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번의 다이빙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8
이송현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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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이다. 청소년 문학이 따로 있겠는가. 일만 번의 다이빙 표지부터 마음에 들었다. 물을 상징하는 연한 하늘색과 주인공이 다이빙하고 나와 물이 묻어 있는 상태를 표현한 듯한 모습과 반짝거리는 표지 디자인이 볼수록 매력적이다.


17살 박무원은 뒤늦게 다이빙으로 종목을 바꿨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다이빙하면서 힌층 더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등장하는 주인공의 친구인 권재훈, 나은강 역시 다이빙을 통해 내적 고민, 고통, 갈등, 시기, 질투를 느끼지만 이를 극복해 나간다. 그리고 고아이지만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려고 부단히 애쓰는 구본희가 있다. 기창 할아버지, 무원이의 아버지, 어머니 등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 소설을 굳이 청소년 문학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어느 연령대는 나이와 상관없이 읽어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십 대 시절의 고민을 여전히 마흔인 지금에도 하는 부분이 있어 소설을 읽으며 공감이 갔고, 지금의 십 대는 어떤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지 알 수 있어 다른 세대를 이해할 기회가 되었다.



무원이는 미숙아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런 무원이에게 많은 애정을 쏟았다. 어쩌면 엄마보다 아빠의 애정이 많았다고 느껴진다. 아버지는 물을 좋아했던 아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오랫동안 수영을 했지만, 무원은 수영 실력이 그다지 늘지 않았고, 종목을 바꿨다. 코치인 기재 코치의 김밥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다이빙해도 항상 두려웠다. 다이빙대에 올라가 수영장 수면을 바라볼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무원에게는 권재훈이라는 친구가 있고 이 친구는 다이빙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멋진 실력을 뽐낸 친구였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무원을 대하는 재훈이 달라졌다. 박무원의 성장에 시기와 질투가 생긴 것이다. 한순간 멀어진 재훈을 보면서 무원이는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원은 재훈을 항상 바라봤다. 결국 둘은 화해하고 같이 멋있는 다이빙을 한다. 친구 나은강 역시 다이빙을 하면서 무원, 재훈과 함께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슬럼프를 겪고 연습하러 오지 않는 은강은 어쩌면 다시 다이빙대에 서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극복하고 다시 다이빙대에 올라섰다. 이들 모두는 자신의 한계에 부닥쳤을 때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어쩌면 성인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극복하려는 흔적들이 엿보인다.


구본희를 보면서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없는 그녀는 삶을 비관하며 살 수도 있는데 자신이 일하는 편의점을 전국에서 매출 3위를 달성시키고, 길을 잃는 어린 새끼 고양이를 무원이가 데리고 왔을 때 역시 고양이를 내치지 않고 편의점에서 함께 있기로 결정하면서 그녀에게서 삶에 대한 애정을 보았다. 그녀의 삶이 상처 받고 곪았을 텐데도 타인을 따뜻하게 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책에 있는 구본희와 같은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돌봐주고,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독립시킬 때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지금의 스무 살은 무엇인가를 혼자 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은 맞다. 갑작스럽게 혼자 독립하려고 할 때 적은 돈으로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사회가 어느 정도는 그들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무원이의 아버지는 사실 물을 무서워했다. 그러나 아들을 사랑하기에 정성을 다했다. 무원이는 이 사실은 나중에야 안다. 아버지가 공장을 닫고, 집을 나간 뒤 말이다. 아버지의 무게와 어머니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결혼하지 않았기에 그 무게감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지금의 가장으로서의 무게도 사실 상당하다. 이따금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며 녹초가 되어 뻗어버린다. 나도 이 정도인데 자식을 낳은 부모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자신을 뒷바라지하던 아버지가 공장까지 닫았을 때 절망감은 엄청나게 컸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상품판매하는 자영업을 하다가 폐업 신고했던 나는 거의 4년간 돈을 벌지 못해 투잡을 뛰어야만 했다. 나도 이럴진대 무원이의 아버지는 어떻겠는가.


무원의 엄마는 무심하듯 하지만 마음이 따뜻하다. 구본희가 살던 지하 집이 물에 잠겨 무원이가 구본희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왔을 때 엄마는 자기 딸처럼 구본희를 살뜰히 챙겼다. 가족이 아닌 이상 남을 잘 살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해도 같이 살다 보면 아쉽고, 서운하고, 불평할 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헬스 다니는 무원이를 그만두게 하고 약수터로 가 운동을 시켰다. 기울어져 가는 집안 사정으로 아버지는 무원이에게 헬스 다니는 것을 그만두게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무원과 아버지는 약수터로 운동을 하러 갔고, 약수터에서 기창 할아버지를 만난다. 할아버지가 부담스러웠던 무원이는 어느새 할아버지에게 스며들었다. 나은강과 권재훈도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스며들었다.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는 무원이를 열심히 응원했다.


이 소설 전반적인 삶에 힘겨움을 겪거나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그들은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 안고 서로를 위하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정이 많은 우리네 이웃이다.


집에서 혼자 전자상거래로 제품을 팔 때 나는 종종 집 근처 편의점에 갔다. 그렇게 편의점 사장님과 허물없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4년간 거의 돈을 벌지 못한 나는 울며겨자먹기로 폐업 신고하고 쉽지 않은 일 자리를 알아봤었다. 마흔 넘은 나이는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일자리를 구하고 편의점을 낮 시간에 방문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하루 휴가를 내고 병원에서 혈액검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봉투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들렀다가 오랜만에 편의점 사장님을 만났다. 너무 오랫동안 뵙지 못했는데 반갑게 인사해 줘서 고마웠다.


반갑게 인사해준 것도 고마운 일인데 사장님은 바로 자신이 주말농장에서 재배한 오이를 엄마와 하고 먹으라고 갑자기 챙겨주셨다. 쓰레기봉투를 사러 갔다가 오이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시에서 이런 일이 겪다니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놀랐다. 어제오늘 오이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몇 번을 고민했던 내가 오이를 편의점 사장님에게 받아 온 것을 봤으니 말이다. “인덕이 있네”라며 신기해하셨다. 지난번에 커피가 다 떨어졌을 때 갑자기 지인이 커피를 주셨다. 이따금 이런 일이 주변 지인들로부터 있어서 엄마는 나를 보면서 놀라곤 한다. 아무래도 엄마와 함께 살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따금 눈살을 찌푸리는 이웃 때문에 화가 나다가도 이런 이웃 때문에도 살만하다.


갈수록 심란한 뉴스, 경제 상황, 기후 위기로 어지러운데, 오늘 하루 내가 이웃에게 느꼈던 따듯한 감정을 ‘일만 번의 다이빙’ 소설 한 편에서도 느껴, 오늘 하루가 더 따뜻하고 정감 있는 특별한 하루로 기억될 듯하다.

#출판사의 지원으로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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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입양했습니다 - 피보다 진한 법적 가족 탄생기
은서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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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 내가 1인 가구로 살 때 보다 훨씬 1인 가구가 증가한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지금은 연로하신 어머니가 자주 병원 다닐 일이 생겨 엄마와 함께 살기로 하고 8년째 2인 가구로의 삶을 살고 있다. 


 


나 역시 그 이전에는 1인 가구로 오래 살았기에 저자의 쓴 내용들에 공감되었다. 시골에서 성장했기에 도시에서 이주한 저자와는 다르겠지만 어르신들이 숟가락, 젓가락까지 관심 가지며 참견하는 일에 힘겨워했던 일에 대한 느낌은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결혼할 나이가 되면 으레 결혼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바뀐 요즘 사회를 나는 적극적은 환영한다. 사십 대로 결혼을 안 한 나를 ‘하자가 있는 인간’으로 취급되는 듯한 분위기가 싫었다. 사실 크게 연애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좋아했던 즉 짝사랑도 잘되지 않았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도 매번 거부했다. 그냥 먹고살기 바빠 밀쳐내고, 밀쳐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특별한 것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은 인생을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다 보니 사십대가 되어 있었다. 




1인 가구로 혼자 살면서 몇 번 응급실을 혼자 갔을 때 가장 서럽고 서글펐다. 사회적 제도는 물론 정책적인 부분에서도 1인 가구는 항상 소외되었다고 당시에는 느꼈었다. 그때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다. 앞으로 이 사회가 다양한 가족 형태를 더 포용하고, 발전적으로 정책을 펼쳐 나가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예전보다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가 된 것 같아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도시 태생이다. 그녀는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다. 알레르기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심각힐 정도는 아니지만 나 역시 요즘 알레르기로 개고생 중이다. 먹는 것부터 입는 것, 날씨, 습도, 온도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알레르기를 어떻게 품고 살아가야 할지 늘 고민되었을 저자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내 나이 또래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알레르기 증상 글을 읽으니 대학 시절 교양수업에서 만나 무전여행까지 함께 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키도 크고, 얼굴도 이쁜 그녀는 얼굴에 심각한 알레르기를 겪고 있어 화장조차 할 수 없었고, 얼굴의 가려운 증상으로 일상생활을 매우 힘들어 했다. 결국 대학교를 중퇴하고 시골로 간다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년을 연락하다 끊어진 그녀가 생각났다. 


 


작가는 지리산으로 들어가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이뤄냈다. 시골에 정착하기 위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나름 시골에서 잘 뿌리내리고 살아가고 있다. 시골에서 자신의 땅을 구매하는 등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 허다하지만 당차게 잘 헤쳐 나간다. 시골에서 여자 혼자 그것도 결혼 안 하고 산다면 많은 어르신의 참견이 불보듯 뻔하다.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그녀 역시 강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작가는 ‘어리’라는 친구를 만나 함께 살기 시작했다. 가족이 아닌 남남이같이 살면서 또 다른 가족 형태를 만들어 살고 있다. 그녀보다 4살 어린 ‘어리’ 와 같이 살면서 서로 맞춰나가는 모습이 좋다. 사실 가족하고도 함께 살다 보면 부딪치는 일이 허다한데, 남과 같이 사는 일이 쉬운 일이겠는가. 서로의 배려와 존중으로 같이 맞춰나가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나중에 나 또한 그녀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과연 그런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1인 가구로 오래 살면서 개인적으로 걱정이 많았다. 혼자 살면서 평생 결혼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1인 가구로 살다가 쓸쓸하게 고독사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이따금 밀물처럼 몰려들어와 두려워 했었다.



지금은 엄마와 함께 살면서 현재를 살다 보니 아직 1인 가구로서의 두려움은 잠시 잊은 상태이다. 엄마가 얼마나 사실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또다시 닥쳐올 1인 가구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친구를 입양했습니다.” 눈여겨 읽게 되었다.


 


앞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는 지금보다 더 많아지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아직 법적인 부분은 이에 걸맞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이 논의되었고, 대한민국 국회에서 2023년 4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을 처음 대표 발의했다고 하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그저 정치만 한다는 느낌이 든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선거철마다 부르짖지만 정말 필요한 법률은 있는 자의 편에서 만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그것을 2012년 전세 사기를 당할 뻔할 때, 법원을 쫓아다니고, 공부하면서 알았다. 제발 말로만 하는 정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그리고 국민을 생각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해 주기 바란다.


 


지금은 생활동반자법이 인정되지 않았고, 따라서 저자는 ‘어리’를 법적으로 입양하여 가족이 되었다. 성인이 경우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다면 입양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게 작가와 ‘어리’는 한 가족이 법적으로도 되었다. 지난날 혼자 응급실에 가 각종 검사를 진행할 때마다 “~님 보호자분 수납하고 오세요” 그럴 때마다 화딱지 났던 일이 생각나며 우리나라가 1인 가구에게도 조금은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1인 가구들이 느끼는 서러움은 조금은 없어지길 바란다. 


 


1인 가구로 또다시 돌아올 때 저저와 같은 삶을 함께할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 1인 가구로 살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이 고독사였다. 1인 가구의 삶이 먼훗날 피하지 못할 나의 삶이라면, 저자와 같은 가족 형태가 나에게도 이뤄지길 바라며, ‘친구를 입양했습니다.’ 저자가 잘 살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책에서 시골에서 먹고살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는 기술된 것이 없어 자못 궁금하다. 시골에서 자라 도시에서 이십 년 가까이 살았더니 막상 시골로 내려간다고 할 때 뭘 먹고살지 가늠할 수 없다. 


 


 


“불안이 많은 내가 모든 일은 어떤 방향으로든 잘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하게 된 데에는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4p




“나는 타고난 기질 자체가 예민한 사람이다. 하지만 성장환경에서 이러한 예민함을 충분히 배려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예민함은 걱정과 불안을 키웠고, 나의 마음에는 항상 바람이 불었다. 그래서 마음속 바람을 위로하기 위해 종종 바람을 쐬러 다니곤 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바람 부는 언덕이나 숲에 있으면 어느 순간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졌다. 나 홀로 여행은 불안을 해소하는 나만의 치료제였고, 그중에서도 숲 산책은 가장 효과가 좋았다.” - 27p



 


“나이도 성격도 모두 다른 우리가 만나 즐겁게 살았던 경험은 ‘이런 형태의 가족을 구성해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상상을 하게 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의지하면서 따뜻하게. 성별과 나이를 떠나 서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의지하고 살면 가족 아닐까? 가족이 꼭 함께 영원해야 한다는 건 어쩌면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땐 가족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를 염려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렇게 조립과 분해가 쉬운 가족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 50p


 


“20대의 나는 계속해서 ‘왜’라고 물었다. 내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내가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족과 친구들의 상심외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반대의 이유도 한 가지로 명료했다. 우울하고 가치 없는 삶을 지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 날 아끼는 사람들의 낙담과 가치 없는 삶을 지속하는 것 중 어느 것의 무게가 클까. 아주 오랫동안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나의 숙제였다. 이 문제의 답은 소록도에서 만난 한 할머니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 (중략)......


“지붕 있고, 네모반듯한 집에서 잘 먹고 잘 싸면 그게 잘 사는거지, 행복이 별거 있나?”.... (중략)....


그날 나는 처음으로 ‘왜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바꾸니 생각이 바뀌었다. - 66~67p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곳, 살고 있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에게 따뜻하고 편안한 기운을 북돋아 에너지를 충전해주기도 하고, 나를 더 나다울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또 함께 사는 이와의 관계를 더 나아지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더 나다울 수 있는 숲속에 우리의 취향이 반영된 집을 짓고 사는 꿈을 꾼다. 그 꿈을 향해 준비해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이 집에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190p



 


“조금 더 살아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의미는 찾아지는 게 아니다. 굳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삶에 있어 ‘왜’보다는 ‘어떻게’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왜 태어났고 왜 살아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때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삶이 흐르지 않아도, 시련을 겪어도 괜찮다. 사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으니. 그저 즐겁게 살면 된다. 어떤 삶을 살든 그 삶 자체로 가치 있고 아름다우니까. 우리는 같은 길 앞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이렇듯 삶에 정답이 없는데 실패가 어디 있겠어. 오늘도 내가 선택한 길을 나에게 맞는 속도로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 254~255p




*출판사의 지원으로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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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1~3 세트 - 전3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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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해 들어 역사소설인 ‘염부’와 ‘제왕의 잔’을 읽었다. '염부'는 전북 고창을 중심으로 벌어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알 수 있는 소설이었고, '제왕의 잔'은 경남을 중심으로 쓰인 조선시대를 살펴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제주도우다’ 역시 역사소설이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 시대에서부터 제주 4.3사건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슬픈 근현대사를 그린 역사소설이다.

1940년대 겪은 일로 안창세의 삶은 멈춰버렸다. 그는 입을 닫았고, 침묵으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1940년대는 끝났지만 그에게서 그 시대의 악몽은 벗어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임창근과 제주가 고향인 아내 안영미는 자기 할아버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할아버지를 설득하였다. 제주도 근현대사의 진실을 파헤치고 싶은 그들의 열정으로 안창세는 마음의 문을 열고, 1940년대를 말하기로 했다. 이 소설은 안창세 중심으로 펼쳐진다.

‘제주도우다’를 읽으며 분노, 슬픔, 억울한 감정들이 밑에서부터 끓어올라온다. 일제강점기 일본 편에 서서 일했던 사람들이 해방 후 단죄하지 않고, 바로 미국에 붙여 일하며, 일제강점기보다 더 강하고 비참하게 제주 도민들을 괴롭혔다.

매질하고, 불을 지르고, 총살하는 장면을 읽으며 ‘사람이 가장 잔인한 동물이다.’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평범한 우리네 이웃들이 겪은 일이었다. 우리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고, 할아버지, 할머니이고, 동생이고, 누이이고, 형의 일이다. 같은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일을 벌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무리 자신이 살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해도 결코 용서해 주고 싶지 않다.

이런 역사가 1940년대 일어났던 일이고,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일 즉 불과 100년이 안 된 사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를 배워야 한다. 올바른 역사의식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에 필요한 자세라 생각이 든다. 올바르지 않는 역사 인식을 가진 사람으로 인해 한 나라가 일 년도 안 돼 추락하는 현실을 보면서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리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나라에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억울함을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해방이 찾아와 이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남과 북이 통일된 하나의 나라를 원하는 국민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승만 정권은 남한 단독 국가 설립을 위한 5.10 선거를 치른다.

이 시기 미군의 제주도 점령은 제주 도민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해방 후 흉년이 찾아와 먹을 것도 없고, 역병인 호열자(콜레라)가 돌기 시작해 제주의 삶은 어느 때보다 참혹했다. 참혹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나를 분노케 만든다.

해방 후 남북의 이념 대립으로 하나의 정부가 수립될 수 없었다. “우리는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라는 말이 폐부를 찌른다. 해방 후 기대했던 삶은 절망으로 바뀌고 제주 사람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가족, 친구, 이웃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제주도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간절하고, 처절했던 투쟁이었다. 그러나 미군의 정찰기, 토벌대 등 민간인 학살은 잔인하게 지속되었다. 그들의 잔혹성을 보면서 인간의 본성을 성악설로 보는 주장이 왠지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조금의 양심도 없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사람들을 책을 통해 읽으며, 인간의 사악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안창세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고, 신문 배달하면서 달리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였다. 그런 그에게 정두길 선생은 만년필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는 평생 글을 쓰지 않았다. 노년에 말을 열었을 뿐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사람이 침묵했겠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외우고 글 쓰고 싶어 했던 한 사람이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보고, 동갑내기 친구의 시신마저 보면서 그의 삶이 온전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우리의 욕심이다.

‘제주도우다’에서 제주도민은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은 물론 강제공출을 당한다. 해방 이후 삶을 기대했지만, 전혀 다른 삶이 폭풍처럼 밀려 왔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투쟁 속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집이 불태워지고, 굶주림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끝까지 싸운다.

이 소설에서 창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창세 주변에 많이 이들이 죽음에 이른다. 소설 속에 창세 중심에서 벗어나 더 넓게 보면, 제주도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억울한 죽음, 두려움과 공포에서 살았을까. 이가 갈린다. 소설 속에서 결국 안창세는 싸우기를 포기하고 산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이 소설은 끝난다.

그는 평생 상처를 안은 체 고통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글조차 쓸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 우리 조상들의 고통과 애환을 우리는 결코 잊으면 안 된다. 국민이 있기에 국가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칼을 겨누는 사태는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면 안 된다. 무고한 시민이 죽고, 다치고, 우는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해야 하고 끝까지 밝혀내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제주도 아닌 한국 그 어디에서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제주에서 벌어진 시대적 상황과 그 시대에 일어난 역사적 일들을 ‘제주도우다’를 통해 알 기회를 준 현기영 작가에게 감사하다.




* 이 서평은 출판사의 지원으로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서평이 쉽지 않네요. 갈길이 멀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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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시간들
오사다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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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어보는 에세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으면, 소설의 풍부한 상상력에 등장하는 인물의 다양한 성격을 통해 인간의 성격, 감정, 태도, 심리 등을 배우고 에세이를 읽으면 과거, 현재를 살아온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한 글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운다. 인간관계가 힘들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삐딱해지고 곪을 때 나는 에세이를 찾는다. 이 세상을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나 혹은 나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삶을 헤쳐나갔는지 알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나는 에세이를 찾고, 에세이를 집어 든다.



 


‘그리운 시간들’의 저자 오사다 히로시는 일본의 시인이다. 그는 1939년에 태어나 2015년 생을 마감하였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그가 일상에서 느꼈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낸 책이다. 1995년 그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당시 책에 관심도 없고 읽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때 책을 읽었다고 치더라도 오사다 히로시 작가를 만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가 1995년부터 써 내려갔던 에세이를 읽으며 1995년으로 살짝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에세이를 통해 개인의 삶도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도 살펴볼 수 있었다. 에세이를 읽으면 작가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따금 소설 작가가 쓴 에세이를 읽어보는데, 소설에서 전혀 알 수 없는 작가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엿볼 수 있어 짜릿하다. 소설로만 접했던 작가가 나의 친숙한 이웃처럼 느껴진다. 에세이가 주는 매력이다. 이것이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점이지 싶다.



 


작가는 걷기와 나무를 좋아한다. 작가처럼 나 또한 걷기와 나무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가 걷기와 나무에 관해 쓴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 형광펜으로 밑줄을 거침없이 그었다.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국토대장정을 했고,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서울 둘레길을 걸었던 한 사람으로 작가의 걷기와 나무에 대한 예찬에 동질감을 느꼈다. 앞으로 남은 평생의 꿈 중 하나가 산티아고를 걷는 것일 정도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 다니는 내내 걸어 다녀, 걷는 것 자체를 징글징글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는 걷기를 반복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나보고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냐고 종종 묻는다. 그러나 나는 작가처럼 생각하지 않고 걷는다. 생각을 정리하려고 걷기 시작하지만, 자연의 소리, 바람, 냄새 등을 느끼다 보면 생각은 저절로 없어진다. 복잡하고 잡다한 생각이 없어지는 그 시점, 그 시간들이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걷기를 좋아하지는 지도 모르겠다.



에세이에서 쓴 말과 책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으며, 나의 삶에서도 말과 책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글을 쓴다는 것은 관찰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심히 지나쳐 가는 순간을 기억하고 글로 승화시키는 행위는 결코 가벼울 수 없고, 관찰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걷기는 관찰하기 좋은 행위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걷기가 작가의 창작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어디에 갈지, 뭘 할지, 생각하지 않고 걷습니다. 길 하나만 다르게 걸어도 이런 골목길이 있었네, 이렇게 큰 나무가 있었구나, 여기가 이런 길이었나, 하고 지금껏 몰랐던 거리의 표정과 만나게 되고 거리의 깊이가 보이는 것이 거리의 산책입니다.” - 20p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방안에서 방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방 안에서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내 마음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내 마음 밖으로 나가, 바깥의 풍경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 23p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갑니다. 그 소중함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일찍이 미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것을, 앞으로도 계속 잃어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31p


 


 


“나무는 얼핏 보면 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변한 게 없는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 올려다보면 나무는 하루하루 놀라우리만큼 다른 모습으로 말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나도 모르게 숨이 멎을 때가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혼자 큰 나무 아래서 발걸음을 멈추고, 머리 위의 커다란 가지들을 가만히 올려다본다면, 나무가 드리우는 초록 속에서 소리 없이 내려오는 시간의 그물망에 나 자신이 부드럽게 감싸여 어디론가 옮겨지는 듯한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이게 됩니다.”





*출판사의 지원으로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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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리커버 특별판)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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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이 거의 600장이 돼 사실 책 읽기 앞서 부담되었다. 그러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600장에 달하는 소설은 다음 장을 궁금케 하는 내용들로 가득 구성돼 600장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에 충분했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인 김주혜 작가는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소설이 디테일하며, 묘사가 거침없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줄곧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이라 느껴졌다. 한국에서 산 사람보다 더 한국을 잘 이해하고 소설을 쓴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을 도왔던 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해도, 미국에서 살다 보면 으레 한국의 문화, 한국의 이야기가 기억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데, 그녀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보다 더 또렷하게 한국의 근현대사를 소설 속에 담아 작품으로 출품했다.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녀의 앞날이 기대된다.



올해 들어, 한국의 근현대 소설을 몇 권 읽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6.25까지 이어지는 서사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를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역사의 이론서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소설로 구성돼 나의 머릿속에 그 시대를 그려낼 수 있도록 해줬다. 이것은 소설이 가지는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읽었던 ‘염부’, ‘제주도우다’ 소설 역시 우리나라 근현대를 묘사했다. 그러나 내용도 느낌도 다 다르다. ‘염부’는 전북지역, ‘제주도우다’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이다. 그 시대에서 일어났을 이야기를 지역 중심으로 세부적으로 들어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전쟁, 아픔, 가난, 슬픔, 고통을 느껴야 했던 우리나라 민족의 비극적인 삶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다. 소설을 통해 우리 조상의 삶에 대한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게 글을 써준 작가들에 깊이 감사하다. ‘작은땅의 야수들’ 읽으면서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야 했던 조상들의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내려고 했던 불굴의 의지를 보았다. 그것을 작가는 호랑이에 비유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어로 된 책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을 박소현 번역가가 진행했다. 김주혜 작가의 섬세한 작업이 있었기에 소설이 풍부하고, 알찼지만 한국어로 번역하며 한국인의 감정에 쏙쏙 와닿게 세심하고 면밀하게 번역한 박소현 번역가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김주혜 작가의 제안으로 박소현 번역가는 등장인물의 한국 이름을 정했다. 번역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작은땅의 야수들' 소설을 위해 상당히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월향, 은실, 옥희, 연화' 등의 등장인물의 이름은 소설과 아주 잘 어울린다.



소설은 △ 1부 1918년~1919년 △ 2부 1925년~1937년 △ 3부 1941년~1948년 △ 4부 1941년~1948년 시대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의 멸망을 다루고 있다. 그 기간 한국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소설 속에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 소설 전반부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러다가 점차 이 소설은 옥희와 정호 중심으로 끝을 맺는다.



주요 이야기는 기생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지난번 ‘염부’ 소설에도 기생들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끌어나갔던 부분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기생들의 활약이 컸던 일까? 궁금해진다. 올해 읽었던 근현대 소설 속에 기생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시대에 주요 역할을 한 듯하다.



‘작은땅의 야수들’에서 등장하는 기생 은실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월향과 연화였다. 성격이 전혀 다른 그 두 자매와 함께 소설 속에서 옥희가 있다. 이들이 단이 이모가 사는 경성으로 오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내며 소설의 주요 이야기가 전개된다. 경성에서 옥희는 남루한 옷을 입었던 정호를 만났고, 인력거 끌었던 한철을 만나 사랑했다. 옥희와 연화를 통해 그 시대의 문화 예술을 알 수 있었고, 길거리 생활을 했던 정호가 명보를 만나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했다가 투옥했던 일을 통해 당시 한국인들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독립운동하는 자를 좌파로 모는 소설 속 내용을 보면서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지금도 이처럼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질적인 문제는 1910년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이 이모는 힘들게 모았던 자금을 독립운동하는 명보에게 흔쾌히 내어준다. 그런 단이 이모와 달리 성수는 주저한다. 단이를 사랑했던 성수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다. 돈을 가진 부자이지만 독립을 위한 일에 투자하는 일에는 주저하는 성수의 모습을 딱히 뭐라 비방할 수도 없다. 그 당시는 대부분 사람의 삶이란 먹고사는 일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을 것이다. 누구를 돕는다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며, 특히 한국의 독립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일은 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부자 역시 마찬가지 사고였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많은 독립운동가 덕분에 한국은 독립을 맞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600페이지 근현대 역사를 다 담을 수 없지만 등장인물을 통해 어느 정도 당시의 상황을 우리는 그려볼 수 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를 구성하고 쓰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갔을 작가,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쓴 그녀의 노력에 머리가 숙여진다.



아마존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마음속에서도 메시지를 준 듯하다. 한국에서도 그 명맥을 이어 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출판사의 협찬으로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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