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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어
안 소피 브라슴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숨막히게 실감나는 한 소녀의 파멸기.
첫인상은 와타야 리사? 였어요.17세인가 18세 소녀의 데뷔작인데 천재성이 어쩌고 하길래 그렇지 않을까 했지만,읽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스타일이 전혀 달라요.일본의 약간은 쿨하고 공허한 스타일이 아니라 그야말로 유럽의 잿빛 하늘처럼 우울하고 무겁고-진지하고- 그러나 여린 감성.하지만 번뜩이는 재기,천재성은 글 곳곳에서 빛납니다.
글을 제대로 쓴다는 데 가장 큰 점수를.단어의 선택,쉴새없이 흐르고 간결한 문체,이야기의 구성과 전개,심리의 묘사,캐릭터의 실제성,몰입도,모두 최고수준입니다.간결한 문장과 서술들만으로도 한 사람에게 빠지고 휘둘리고,그로 인해 파멸해 가는 과정을 너무도 실감나게 표현해 냅니다.특히 점점 편집증세(강박증)으로 빠져들어가는 주인공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뛰어납니다.
줄거리는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여 방황하고 죽음을 갈망하는 소녀 샤를렌이 전학온 사라를 만나면서 시작됩니다.언제나 빛나고 모두를 매료시키는 사라.주인공은 그녀에 대해 미묘한(부러움과 무시하고픈 마음 등 여러 가지)를 느낍니다.그러나 샤를렌의 삶은 여전히 어둠 속이었고,삶의 끝자락에서 사라가 그녀를 구해냅니다.그 순간부터 사라는,그녀의 모든 것입니다.
한동안은 좋았습니다.사라와 친해진 그녀는 사라로 인해 진짜 자신을 찾았다고 느끼고 삶은 행복으로 빛납니다.그러나 사라는 얼마 후 그녀를 귀찮아하게 되지요.의도적으로 샤를렌을 무시하고 휘두르고 상처주면서 떼어내려 하지만-사라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아이임이 곧 드러납니다-샤를렌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사라가 없는 그녀의 삶은 또다시 아무것도 없는 지옥,아니 상상할 수조차 없었으니까요.온갖 상처를 견뎌도 보고,힘든 삶을 견디며 자신을 찾기 위해 사라를 떼어내려 애써도 보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샤를렌.애증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심히 부족한 그녀의 사라에 대한 감정.그 감정들에 대한 묘사가 정말 생생합니다.
그리고 샤를렌의 결론.그녀는 살기 위해 선택합니다,살인을.처음부터 이야기는 교도소에 갇힌 그녀의 일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으니까요.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모든 결과를 알고 행동했지만,사라의 가족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미안해하고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생명,숨을 쉬기 위해서였으니까요.강박증의 결과는,필연적 행동이니까요.
이런 친구관계는 야마다 에이미의<나비의 전족>을 떠올리게 하더군요.물론 다른 점도 많지만.그리고 주인공 샤를렌이 어째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그 점이 안타깝더군요.자신의 그런 감정들이 자신을 부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사라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했으면서도.너무 혼란 속에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쳐 주더라도,최소한 그녀의 부모님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어야죠.강박증은 잘 낫지는 않지만 초기라면 안정제와 주위의 도움으로 극복해낼 수 있습니다.제가 그랬거든요.그래서 더 이 작품이 파악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녀의 감성과 성인의 글솜씨로 쓰여진 멋진 작품입니다.이런 강박증,편집증 증세의 캐릭터들은 최근 만화에서도 종종 만나볼 수 있는데요,만화의 표현과 소설의 표현을 비교해보시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실 겁니다.10대 후반에서 20-30대의 여성분의 취향에 가장 잘 맞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