로그램이라고 해요.의학적으로? 권장 표준 몸무게는 54킬로그램입니다.여성들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저런 답을 해요)
거기다 뚱뚱한 여성의 경우에는 체중이나 체구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데,이로 인해 다이어트는 정신 건강의 문제로까지 확대됩니다.그러나 모든 문제의 해결법으로 다이어트라는 개인적 실천을 받아들이는 것은 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편협함에 맞서서 그를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기준에 맞게 변형시킴으로써 편견들을 피해가는 소극적인 대처방안입니다.
현재 많은 여성들의 몸은 정상체중을 중심으로 한 건강한 몸의 범위를 크게 넘어서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여성들 스스로가 이러한 다이어트 권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여성들의 외모 관리에 건강을 압도하는 다른 사회적 기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비만이 아닌 여성들도 모두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분위기,뚱뚱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마른 사람들이 더 극성맞게 살을 빼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과학적으로 제시된 정상체중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스스로 모순임을 알면서도 외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힘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여성들은 건강 관리의 일환으로 다이어트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다이어트를 외모 관리의 일환으로 의미화합니다.그리고 다이어트 산업의 물량 공세 속에서 주요 타깃이 되는 사람들은 실제로 비만한 사람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준이 제시하는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파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입니다.
4장은 다이어트로 인해 잃는 것들에 대해 얘기합니다.
현재의 다이어트는 일정한 원리와 규칙을 따르게 하는 규율의 성격을 띱니다.음식 섭취,라이프 스타일,생활 습관 모든 것을 검토해야 하죠.그런데 다이어트는 철저한 개인적으로 수행하는 실천이고 다이어트 식단은 혼자만의 식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식사와는 거리가 있고,이는 음식을나누는 행위를 매개로 형성되는 인간관계와 사회 생활이 보편적인 우리 사회에서 다이어트를 하고자 하는 여성들을 심각한 갈등으로 몰아넣습니다.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회식,약속 등의 사회 생활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거나 이런 모든 유혹들을 극복할 만큼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동시에 여성들은 이런 독한 마음 때문에 인간 관계에 금이 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우울함,사회 생활에 충실하기 어려운 점 때문에 또다른 갈등을 겪습니다.다이어트와 사회 생활,인간 관계가 이토록 양립하기 어려울 때 여성들이 선택하는 것 중 하나가 먹고 나서 토하기에요.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것을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다이어트는 사회적 기준에 맞는 몸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몸을 자아의 일부로 긍정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열망 때문에 시작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다이어트는 우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혐오하고 통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 속에 여성의 몸을 획일적으로 재단하는 사회적 힘에 대한 문제제기가 들어설 틈이 없다는 것입니다.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순간 그것은 자신의 의지를 실험하는 개인적 실천의 문제로 넘어가버리고 그 성공과 실패,책임 역시 여성 개인의 몫으로 전가됩니다.
그리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여성의 경우,더욱더 다이어트의 성공 여부와 그에 따른 몸의 변화에 얽매이게 됩니다.예전의 성공 경험 때의 여러 가지 변화나 주변 반응 등 여성에게는 중요하게 생각되는 변화들을 통해 쾌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게 되어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안감힘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이어트 실천을 자신의 의지력과 인내력을 실험하는 장이 되고 다이어트의 성공과 그 결과인 날씬한 몸매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인 통제력,자기 절제력이라는 미덕을 소유하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고 드러내는 계기가 되어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받습니다.이로부터 여성들이 다이어트의 성공을 자기만족이나 자신감 그리고 그로부터 얻게 되는 쾌감의 문제로 설명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자신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는 의지력을 향한 믿음에서 오는 만족감이지요.
그러나 다이어트는 단기간의 성공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미국에서 행한 조사의 결과에서는 다이어트 끝에 체중을 줄인 사람들의 90%가 5년 안네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감소 자체보다는 그 유지가 더 어려운 것이죠.따라서 여성들이 일시적으로 자신감을 얻게 되더라도,언젠가 다시 체중이 증가할 경우 자신감을 일시에 상실하며 자신을 혐오하고 자아의 위축 상황을 겪습니다.그리고 상실된 자신감 회복을 위해 다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악순환에 빠져 자신을 몸에 속박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여성의 외모 관리는 끝나지 않는 전쟁인 만큼 여기서 승리한 여성들이 받는 대가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예쁘고 날씬한 여자들에게 더 많은 사회적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여성들 스스로가 당연시하게 됩니다.누구보다도 여성들 스스로가 외모가 하나의 자본이자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은 뚜렷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자원이자 능력이며 여성으로서의 자존감과 정체성도 확고히 할 수 있는 원천으로 여성들 스스로에 의해 자리매김되고 있다는 겁니다.
여성에게 외모라는 주제는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하나는 여성의 삶과 자아 정체감에서 외모가 갖는 지나친 비중입니다.외모에 부여되는 사회적 권력은 여성의 자아실현에 대한 욕망이 커질수록 더욱 증대됩니다.여자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살고 싶어하는 욕구를 드러내는 것과 함꼐 외모를 통해서 여성다움을 확인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회의 요구 또한 높아졌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여성들이 외모의 힘을 간파하고 몸을 관리하며 겪게 되는 심각한 고통입니다.외모 관리의 힘겨움을 개인적 능력의 한계나 의지력 부족으로 치부하며 자신을 혐오하는 악순환에 빠져왔다는 겁니다.더욱 큰 문제는 여성 개개인의 외모 관리가 남성의 시선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힘에 의해 일어났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가려진다는 점입니다.고통은 건강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의 저시만족을 위한 자기관리의 일환으로 설명되는 거지요.따라서 자신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승인받고 사회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주체가 되려 하는 여성들의 욕구는 외모 관리라는 전쟁에서 끊임없이 소모되고,성별 간의 권력 관계가 여성의 몸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는 것이지요.
5장에서는 이런 사회적인식,사회 권력에 딴지를 걸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예상할 수 있는 답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